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5:1-23
돌아온 왕자 압살롬이 백성들의 마음을 도둑질하다(1-6절)
사무엘하 15장은 압살롬의 반역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은 인간적으로 볼 때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물도 출중했고(삼하 14:25), 정치 감각도 뛰어났고, 총명했고, 리더십도 있었습니다. 압살롬은 자기 형 암논을 죽이고 3년 동안 도망자로 살다가 요압의 중재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2년을 더 기다린 끝에 아버지 다윗 왕과 입을 맞추고 화해하였습니다(삼하 14장). 하지만 압살롬이 다윗과 입을 맞춘 것은 아버지와 진심으로 화해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아버지로부터 일종의 정치적인 사면을 받아 왕자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인정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왕자로서의 지위와 명분을 되찾은 압살롬은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전위부대 50명을 세웠습니다(1절). 이는 왕자로서의 자기의 위용을 과시함과 동시에 왕권에 대한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는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일찌기 일어나” 예루살렘 성문 옆 길가에 서서 왕에게 재판을 청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불러 세우고는 그들의 사정을 들어주었습니다(2절). 압살롬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면서 “네 말이 아무리 옳고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않으셨다”(3절)고 하여 다윗의 통치에 대한 불만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압살롬은 자신이 이 땅의 재판관이 되면 어떤 분쟁이나 소송이든지 공정하게 판결할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의 존재감을 은근히 부각시켰습니다(4절). 사람들이 고마워하여 그에게 예를 갖추고 절하려고 하면 압살롬은 그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그에게 입 맞추어 주며 위로해 주었습니다(5절). 압살롬은 이렇게 4년 동안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했습니다(6-7절).
압살롬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자 했던 것은 그가 왕이 되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정당한 동기와 목적과 방법으로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얻는 것은 좋지만, 압살롬은 불순한 뜻과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친절과 호의를 베풀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압살롬은 그렇게 4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도둑질했습니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반역을 일으키다(7-12절)
이제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압살롬은 다윗 왕에게 나아가 자신을 헤브론으로 보내달라고 청하였습니다(7절). 압살롬은 자기가 그술 땅에 있을 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면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서원한 일을 이야기하면서(8절), 자신이 서원한 대로 헤브론으로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에게 이를 허락하고 평안히 가게 하였습니다(9절). 하지만 그것은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반역을 일으키기 위한 하나의 거짓 명분이었습니다. 압살롬은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신앙을 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압살롬은 매우 용의주도하게 반역을 계획했습니다. 압살롬은 4년 동안 왕자로서의 자기의 지위와 역량을 십분 활용하여 이스라엘 곳곳에 “자기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거사를 치르기로 하였습니다. 압살롬은 헤브론으로 내려갈 때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자기의 밀사들을 두루 보내어서 나팔소리를 듣게 되면 봉기하여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10절)고 외치도록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압살롬은 예루살렘의 주요인물 200명을 초대하여 그들과 함께 헤브론으로 내려갔습니다(11절). 압살롬은 거짓으로 “사기해서” 그들을 초대하였고, 그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아무 뜻 없이 헤브론으로 내려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무고한 사람들을 볼모로 잡은 것입니다. 또한 압살롬은 헤브론에 도착해서 제사를 드리기 전에 다윗의 조언자 아히도벨을 청하여 모셔 왔습니다(12절). 아히도벨은 굉장한 지혜를 가진 책략가였습니다. 아히도벨의 베푸는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삼하 16:23). 아히도벨은 밧세바의 할아버지이기도 했습니다(삼하 23:34). 아히도벨은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의 행복한 가정을 깨뜨린 다윗을 탐탁찮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히도벨을 압살롬이 청해온 것입니다. 이처럼 압살롬은 탁월한 정치 감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압살롬이 반역의 장소를 헤브론으로 정한 것도 그러한 정치 감각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헤브론은 다윗 왕국이 태동한 곳으로 역사적 정통성이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리하여 압살롬의 반역은 그 위세가 점점 커지게 되었고, 압살롬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졌습니다(12절).
가드 사람 잇대가 피난길에 오른 다윗을 따라가다(13-23절)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은 곧바로 다윗의 귀에 들어갔습니다(13절). 이에 다윗은 자기의 모든 신복들을 데리고 피난길에 나섰습니다(14-15절). 다윗은 왕궁을 비우고 떠나면서 후궁 열 명만을 남겨둔 채 예루살렘 성을 떠나게 되었습니다(16절). 왕이 길을 떠나자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백성들이 다 따라와서 예루살렘 성의 마지막 집인 “벧메르학”에 이르러 작별하였습니다(17절). 다윗의 모든 신복이 그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또한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육백 인이 왕의 앞으로 진행하였습니다(18절). 비록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라 이방인들이었지만 다윗이 왕이 되기 전부터 다윗이 왕이 된 후에도 변함없이 다윗을 따르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때에 다윗 왕은 가드 사람 잇대에게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19절). 다윗은 잇대에게 예루살렘에 남아서 새 왕을 섬기면서 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잇대에게 모든 가족들을 데리고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20절). 그러면서 다윗은 잇대에게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20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과 자비를 뜻하는 “헤세드”입니다. 또한 “진리”라는 말은 “성실하심, 신실하심”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잇대에게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과 신실하심이 함께 있기를 원한다고 축복하면서 예루살렘에 남아있도록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잇대는 살든지 죽든지 절대로 다윗을 떠나지 않겠다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했습니다(21절). 그리하여 다윗 왕은 잇대와 그 종자들과 그와 함께한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기드론 시내를 건너갔습니다(22절). 다윗 일행은 예루살렘의 거민들이 대성통곡하는 가운데 기드론 시내를 건너 광야길로 향하여 나아갔습니다(23절). 잇대는 참으로 충성스러웠습니다.
이 둘의 결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압살롬은 몇 년 동안 용의주도하게 반란을 계획했고, 공을 들여 사람들의 마음도 얻었고, 책사도 얻었고, 반란도 일으켰지만, 결국 압살롬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삼하 18장). 압살롬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잇대는 하나님의 언약을 생각하고 자기의 자리를 충성스럽게 지키다가 다윗의 군대 장관이 되어서 압살롬의 군대와 싸워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삼하 18장). 잇대는 인간적으로는 아무런 지지기반이 없는 이방인이었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린 다윗을 끝까지 도왔습니다. 잇대가 그렇게 한 것은 그가 언약적 관점에서 다윗을 상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위치가 있습니다. 압살롬은 압살롬에게 주신 위치가 있고 잇대는 잇대에게 주신 위치가 있습니다. 그 위치에서 충성해야 합니다. 압살롬의 반란은 단순히 다윗 개인에게 대한 반란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반란이었고, 잇대의 충성은 단순히 다윗 개인에게 충성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위치를 지키고 자기의 본분을 다하면서 신실함과 신뢰와 사랑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충성스러운 자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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