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누가복음 7장 36~47절
읽을말씀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하니, 이 여자의 많은 죄가 용서되었으니, 이는 이 여자가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누가복음 7장 47절).
본문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다른 복음서에서도 기록되어 있는데(마 26장, 막 14장, 요 12장), 이들은 모두 메시아의 죽음을 준비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반면, 누가복음에 실린 사건은 “죄인에 대한 예수님의 죄 사함과 용서”가 강조됩니다. 곧 1)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달리) 죄인들을 가까이하시며, 죄를 용서해 주는 권위를 지니고 계시고, 나아가 2)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헌신합니다.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
예수님은 한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하셨습니다. 이때 많은 죄를 지은 한 여인이 나아왔습니다. (이 여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자세하게 소개되지 않지만, 그녀는 자신의 품행과 관련하여 ‘죄인’이라고 낙인이 찍혀 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향유를 부으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당시 향유는 고상한 향냄새를 품기는 것으로, 당시 노동자의 1년 품삯에 해당하는 매우 값비싼 것이었습니다. 이 향유는 특별한 경우에 장막의 분향 재료와 제사장들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 등에 사용되었고, 장례의식에서 냄새와 부패를 방지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 당시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붓는 행위는 ‘깊은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바리새인 시몬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그리스도가 죄 지은 여인의 행위를 허용한 것을 비방하였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으로서, 죄인인 여인은 자신들을 부정하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인의 존재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여인의 행동에 대하여 분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시몬의 마음을 아시고, 빚진 두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은 500데나리온을, 다른 한 사람은 50데나리온을 빚지고 탕감을 받았다. 과연 둘 중에 누가 자신을 탕감해 준 사람을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은 “많이 탕감 받는 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죄를 지은 여인이 한 행동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하니, 이 여자의 많은 죄가 용서되었으니, 이는 이 여자가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47절).
[비유의 의미]
예수님의 비유에서 돈을 빌려 준 자는 ‘하나님’을, 빚은 ‘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빚을 적게 진 자는 바리새인을, 빚은 많이 진 자는 여인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비하심(헤세드)을 따라 사람들의 빚, 곧 죄를 기꺼이 용서해 주셨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며, 그 죄가 값없이 용서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 죄를 용서해 주신 분, 곧 하나님을 전적으로 사랑할 것입니다. 여인은 바로 그 사실을 아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죄 사함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에게 발 씻을 물조차 주지 않으며 예수님을 소홀히 대했습니다.) 또 여인은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그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나아가 여인은 가장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예수님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존경을 나타낸 것입니다.
[생각하기]
당시 바리새인들은 죄인들을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이 죄 사함을 받아야 할 필요가 거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과 가까이하기를 즐겨 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죄 사함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예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뿐만 아니라, 그분을 더욱 많이 사랑하였습니다. 여인은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께 반응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여인에게 ‘죄 사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죄가 많았고, 그 많은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때문에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인은 그에 대한 믿음을 ‘구체적인 행동’, 곧 ‘예수님에 대한 깊은 겸손과 헌신’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이처럼 여인이 보여 준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제자의 모습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주님께 얼마큼 탕감 받은 자라고 생각하나요? 죄에 대한 애통함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러한 죄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요? 복음에 대한 감격이 우리에게 있나요?
우리가 진정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면,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 사랑은 단지 입술로 고백하는 것만이 아닐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죄 용서 받은 것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감사와 사랑으로 믿음을 표현합니다. 이것저것 저울질하면서 세상의 이해를 따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형제와 이웃에 대하여 악을 품지 않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에 대하여, 아내와 남편에 대하여, 그리고 자녀에 대하여 분을 내지 않고 자비와 친절을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죄 용서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나타나는 가운데, 죄인을 사랑하며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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