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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kjoon

[17] 예수님이 여인을 고치시고, 소녀를 살리셨어요(2)

본    문 마가복음 5장 21~43절
읽을말씀
“예수께서 그 아이의 손을 붙잡고 말씀하시기를 '달리다 쿰.' 하시니,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니, 일어나라.' 하는 뜻이다”(마가복음 5장 41절).

거라사에서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신 후,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병 고침을 받고자 몰려들었습니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치심]

그때 회당장(회당 건물과 예배를 위한 준비를 총괄하는 관리) 중 하나인 ‘야이로’가 예수님께 찾아와 그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죽어가는 자신의 어린 딸을 살려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와 함께 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둘러싼 많은 무리 가운데에는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 병을 고치기 위해 (자신의 온 재산을 들여) 많은 의사를 찾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병은 더 악화되어만 갔습니다. 또한 당시 구약의 규례를 따라, 혈루증을 앓는 여인은 그 자신뿐 아니라 그녀가 만지는 것도 부정해지기 때문에, 아마도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소외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오랫동안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던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서 예수님의 옷을 만졌습니다(혈루증을 앓는 여인은 무엇을 만지든지 그 만진 것도 부정해지기 때문에, 아마도 이 여인은 무리 가운데 끼어 드러나지 않게 예수님의 옷자락만 조심스럽게 만진 것으로 보입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졌을 때, 그녀의 병은 ‘즉시’ 치유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또한 여인의 병이 치유되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행동을 ‘믿음’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그녀에게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녀의 육체적인 회복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인(사회적인) 회복 또한 이루어주셨습니다.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한편, 그 사이 야이로의 딸은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딸이 이미 죽었고 예수님도 더 이상 도우실 수 없으니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36절). 곧, 야이로가 처음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가지고 있던 그 ‘믿음’(예수님이 딸의 병을 낫게 하실 것이다.)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셨을 때, 또한 예수님은 슬퍼하며 우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39절). 분명, 소녀는 육체적으로 죽은 상태이지만,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소녀의 상태를 ‘잠자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소녀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니, 일어나라.”는 뜻입니다(41절). 그러자 소녀가 ‘즉시 일어나서’ 걸어 다녔습니다.

[생각하기]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자기 백성을 사탄의 권세로부터, 질병으로부터,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해방하셨습니다. 특별히 본문에서, 예수님은 율법을 뛰어넘어 부정함(유출, 죽음 등)을 제거하고 정결함을 회복하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의 능력은 ‘믿음’을 통해 나타납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에 걸린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예수님은 여인의 행위에 대하여 ‘믿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여인은 자신의 병이 ‘예수님의 능력’으로부터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결과로써, 예수님은 그녀의 육체적 회복뿐만 아니라, (공동체로부터 받아들여지는) 사회적인 회복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 사이, 야이로의 딸은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야이로와 무리에게 그의 딸이 “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소녀가 “살아날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죽었다가 곧 살아나는 사람에게 죽음은 단지 자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과정일 뿐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2문은 신자의 죽음에 대해 “(단지 죄짓는 것을 그치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죽은 자를 살게 하실) 예수님의 능력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야이로의 딸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믿음은 단순히 복음의 진리에 동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통해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아가 그분께 자신을 내맡기는 모든 행위”입니다.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가운데,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몸과 영혼을 살게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확신하는 가운데, 세속적이거나 영적인 모든 일에 대하여 합당한 열매를 맺습니다. 율법은 단지 죄를 가르치고 죄의 전염을 막는 울타리의 역할을 하지만, 믿음은 죄를 이기고, 우리를 정결하게 하는 회복의 역사를 맛보게 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옵니다. 믿음을 처음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것을 보존하고 자라게 하며 완성시키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선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기 백성(택자)에게 이 믿음을 선물로 주십니다.

때로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지만, 상황이 더욱 나빠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자칫 우리는 믿음을 포기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말고, 그분의 도움을 기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몸의 병을 고쳐 주시든지 아니든지, 혹은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든지 아니든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를 치료하시고 회복시키신다는 사실을 압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그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반응하여 회복의 능력을 맛볼 수 있습니다. (상황이 어떠하든지)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 아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진리를 굳게 믿는 가운데,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쉼과 위로를 얻고, 충만함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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