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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kjoon

22과 하나님은 언약의 사자를 보내주세요


본    문 말라기 3장 1~5절
읽을말씀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보아라, 내가 나의 사신을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을 것이다. 너희가 찾는 주께서 돌연히 자기의 성전으로 오실 것이다. 보아라, 너희가 기뻐하는 그 언약의 사신, 그가 이제 올 것이다’”(말라기 3장 1절).

말라기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사자”, “나의 사자”라는 뜻으로, 그는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시대적 상황은 에스라-느헤미야서와 거의 동시대로 추정되며 아마도 포로로 귀환한 후 100여 년의 시간이 흘렀을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포로들이 유대 땅으로 귀환하고 예루살렘이 재건되었지만, 몇 십 년이 못 가서 다시 사람들 사이에는 “종교적 회의”가 일어났습니다. 이는 그들의 “변하지 않는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성전은 재건되었지만, 여전히 나라를 페르시아의 속국이었고, 현실적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예언은 실제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허상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신앙생활의 내적 감격을 잊어버리고 형식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적, 도덕적으로 타락해 갔습니다: ①이방인과의 혼인, ②십일조를 내지 않음, ③안식일을 거룩히 지키지 않음, ④타락한 제사장, ⑤사회적 불의와 압제.

이러한 총체적인 난국 상태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에게, 말라기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예언활동을 하였습니다. 말라기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오가는 일련의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vs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현실적인 상황(바벨론 포로생활, 귀환 후 황폐한 삶)에 비추어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신다는 가장 큰 증거는 단지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백성으로의 “선택”이었습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는 것이 곧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최고의 증거”인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을 멸시하였다” vs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했습니까?”

또한 말라기는 제사장들의 부패와 타락을 책망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참된 예배로 인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앞장서서 예배를 멸시했습니다. 그들은 더러운 떡을 제단에 드리고, 저는 것, 병든 것, 흠 있는 것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이러한 제사장들의 행태는 백성들 가운데서도 확장되어, 부적절한 제물 드림을 물론,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소홀히 여기고, 사회적 불의를 행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과 통혼할 뿐만 아니라, 아내를 학대하고 이혼하였으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는 등 심각한 부패 상태에 빠졌습니다.

“너희가 말로 나를 대적하였다” vs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그러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세상의 행악자들은 죄를 짓고도 잘 사는데, 자신들은 신앙생활을 잘하는데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심지어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그 명령을 지키는 일은 아무도 소용이 없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렇듯 패역한 백성들에게 대하여,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신 분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와 그들이 “구하는 바, 주께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언약을 파기한 자들에게 심판을 행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새 언약을 맺으실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세상의 심판이 지연되는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행악자들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날에는 모든 악한 자와 교만한 자가 불살라져서 지푸라기 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은 자유를 얻고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말라기는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신실한 성품을 본받아, 그들 역시 인내하는 가운데 죄로부터 돌이키고, 나아가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의의 열매를 맺을 것을 촉구합니다.

[생각하기]

말라기의 시대적 상황은 오늘날 우리의 상황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더 이상 하나님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우리에게는 신앙적인 회의가 듭니다. 하나님의 영광, 약속, 심판과 같은 것들이 허상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의를 행하는 모든 것이 헛수고처럼 느껴집니다. 이와 같은 신앙적 회의는 나아가 우리의 삶까지도 불신앙으로 물들입니다. 습관적으로 예배하고, 아무런 생각 없이 세상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가 복 되고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는 것 같은 현실 속에서, 혹 우리 역시 이와 같은 무기력한 체념 속에서 “불신앙의 실제”를 살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한 분임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믿을 만한 분이며, 결코 변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종말에, 하나님은 반드시 악인을 멸하시고 의인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가운데, 인내하며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는 것 같지만, 결코 실패하거나 후회함 없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며,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나님 앞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언약의 사자이신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죗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죄인에서 영광스러운 의인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새 언약을 맺으사,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실제 속에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알기를 기도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약속이 부모인 우리에게 똑같이 주어졌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언약의 자녀들에게도 펼쳐질 것을 믿으며 함께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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