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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211003 광야의 시간

삼상 26:1-12

사무엘상 21-30장은 다윗의 광야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미움을 받고 생명의 위협을 받아서 사울이 죽기 전까지 도망자가 되어 광야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황량한 광야로 내몰린 다윗

다윗은 요나단과 눈물로 헤어진 후, 제사장들이 살고 있던 놉으로 급히 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진설병을 받아 먹고 또 골리앗의 칼을 받아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인 가드로 일종의 정치적 망명을 하였습니다(삼상 21장). 사울은 뒤늦게 놉으로 와서 그 땅에 살고 있던 제사장 85명과 그 가족들과 가축들까지 모두 죽이는 대학살을 벌였습니다(삼상 22장). 다윗은 가드를 떠나서 아둘람 지역의 동굴에서 지내기도 했고, 또 그일라 성을 구하기 위하여 그일라 성에 머물기도 했습니다(삼상 23장). 후에 다윗은 마온 황무지와 엔게디 요새로 거처를 옮겼다가 사울의 추격을 받기도 했고(삼상 24장), 십 광야에 머물다가 사울의 추격을 받기도 했습니다(삼상 26장). 사울의 추격이 계속되자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의 땅인 가드로 다시 정치적인 망명을 하여 시글락이라는 마을에서 1년 4개월을 지내기도 했습니다(삼상 27장). 그곳에서의 삶도 매우 아슬아슬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게 되었을 때에 다윗도 블레셋의 편에 서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할 뻔하기도 했습니다(삼상 28장). 하지만 블레셋의 방백들이 다윗의 참전을 좋게 여기지 않아서 다윗은 이스라엘 군대와의 싸움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삼상 29장). 다윗의 삶은 너무나 피곤했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신했던 광야의 시간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다윗의 광야 생활을 매우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하게 읽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도 광야 생활이 그러하였을까요? 그 시간은 모든 것이 불확실해 보이는 시간이었고,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은 늘 암살의 위협을 받는 시간이었고, 수많은 불면의 밤이었고,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서러운 시간이었고, 광야를 방황하며 굴속에서 피곤한 몸을 누이며 잠을 청해야 하는 고단한 시간이었고, 사람들로부터 끝없이 배신을 당하는 시간이었고, 친구들과 가족들로부터 멀리 떠나 외로이 지내던 외로움의 나날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을 충분히 의심하고 저버릴만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의 생각대로 되지 않고 모든 것이 우리의 기대대로 되지 않을 때가 바로 광야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부푼 꿈을 안고 우리의 삶을 마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써주시기를 소원하면서 우리의 삶에 임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우리의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 광야는 육신의 질병과 죽음의 문제를 인해 나의 내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 수 없어 모든 것이 불확실하여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 성도들의 광야일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는 성도들의 광야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믿고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해서 그 상처로 인해 씨름하고 있는 사람들의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희망하는 시간표대로 우리의 삶이 움직여주지 않을 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때, 우리가 얼마나 더 긴 시간을 그렇게 지내야 하는지 알지 못하여 불확실한 가운데 살아갈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고 선을 행하며 인내하며 기도한 다윗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대해 선하신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겨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에 대해 선하신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겼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되는 문제를 철저하게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다윗은 인위적으로 왕이 되고자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윗은 경거망동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창을 두 번이나 던졌을 때에, 사울에게 반격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맡기되, 다윗은 악을 행함으로써가 아니라 끝까지 선을 행함으로써 그 시간을 견뎌내었습니다. 다윗은 앞서서도 엔게디 광야에까지 쫓아왔던 사울이 굴속에 들어가서 발을 가리고 있을 때에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그 굴 깊숙이 앉아있었습니다(삼상 24:3). 다윗의 부하들은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기회이니 사울을 죽이자고 하였습니다(삼상 24:4). 하지만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을 치는 것이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인 줄 알았기에 사울의 생명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사울을 아꼈습니다(삼상 24:10).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십 황무지에까지 쫓아왔을 때에도(삼상 26장), 다윗은 아비새와 함께 사울의 진영으로 들어가서 사울의 머리맡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비새는 다윗에게 사울을 창으로 단번에 땅에 꽂아 죽이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8절). 하지만 다윗은 아비새에게 사울을 죽이지 못하게 했습니다(9-11절). 악을 행할 기회를 얻었다고 해서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권력을 찬탈하는 방식으로 왕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나라였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였습니다. 이스라엘마저 이런 방식으로 왕권을 교체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위에 아직 세우신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을 왕으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왕으로 세워주실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둘째, 다윗은 광야에서 인내하였습니다. 10년도 넘는 시간을 광야에서 보내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짐이 너무 무겁기에, 다윗은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포기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스스로 내려오는 길을 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과 야합하거나 사울을 죽임으로써 광야의 시간을 속히 끝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오지도 않았습니다. 다윗은 인내했습니다. 우리들도 각자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무겁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외롭게 될 수도 있고, 힘들고 지칠 수도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고,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고, 때로는 목숨이 위태롭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면, 그 무대에서 내려오지 마십시오.

셋째, 다윗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어떤 일을 만날 때마다 여호와께 묻고 또 물었습니다(삼상 23:2,4, 10-12). 다윗은 하나님을 생각하며 여호와께 탄원하였습니다(삼상 24:15, 26:24 참조). 시편 52편(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에게 이르러 다윗이 아히멜렉의 집에 왔더라 말하던 때에), 시편 54편(황무지 십의 사람들이 사울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다윗이 우리 곳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던 때에), 시편 56편(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 시편 57편(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시편 142편(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마스길 곧 기도) 등이 모두 이 시기에 다윗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던 기도의 내용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광야의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는지에 대한 기록을 읽을 때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게 합시다. 그것이 우리의 간증이 될 것이고, 우리의 자손들에게 신앙적 유산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삶에 대해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기억하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깁시다. 우리 모두 선을 행하며, 인내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함으로 광야의 시간을 잘 통과하게 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광야의 시간(요약 2021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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