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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210321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요 1:29-34

오늘 본문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였던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서서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며, 자신은 주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해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하면서, “나는 내 뒤에 오시는 그분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요 1:27)고 증언한 바가 있습니다. 그 이튿날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시는 것을 보았을 때, 세례 요한은 자기와 함께 한 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29절). 이것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증거한 가장 빛나는 증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

먼저,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예수님을 가리켜 어린양이라고 한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한 것의 뜻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구약성경에서의 “어린양”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어린양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유월절 어린양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출 12장).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주시기 위하여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치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자신들의 집의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살리시고 구원하셨습니다(출 12:5-8).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시대 내내 천년이 넘도록 매년 유월절을 지켜 왔습니다. 유월절에 죽임을 당한 무수한 어린양들과 그 피는 그리스도와 그의 피를 가리키면서 그리스도를 대망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으신 분이셨습니다(벧전 1:18-20). 사도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b)고 하였습니다.

또한 어린양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용서 받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와 제사를 드릴 때에 드렸던 대표적인 제물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어린양은 흠 없고 점 없는, 일 년 된 어린양이어야 했습니다. 구약의 제사 때에, 흠 없는 어린양을 가지고 제사하도록 하신 것은 장차 오실 순결한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순결한 구원자이십니다. 만일 예수님에게 죄가 있었다면 그는 우리의 죄를 지고 가실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으셨습니다(히 4:15). 많은 대적자들이 예수님의 죄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어떤 죄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했던 가룟 유다조차도 스스로 뉘우치며 말하기를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마 27:4)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심문했던 빌라도도 “내가...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다”(눅 23:14)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형을 받았던 강도조차도 예수님을 두고 말하기를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눅 23:41)고 하였습니다. 로마 군대의 백부장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실 때에 일어났던 모든 일을 보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눅 23:47)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어린양이십니다.

그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시다

또한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셨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이라고 할 때 “지고 간다”는 뜻의 헬라어 동사 “아이로(αἴρω)”는 “짊어지다(carry along), 제거하다(take away), 없애다(remove)”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짐을 짊어지고 가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정말로 구약시대 어린양과 같았습니다. 어린양이 유월절 때마다 죽임을 당하여 그 피가 문설주에 뿌려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과 구원을 가져다주었던 것처럼, 그리고 흠 없는 어린양이 번제에서 피 흘려 죽임을 당하여 불로 태워짐으로써 죄인들에게 죄 사함을 가져다주었던 것처럼, 그리스도는 죄인들에게 죄 사함과 생명을 가져다주시기 위하여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시는(현재시제) 분이었습니다. 번제로 번역된 히브리어 “올라(olah)”는 본래 “홀로코스트”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단어가 현대에 와서는 나치 정권이 유대인 6백만 명을 죽인 그 끔찍한 대학살 행위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되지만, 본래 홀로코스트는 불로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번제를 의미했습니다. 번제는 지옥 고통을 상징합니다. 세례 요한은 죄 없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지옥 고통을 당하실 것을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오셨고 죄인들을 위해 사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었기에 아버지의 뜻과 영광을 위하여 오셨고, 그것은 곧 우리의 구원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하여 오셨고, 죄인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하여 의인으로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오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던 것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죄인들의 자리에 서서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것을 처음부터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호기심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 아래 나시고 율법에 순종하신 것도 우리를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난 지 팔일 만에 율법을 따라 할례를 받으신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율법을 어기신 적이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그의 지상 생애는 죄 없고 흠 없는 완전한 생애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죄를 지으셨다면 어떻게 우리의 구주가 되실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마지막으로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하였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29절). 이는 “너희들의 모든 죄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 내가 전에 너희에게 말하였던 바로 그분이 바로 이 사람이니,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를 믿고 그를 따르라!”는 촉구입니다(30절). 실제로 세례 요한은 자기를 따르던 자기 제자들로 하여금 자기가 아닌 예수님을 따르도록 하였습니다(요 1:35 이하). 이것이 세례 요한의 사역의 목적이었습니다(31절).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증거해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바라보고 그를 믿고 그를 따르게 하기 위하여 세움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 때에 일어났던 일들을 보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확신하게 된 후에,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증거하였습니다(31-34절). 세례 요한은 말하기를,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33절).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죄 사함과 생명을 가져다주시기 위하여 우리 대신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그리스도께는 그 누구도 능히 짊어질 수 없는 죄의 짐을 지고 가신 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시며, 지금 하늘 영광의 보좌 가운데 좌정하신 바로 그 어린양입니다(계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직도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알지 못하는 분이 있다면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것을 더욱 힘써 증거합시다. 지상에 교회가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바로 이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증거하는 우리 각 개인과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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