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4문
문: 죄가 무엇입니까?
답: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혹은 그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여러분, 한 주간 안녕하셨나요? 지난 시간에는 우리 시조 아담의 범죄와 타락에 대해서 살펴보았어요.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맺으신 생명의 언약(행위 언약)에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못하도록 금지하셨어요. 이를 통해 아담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피조물임을 기억하게 하신 거예요. 뿐만 아니라 만약 아담이 정해진 기간 동안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온전히 순종하면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어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연합과 교제 가운데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을 약속하신 것이었어요. 하지만 반대로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다면 아담은 반드시 죽을 것을 경고하기도 하셨어요. 하지만 아담은 자신의 의지의 자유를 따라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창조 받은 지위에서 타락하였어요.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은 영원히 막히고 말았어요. 오늘 우리가 공부할 14문답은 아담에게 이처럼 비참한 결과를 가져온 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도와줍니다.
죄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죄가 무엇인가요? 죄가 무엇인지를 바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인류의 대표이자 시조인 아담이 처음 창조 받았을 때 부여받은 복된 지위에서 떨어지게 된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고, 죽음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또 아담의 범죄와 타락으로 인해 모든 사람은 죄로부터의 구원을 간절히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죄가 무엇인지를 모른다거나, 죄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구원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죄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할 거예요. 죄인을 미워하시고 벌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겠지요?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죄로부터 구원 받아야 할 자라는, 구원의 필요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자를 간절히 찾으려 하지도 않을 거예요. 죽을 수 있는 큰 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만약 그 사람이 자신에 병에 대해서, 또는 그 병이 가져올 치명적인 결과에 대해 모르고 있다면, 그는 그 병에서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요? 힘들거예요. 혹여 좋은 치료제가 있고 또 좋은 의사 선생님이 있다고 할지라도 병에 걸린 사람이 자신의 상태를 바로 알지 못한다면, 병을 고치려고 하는 필요도 느끼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좋은 의사 선생님이나 약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4-19문은 사람의 범죄와 타락, 그리고 그로 인한 사람의 죄악됨과 비참함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죄의 기준은 하나님의 법이에요
죄란 무엇인가요? 우리의 어떤 생각이나 말, 행동이 죄인가를 판단하려면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 이 기준은 누가 정할 수 있는 걸까요? 어떤 사람이나 국가가 죄의 기준을 정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그 기준은 사람마다 사회마다, 나라마다 다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람들 각자가 어떤 기준을 만들어서 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려고 한다면 사회는 굉장히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거예요. 죄를 판단하는 기준을 만들 수 있는 분은 누구일까요? 기준을 정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사람을 만드실 때에 기준, 곧 하나님의 법을 계시해 주셨어요. 가장 먼저 우리 사람의 마음, 곧 양심에 하나님의 법을 새겨주셨어요. 타락하기 전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분명하게 새겨져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마음에 새겨진 그 법을 알았고, 그 법을 복된 삶의 울타리 삼아 살아갈 수 있었어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법을 마음에 새겨주셨을 뿐 아니라 말씀으로 알려주기도 하셨어요. 대표적인 것이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이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담에 이러한 법과 명령을 따라 살아가게 하셨고, 아담이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갈 때에 아담은 가장 행복하고 안전한 삶을 살 수 있었어요.
하지만 아담이 범죄하고 타락했을 때,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많은 부분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하나님께서 마음에 새겨주신 그 법은 매우 희미하게 되었고, 깨어지고 말았어요. 사람의 양심은 그 기능을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죄를 지으면서도 그것이 죄인지 알지 못했고, 알아도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이처럼 타락하고 부패한 사람의 마음의 법, 양심이 깨어지고 제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법을 성경에 기록해 주셨어요. 하나님께서는 그 법을 통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살피고 무엇이 죄인지를 알게 해주셨어요. 이처럼 죄는 하나님의 법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은 죄를 가리켜 ‘불법’(不法)이라고 말씀하기도 해요(요일 3:4).
두 가지 죄: 부족한 것과 어기는 것
소요리문답은 죄를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어요. 소요리문답 14문에 의하면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혹은 그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함이 있거나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을 죄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하라’하신 것을 하지 않는 것이나 ‘~하지 말라’하신 것을 한 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함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을 온전히 행하지 않거나 소홀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지만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했을 때, 또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지만 이웃을 그렇게 사랑하지 못했을 때 그것은 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했을 경우 그것을 죄로 인정하고 죄책감을 느끼지만,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온전히 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 것 역시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죄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 ‘~하지 말라’하신 것을 했을 때 그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라’ 등 하나님께서 율법 가운데 금하신 것을 범한 것은 죄입니다. 에덴 동산에서의 아담의 범죄가 그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지만, 아담은 그것을 먹음으로써 하나님의 금령을 적극적으로 어겼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죄는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거나 어기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법을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법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갈 때에 가장 복된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범죄하였고, 아담 안에 있는 우리 모두는 죄 가운데 태어나고 죄 가운데 살고 죽는 비참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바를 온전히 순종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금하신 것을 어기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모든 죄는 하나님 보시기에 추악하고 끔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를 받아 마땅한 것들입니다. 또 죄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더 많은 죄를 짓게 하고, 우리를 종처럼 부리기도 합니다. 죄는 결코 우리를 놓아주지 않고, 점점 더 크고 두려운 죄를 짓는 자리로 몰아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모든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요, 하나님께 짓는 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때 우리는 이 죄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의 치료책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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