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9:1-13
사무엘하 8-10장은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이후 그의 통치 중반에 있었던 대표적인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해주시겠다고 언약을 맺어주셨지만, 다윗은 여전히 사방의 적들과 수많은 싸움을 싸워야 했습니다(삼하 8,10장).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던 모든 전쟁들은 기본적으로 계시적이고 영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왕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통치를 이 땅에 임하게 하실 때에 마귀의 권세를 제압하고 패배시키시는 분임을 나타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기간에 전쟁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무엘하 9장은 이 시기에 있었던 참으로 따뜻했던 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1-5절)
어느 날 다윗은 그의 신하들에게 사울의 남은 자손이 있다면 그에게 “은총”을 베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1절). 사무엘하 9장에는 “은총”이라는 말이 3번 사용되었습니다(1,3,7절). “은총”이라고 번역된 히브리 단어는 “헤세드”입니다. 이 단어는 인애, 사랑, 자비, 호의, 은총, 신실함, 충성, 변함없는 사랑(steadfast love)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됩니다. 헤세드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말합니다. 헤세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의 언약을 잊지 않고 그 언약에 기초해서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무조건적 사랑을 총체적으로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다윗은 그러한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서 사울과 요나단의 남은 자손을 찾아서 그에게 은총을 베풀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다윗의 신하들은 수소문 끝에 사울의 종이었던 시바를 찾아서 그를 다윗 앞으로 데리고 왔습니다(2절). 다윗은 시바에게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3절). 이에 시바는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니이다”(3절)라고 대답하면서 그가 “로드발에 살고 있는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4절) 있다고 하였습니다. 로드발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00km도 넘게 떨어진 곳으로, 요단강 동편의 길르앗 지경에 속한 곳이었습니다. “로드발”은 히브리어로 “목장이 없다(pastureless)”는 뜻으로, 아마도 그 지역은 매우 척박한 땅이었을 것입니다. 그곳에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혈육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아들 므비보셋이 살고 있었습니다(6절). 므비보셋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황량한 땅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윗 왕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로드발로 사람을 보내어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게 했습니다. 암미엘의 아들 마길은 고아이
자 장애자가 된 므비보셋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으로 양육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므비보셋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6-8절)
므비보셋은 다윗에게 정치적으로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서 큰 두려움을 가지고 다윗에게 나아갔을 것입니다(6-7절). 하지만 다윗은 므비보셋의 이름을 부르면서(6절),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7절)고 말해주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을 인하여”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겠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전에 요나단과 언약을 맺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을 때에, 요나단은 다윗의 목숨을 건져주고 그를 피난시키면서 다윗과 언약을 맺어서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에 요나단의 집에 “인자함(헤세드)”을 베풀 것을 부탁하였습니다(삼상 20:13-16). 또한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피난하여 있을 때에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과 또 다시 언약을 맺었습니다(삼상 23:18). 요나단은 다윗에게 왕위에 오르게 되는 날에 사울의 집에 피로 복수하지 말 것을 거듭 부탁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 그 언약에 근거해서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사랑을 받아 누리면서, 그리고 수많은 싸움과 전쟁 가운데에서도 가는 곳마다 함께하시면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그는 자신이 이전에 요나단과 맺었던 언약을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로드발 황무지에 있던 므비보셋을 찾아서 만났을 때, 예전에 자신이 엔게디 황무지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때에 요나단이 찾아와서 “두려워 말라”고 했던 것처럼(삼상 23:17), 이제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똑같이 “무서워 말라”고 이야기해 주면서 그의 지친 심령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자기에게 베풀어주는 은총과 사랑에 감복하여 “이 종이 무엇이관대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8절)라고 하면서 자신은 그런 은총과 사랑을 받을 아무런 자격이 없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므비보셋은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9-13절)
다윗은 므비보셋을 말로만 위로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종이었던 시바를 불러서 사울과 그 온 집에 속한 모든 것을 므비보셋에게 돌려주도록 하였고, 시바로 하여금 므비보셋의 종이 되어 그를 공궤하도록 하였습니다(9-12절). 또한 다윗은 므비보셋을 자기 아들처럼 여겨서 그를 예루살렘에 거하게 하였고 왕자들과 함께 항상 왕의 상에서 먹도록 했습니다(10-11,13절). 므비보셋에게는 어린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미가였습니다(12절). 다윗은 미가 역시 자기 친손자처럼 대했을 것입니다.
사무엘하의 저자는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서 왕궁의 식탁으로 맞이한 이 따뜻한 이야기를 잊지 않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전쟁의 포화 가운데 피어난 한 송이 아름다운 꽃과 같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 이야기도 아니고 원수의 집안의 아들을 품어준 다윗 왕의 무용담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한창 전쟁으로 분주하고 소란했던 그 시기에 사울의 남은 자손을 찾아서 그에게 은총을 베풀 생각을 했던 것은,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언약적 은총과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누리고 있는 은혜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깊이 느끼고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한창 전쟁으로 분주하고 소란했던 그 시기에 자신이 요나단과 맺었던 언약을 떠올리면서 자신도 그 언약에 신실하게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들도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과 은총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것은 당연시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에게 은총을 베풀어야 한다는 사실은 자주 잊어버리곤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총과 사랑을 받은 것은 우리가 받은 은총과 사랑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은총을 베풀고 누군가를 사랑하도록 하심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생활로 정신없이 바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쟁 같은 우리의 삶속에서도 “사울의 남은 자손”을 찾아야 하고 “요나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받은 은총과 사랑을 생각하면서, 우리 또한 그 은총들을 누군가에게 흘려보내야 하고 누군가를 살려내야 하고 누군가를 위로해야 하고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고 누군가를 우리의 식탁으로 초대해야 합니다.
이런 은총과 사랑과 나눔의 삶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팍팍하게 될까요? 우리의 삶에는 따뜻한 이야기 하나 남지 않고, 전쟁의 기억밖에 남지 않을 것입니다. 바빠서 못한다고 하지 마십시오. 다윗은 전쟁 중에도 이 은총의 꽃을 피웠습니다. 우리의 가족과 혈육과만 잘 지내면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 5:46)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을 생각하고, 우리의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은총을 베풀고 사울의 남은 자손들에게 은총을 베풀며 그들을 우리의 식탁으로 초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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