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호세아 1~3장
읽을말씀
“내가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에게 ‘너는 내 백성이다.’ 라고 말할 것이니, 그들이 말하기를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다.’ 할 것이다”(호세아 2장 23절).
호세아 배경은 8세기, 북이스라엘 마지막 30년에 이루어집니다. 호세아 초기 사역 당시 북이스라엘은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풍요로웠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풍요와 번영에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불순종과 우상숭배, 그리고 사회적인 불의가 있었습니다.
여로보암 2세가 죽고 나서 북이스라엘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선지자의 말을 들으려는 열망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물질적 번영이 ‘정점’에 이르렀던 그때, 호세아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호세아는 “행위 예언”(선지자의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 그것은 “결혼”이었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음란한”(제누님, 성을 사고파는 행위[매춘])여인 고멜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멜과의 사이에서 여호와의 심판을 선언하는 이름을 가진 세 자녀를 낳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멜은 호세아를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아 음란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고멜 자신도 그들로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그때, 호세아는 값을 치르고 고멜을 되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녀를 용서하고 아끼며, 사랑하였습니다.
[생각하기]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 이야기는 단지 위기를 겪은 한 가정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이후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언약의 주체이자 신랑이시며,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신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신하였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분명, 이스라엘은 공적 예배를 여전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였고, 제물을 드렸으며, 제사의식이 준수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예배는 변화된 삶의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6:4-6). 바알을 따르는 음란함이 그들의 삶의 방식을 지배하였고, 사회적으로도 불법과 부정(강도, 절도, 살인, 술 취함 등)이 가득하였습니다. 이렇듯 기꺼이 자기 자신을 세상에게 팔아넘기는 이스라엘의 태도는 하나님 앞에서 “음란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심판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여호와께로 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들로부터 그 백성을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이며, 새 언약 위에 더욱 신실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자기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는 백성을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시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인자’는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그 인자하심으로, 하나님은 고집 센 백성을 여전히 사랑하시며, 그들이 패역함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기를 끊임없이 요구하십니다.
나아가 이 회복은 궁극적으로 종말론적인 방향을 가리킵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지불하신 “값”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 “값”은 바로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의지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 언약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소유가 된 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여, 우리의 죄 된 본성과 날마다 싸우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자들로 살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부모로서, 우리가 자녀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처럼, 우리 또한 자녀들을 긍휼히 여기며 온유와 인내로 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복음 안에서 자녀들을 양육하고 하루의 일상을 살아내는 가운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고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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