디모데후서 1장 13-14절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왜 교리를 배워야 하나요?’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교리란 무엇입니까? 교리는 성경의 가르침들을 같은 주제별로 묶어서 조직적으로 종합해 놓은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하나님에 대한 수 많은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은 하나님에 관한 수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교리는 이 가르침들을 하나님의 이름들, 하나님의 성품과 행사, 하나님의 규례,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언약과 같은 다양한 주제 별로 묶어 조직화한 것입니다.
교회가 성경을 통해 검증하고 교회가 공적으로 받아들인 교리들을 신조라고 하고 그것을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 문답의 형태로 작성한 것이 요리문답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교리는 필요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성경은 우리 신앙과 삶에 있어 최고의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성경 이 외의 모든 교리를 불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왜 교리를 배워야 할까요?
지도
첫째로 우리가 신앙고백이나 요리문답을 통해 교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잘 이해하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교리를 잘 이해할수록 우리는 성경을 더욱 바르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처음 가보는 산을 잘 올라가기 위해서는 지도를 보고 등산로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무턱대고 올라가다보면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될 것입니다. 교리는 지도와 같습니다. 성경은 매우 깊고 방대한 책입니다. 따라서 교리의 안내 없이 성경을 읽을 때, 읽는 우리는 반드시 수 많은 오류에 빠지고 길을 잃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글씨만 읽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는 동시에 성경을 해석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을 읽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우리에게 주실 때, 성경이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관점을 따라 성경을 읽고 이해하다보니, 같은 성경을 읽었는데도 그것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에 차이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짧은 구절이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창조주시이심을 깨닫는 사람이 있는 반면, 같은 구절을 가지고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께 지은 바 되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설교하며 가르칩니다. 성경을 가지고 설교하고 가르치지만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는 대신 성경을 가지고 사람의 생각을 말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성경을 이용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또 이단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기성 교회의 신자들을 미혹할 때 그들은 다른 종교의 경전을 가지고 와서 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그들 나름대로의 관점을 따라 해석한 것을 마치 성경의 참된 가르침인 것처럼 가르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교리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사사로운 교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수천년의 교회 역사 가운데 경건한 신앙의 선조들이 믿고 받아들였던 교리, 신조나 요리문답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교리의 바른 지도를 따라 건전한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할 있게 될 것입니다. 또 거짓교사들과 이단들의 가르침을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등대
둘째로 교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경건한 삶을 살게 하는 좋은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리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이전에 알지 못했던 성경 지식을 쌓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교리를 배우는 것은 그것을 실제로 삶 속에서 사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거듭나게 하십니다. 지각을 열어 복음을 듣고 깨닫게 하시며 믿게 하시고 죄를 회개하기도 하시며,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예배, 교제,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때에 우리는 교리를 가지고 우리가 경험하는 신앙적인 체험들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바른 교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때, 바른 신앙 체험들을 할 수 있기도 합니다.
또한 교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질서 있게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세상의 여러 가지 사상에 영향을 받습니다. 무엇이 옳고 잘못된 것인지에 대한 세상의 판단기준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무엇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에 대한 세상의 관점에 물들 수 있습니다. 이때에 교리는 우리에게 성경에 기초한 하나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무엇이 하나님 앞에서 옳은 것인지 또는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와 같은 것들을 교리를 통해 알고 그 토대 위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밤 바다 위에서 이리저리 떠 다니는 배와 같고 교리는 바다에 있는 등대와 같습니다. 배는 향방을 알지 못한 채 파도에 이리저리 밀려 다닐 것입니다. 잘못하면 방향감각까지 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두운 바다에서 빛을 비추는 등대가 있으면 배는 그 등대를 기준점으로 삼아 자신의 위치도 파악하고 목적지로 가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항해해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교리를 우리 신앙과 삶의 기준으로 삼고 붙들 때 그것은 우리 삶을 질서 있게 하고 하나님께서 뜻하신 우리 인생의 목적을 좇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신분증
셋째로 교리가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한 개인이나 국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국가는 국가의 법을 통해 영토의 한계를 분명히 합니다. 이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이웃나라들에게 자기 영토를 분명하게 주장할 수 없게 되고 분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수백 년 간의 역사 가운데 우리에게 전해진 교리 곧 신조와 요리문답을 바로 알 때 우리는 우리가 역사적 보편 교회의 한 지체임을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교회도 교회적으로 우리가 믿는 교리의 표준으로 받아들이는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이 있습니다. 첫째는 세 가지 고대교회 보편신조가 입니다.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이 그것입니다. 둘째로 개혁교회의 세 가지 일치신조도 우리가 믿는 교리의 표준으로 받아들입니다. 벨직 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그리고 도르트 신경입니다. 셋째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이 있습니다. 넷째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조입니다.
이러한 신조와 요리문답을 통해 우리는 우리 교회가 정통 기독교회이며 장로교회임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주며 우리 정체성에 걸맞는 신앙과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우리 스스로 알고 견지하며 살아갈 때에 우리와 같은 신분증을 가진 다른 교회들과도 한 몸된 교회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교리는 중요합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교회는 항상 교리를 설교했고 가르쳐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교리를 배워야 합니다. 교리를 배우되 아무 교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탁월하고 경건했던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작성하고 오랜 시간 교회 역사를 통해 공적으로 검증되고 확인된 교리,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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