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 3:10-17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14절)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첫째, 진리를 배워서 알아야 하고, 둘째, 배운 것을 확신해야 하고, 셋째,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
진리를 듣고 배워서 알아야 한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배우는 일과 확신하는 일과 거하는 일은 모두 중요하지만, 그 출발은 진리를 배우는 일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무엇보다 진리를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지식이 없이는 신앙생활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진리 지식을 수반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1문답은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이 진리라고 여기는 확실한 지식이며, 동시에 성령께서 복음으로써 내 마음속에 일으키신 굳은 신뢰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참된 지식은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믿어야 할 것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소요리문답 제3문답).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성경의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고, 진리를 아는 지식이 없이 믿음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지식이 없으면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진리 지식이 없는 사람은 무지한 이방인과 같다고 말했고 또 심지어는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말을 했습니다. 지식이 없으면 망합니다(호 4:6; 사 5:13).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듣고자 하고 알고자 하고 배우고자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녀들에게 온갖 지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열심을 내면서도 성경과 교리를 가르치는 것은 급한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급한 일이 무엇입니까? 다른 지식이 아무리 많고 돈벌이를 아무리 잘 해도 바른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이 없다면 그 인생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과 교회에서 성경과 교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배운 것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진리를 배웠다면 우리는 그 진리를 확신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확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진리 지식이라면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진리는 우리를 확신으로 이끄는 것이 보통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복음 진리, 성경의 진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편적으로 참된다고 받아들이는 일반은총에 속하는 진리들도 우리를 확신으로 이끕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중력의 법칙을 알고 확신하기 때문에 물건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조심합니다. 우리는 불이 모든 것을 태운다는 것을 알고 확신하기 때문에 맨손으로는 불을 절대로 만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지식이 주는 일반적인 확신입니다.
성경의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진리는 우리를 확신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하고, 진리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닻을 진리에 내려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 지식을 우리의 온 삶의 터와 기초와 골격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만 기초해서 우리의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을 잘 세워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확신하고 있습니까?
성경의 진리는 확실한 지식입니다. 이 진리 외에 우리의 삶을 완전히 맡길 진리가 없습니다.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성경에 따른 것이 아니고 성경과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확신이 없으면,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우리의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으로 삼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아무리 오래 믿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일들을 신앙적으로 처리할 수 없습니다. 성경적인 가치관이 형성이 되어 있지 않고, 그것이 삶의 확신으로 자리를 잡지 않으면, 신앙의 절개를 지킬 수 없고 신앙인으로서의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없습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한다
셋째, 진리를 배우고 확신하였다면, 그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 배우고 확신한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14절의 주동사는 “거하라(머물라)”입니다. 우리는 배우고 확신한 그 진리를 따라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 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진리 지식을 듣고 배우고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마 7:28).
성경 지식, 교리 지식을 체계적으로 알아서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익숙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말씀을 듣고 진리를 따라서 순종하며 행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또한 일평생 이것을 연습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믿음을 꺼내서 사용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이 듣고 많이 배운 자들, 많은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기대하시고 더 많이 요구하십니다. 진리에 대한 지식과 확신이 있다고 해도 행하지 않는다면 다 무슨 소용입니까?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일입니다. 진리는 단순한 지식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언제나 삶의 문제로 이어져야 합니다.
교리 교육을 회복합시다
그러므로 각 가정과 교회에서는 부지런히 성경과 교리를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성경과 교리를 배우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진리는 하나의 거대한 체계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일평생 배워도 다 배우지 못하고 다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경과 교리의 뼈대가 되는 중요한 내용들, 굵직한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이를 위해서 신앙고백과 요리문답과 같은 교리 표준문서들을 작성하여 그것으로 교인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교회 신조(보편 신조)라고 할 수 있는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과 아타나시우스신경, 그리고 장로교 교리표준 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 개혁교회 교리표준 문서인 벨직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도르트신경 등의 내용을 잘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교리적인 바탕이 없이는 성경의 가르침을 균형있고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오랫동안 교리 교육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이 일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합시다. 백부장 고넬료가 베드로를 만났을 때에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 10:33)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는 진리를 알고자 하는 왕성한 식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바른 진리 지식이 없으면 성경적 가치관, 성경적 인생관, 성경적 세계관도 가질 수 없습니다. 진리를 아는 지식이 없으면 결국 바른 판단을 못하여 마귀의 거짓말과 세상의 온갖 비진리에 속게 됩니다. 진리를 정말로 배우고 알았다면, 우리는 진리에 대한 확신을 함께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배우고 확신한다면, 진리를 따라 그대로 사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끊임없이 연습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진리를 따라 살면서, 다른 한편으로 또 다시 진리를 더 배우고 더 확신하여,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이 싸이클을 일평생 반복해 나가는 것이 곧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이 일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우리 모두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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