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작성자 사진병철 안

[22년 여름성경학교] 요나 1장

요나 1:1-16절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다

요나서 1장은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 성읍에 대고 외쳐라. 그들의 죄악이 내 앞에까지 이르렀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에 전하라고 하신 메시지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요나서 3장 4절을 읽어봅시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나님은 니느웨 성에 가득한 죄악을 인하여 사십 일 후 니느웨 성이 심판을 판게 될 것을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니느웨는 앗수르라는 제국의 큰 도시였습니다. 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두 가지로 묘사하십니다. 하나는 그 성이 “큰 성읍”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의 죄악이 하나님 앞까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니느웨는 그 성의 죄악이 하나님 앞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극도로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또 고대 앗수르 사람들은 매우 잔인하고 폭력적인 것으로 매우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앗수르인들은 적을 사로잡은 후 두 다리와 한쪽 팔을 잘라 냈다. 한쪽 손을 남겨 둔 이유는 죽어가는 희생자의 손을 잡고 조롱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희생자의 친구와 가족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잘린 머리를 장대에 매달고 행진하게 했다. 포로들의 혀를 잡아 뺐고, 밧줄로 그들의 몸을 잡아 당겨 산채로 가죽을 벗기고 그 가죽을 성벽에 전시했다. 그들은 살아 있는 청소년들을 불태웠다. 도성이 파괴되는 과정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노예가 되었고 잔인하고 폭력적인 대우를 견뎌야만 했다.”(팀 켈러)]

동시에 하나님이 보실 때에 니느웨는 ‘큰 성읍’이었습니다. ‘큰 성읍’이었다는 것은 단순히 규모에 있어서 큰 성읍이었음을 말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물론 실제로 니느웨는 매우 큰 도시였습니다. 니느웨는 성 전체를 다 돌아보려면 3일이 꼬박 걸릴 정도로 큰 성읍입니다(욘 3:3 참조). 하지만 하나님께서 니느웨가 크다고 하신 것은 성의 규모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큰 성읍’이라는 말에는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 성과 그 성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니느웨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매우 귀중한 존재들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과 성에 거주하는 수 많은 백성들을 아끼셨습니다(욘 4:11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에 임할 심판을 전하라고 하심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고 죄악으로 가득한 성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죄악에서 돌이켜 살게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8:23) 이처럼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요나를 통해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그들에게 알리고자 하셨습니다.

불순종하고 도망치는 요나

하지만 요나는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시지만,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 듣기를 거부합니다. 요나는 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일까요? 4장 2절에 기록된 요나의 말에 힌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고 니느웨 사람들에게 내리기로 하셨던 재앙을 니느웨 성에 내리지 않자, 요나는 하나님께 이런 불평을 쏟아 놓습니다. “...내가 서둘러 다시스로 달아났던 것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는 분이셔서, 내리시려던 재앙마저 거두실 것임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에 재앙을 내리지 않으실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께 불순종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비록 니느웨 성에 죄악이 가득했지만, 그 성을 크게 여기시고 아끼셔서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이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악독이 가득했던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셨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말한 것처럼 니느웨에 살던 앗수르 사람들은 요나의 모국인 북이스라엘에게 있어 원수와도 같았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앗수르는 오랜 기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습니다. 북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이거나 잡아가기도 했고 많은 조공을 바치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합니다. 따라서 요나가 생각하기에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니느웨로 보내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라고 하시는 것을 보니, 어쩌면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들을 회개하게 하시고 그들을 용서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요나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해야 마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니요? 결국 요나는 요나는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니느웨가 아니라 정반대 방향에 있는 다시스로 도망치기로 결정합니다.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라는 말은 마치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있을 것처럼 불순종하고 도망쳤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한다는 것은 “요나의 적극적인 거역행위를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죄라고 말합니다.

요나를 막으시는 하나님

요나서는 이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불순종하여 도망치는 요나를 가로막으십니다.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4절)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폭풍을 보내십니다. 모든 선원들이 자기 신들에게 기도하며 배 안에 실은 짐을 바다에 내던지며 살 길을 찾지만, 폭풍의 원인제공자인 요나는 배 밑창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폭풍을 보내어 자신을 추적하시는데도 요나는 이토록 무감각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도망치는 요나는 죄책감과 분노와 두려움과 같은 감정에 눌려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잠에 빠져서 잠시라도 이 현실을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고집과 회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거칠게 그를 추적하십니다. 잠들어 있는 요나를 배의 선장이 와서 깨우며 소리칩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소? 잠을 자고 있다니! 일어나서 당신의 신에게 부르짖으시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 와서 하나님의 선지자 요나를 꾸짖습니다. 이 또한 잠들어 있는 요나를 일깨우시는 하나님의 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원들이 뽑은 제비가 요나에게 떨어졌을 때, 요나는 더 이상 하나님께서 자신을 좇고 계심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원들은 제비에 뽑힌 요나에게 질문을 쏟아냅니다. 이에 요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오.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그분을 섬기는 사람이오.” 가장 먼저 자신을 히브리 사람이라고 밝힘으로써 요나가 자기 민족에 대해 가지고 있던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특별힌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는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뽐내며 자신은 그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이 주님의 낯을 피하여 달아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무언가 이상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고 하였고 또한 그 하나님은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심을 자랑했는데, 정작 요나 자신은 그 하나님의 낯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나의 이 대답이 우리에게만 이상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나의 말을 들은 선원들은 그에게 이렇게 소리칩니다. “어쩌자고 당신은 이런 일을 하였소?” ‘당신이 믿고 섬기는 신이 하늘의 하나님이시며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분이라고 하면서 당신은 어째서 하나님의 낯을 피해 바다로 도망치고 있는가?’

바다에 던져지는 요나

바다에 파도는 점점 더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요나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해야, 우리 앞의 저 바다가 잔잔해지겠소?” 그러나 요나는 자신을 들어 바다에 던지며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지금 요나는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배와 선원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이 한 목숨 내놓으리라’는 것입니까?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요나가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폭풍을 통해 요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나의 회개입니다. 하지만 요나는 회개가 아닌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합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가는 길을 택한 자신의 결정을 돌이키지 않습니다. 회개 대신 죽음을 택합니다. 결국 요나는 바다에 던져집니다.

조회수 32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