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애굽기 20:12-17
요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 28:1)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하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신 자기 백성들과의 언약을 통해 그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게 하시고,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하는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약속과 함께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율법도 주셨습니다.
이 계명은 앞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과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지켜 행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된 백성으로써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제사장 나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잘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은 그 자체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 28:1)
오늘도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목적과 사용방법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목적이 아닌 것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것은 그것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게 하려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의 서문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 20:1-2)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가르쳐주시기 전에 먼저 자신이 누구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신 일은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이스라엘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서 노예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바로와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홍해를 가르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십계명의 서문에서 자신을 이렇게 밝히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떤 은혜와 사랑을 베푸사 구원하셨는지를 알도록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계명을 주심은 그 계명을 힘써 지켜 구원을 얻도록 주신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시기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계명을 주신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 자신의 죄와 비참을 알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만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로마서 3장 20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사도 바울은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율법의 행위 곧 계명을 지킴으로는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고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목적은 우리가 그것을 지켜 구원을 얻도록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가 하나님의 계명을 열심히 지켜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그는 계명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를 깨닫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계명에 비추어 하나님의 의에 미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실제를 깨닫도록 하시려고 하나님은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읽고 ‘나는 정말 착한 사람인 것 같아’, ‘나는 율법대로 잘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의와 선함을 자랑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과 양심을 주셨습니다. 시내산에서 주신 것처럼, 돌판에 율법의 말씀을 새겨주지 않으셔도 타락 전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대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담의 범죄와 타락 이후로 사람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매우 희미해졌습니다. 또 이와 함께 우리 마음에 있는 양심도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죄와 비참을 바르고 정확하게 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도덕의 법과 그 법의 요약인 십계명을 주셔서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이 그 계명을 비추어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살필 때에 자신이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결코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율법의 정죄 아래 있으며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아야 마땅한 자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계명은 거울과 같습니다. 사람이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처럼, 율법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율법을 통해 자신의 실상을 바로 보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자기 죄와 비참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 결과 율법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는 비참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을 정직히 대면하는 사람은 사도 바울과 같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라고 탄식하며 절망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우리 안이 아니라 우리 바깥으로부터 오는 구원을 바라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복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복음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다고 말씀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복음은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소식은 사도 바울처럼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는 사실을 알고 인정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이루셨습니다. 율법은 범죄한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고 죽을 것을 요구합니다. 동시에 율법은 율법의 모든 명령에 순종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율법의 명령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성취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루신 완전한 의로움을 거저 주십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율법을 통해 우리 자신의 죄를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우리가 얼마나 비참한 사람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하려고 할까요?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인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필요로 할까요?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부활하셨다는 그 소식이 그에게 정말 기쁜 소식이 될까요? 그런 사람이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해주셨음을 인해 정말 감사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는 율법을 통해 우리 자신의 죄와 비참을 보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긍휼만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두 번째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와 비참에서 구원 받은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표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기 위한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역사로 신자의 마음은 하나님께로 기울어지기 시작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하기를 원하는 상태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계셔서 우리를 인도해주시는데, 계명이 왜 필요하냐고 묻기도 합니다. 그저 성령님께서 허락하시는 소원을 따라 살아가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계명 없이도 하나님께 복종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신하가 자기가 섬기는 왕께 대한 복종을 고백하면서 자신은 어떤 법 아래도 있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히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할 지 인도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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