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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210404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

막 16:1-11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나아간 여인들(1-4절)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의 예언대로 부자의 묘실에 장사되셨습니다(요 19:41-42; 사 53:9). 유대인들은 시신을 세마포로 싸고 얼굴까지 수건으로 감싼 뒤에 그 시신에 향유를 뿌려서 아름다운 향기로 장식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요 11장).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유대의 장례법을 따라 예수님의 시신을 몰약과 침향과 함께 세마포로 싸서 새 묘실에 장사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무덤은 일종의 동굴 같은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었을 때, 군병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돌로 봉인하고 그 무덤을 굳게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오후에 장사되셨고, 장사되신 예수님은 금요일 저녁과 안식일인 토요일, 그리고 안식 후 첫날인 주일 새벽까지 무덤에 계시다가 주일 아침에 부활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의 동이 트고 안식일이 끝났을 때,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를 비롯하여 그들과 함께 한 여인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이 계신 무덤으로 찾아갔습니다(1-2절; 눅 24:10; 마 27:61 참조). 그들은 안식일이 끝나자 예수님께 못다 한 자신들의 사랑을 표시하며 향유를 부어드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무덤이 큰 돌로 막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마 27:63-66),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가면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주리요”(3절)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도착하여 보니, 돌이 벌써 굴려져 있는 것이 아닙니까?(4절)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5-6절)

마태복음에 따르면 그때 큰 지진이 일어났고, 무덤을 지키던 군사들은 다 두려워 떨며 죽은 자와 같이 되었고, 천사들은 무덤의 돌을 굴려내었습니다(마 28:2-4). 여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갔을 때에 예수님은 이미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무덤 안에는 찬란한 흰옷을 입은 천사가 있었습니다(5절). 그 천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6절). 예수님은 계속 죽은 채로, 무덤에 머물러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하신 말씀만큼이나 온 우주와 전 역사를 흔드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이신 것을 큰 소리로 선포하시는 선언이었습니다(롬 1:4).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살아나신 것은 그가 사망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셨음을 확증하고 선언하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장차 오실 그리스도는 죽은 채로 썩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하여 주셨습니다. 시편 16:10의 말씀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 16:10). 사도 바울은 바로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이 시편의 말씀을 응하게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행 13:35).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다시 살아나실 것을 여러 번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막 8:31)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또 갈릴리 지역을 지나가실 때에도 제자들을 가르치시면서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막 9:31)고 하셨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에도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능욕과 침 뱉음과 채찍질을 당하고 죽었다가 삼일 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막 10:33-34).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두고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고 하신 적도 있었는데, 이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요 2:21)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예수님은 너무나도 자주 그리고 분명하게, 자신이 죽임을 당한 뒤에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조차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실 때에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빌라도 총독에게 찾아가서 군병들을 보내서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해달라고 부탁할 정도였습니다(마 27:63-66). 과연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의 복음을 믿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라(7-11절)

천사들을 만난 여인들은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8절). 이 여인들 중에 막달라 마리아는 다시 무덤으로 돌아왔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자신을 먼저 보여 주셨습니다(9절). 마리아는 슬퍼하며 울고 있던 제자들에게 돌아가서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10절). 그러나 그들은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11절).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 앞에 친히 나타나셔서 그들의 불신앙을 꾸짖으셨습니다(14절).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려 하지 않는 자들을 책망하시면서 믿음을 촉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에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아담은 생명의 활기로 가득했던 에덴동산에 살면서 그곳에서 범죄하여 온 땅에 사망을 몰고 왔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망의 냄새가 가득했던 그 동산의 무덤에서 온 땅에 생명을 몰고 부활하심으로써 아담의 범죄와 타락을 완전히 역전시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 자신만의 부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활로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에게 참으로 기쁜 소식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십니다(고전 15:2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은 우리의 신앙의 핵심이고 우리의 위로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큰 위로를 얻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금생에서의 삶이 대단한 것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금생에서의 삶이 정말로 그렇게 대단합니까? 우리는 금생에서 여러 가지 비참함과 초라함과 슬픔을 피할 수 없으며, 우리는 곧 병들고, 곧 늙고, 곧 죽고 맙니다. 대단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부활은 영생으로의 부활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었다가 잠시 잠깐 다시 사는 그런 부활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부활은 이전에도 몇 번 있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들이 있었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난 적이 있었고(왕상 17장), 수넴 여인의 아들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왕하 4장).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죽었다가 살아났고(눅 8장), 나사로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요 11장). 그러나 그들은 모두 다시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원하고도 영화로운 생명으로의 부활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신 것을 믿읍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친히 자신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 외에 우리를 위하여 죽은 자가 누구며 그리스도 외에 우리를 위하여 다시 살아나신 이가 누구입니까?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읍시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부활에 연합한 자가 되어 살며,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갑시다. 그리고 온 천하에 다니며 이 부활의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갑시다(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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