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작성자 사진병철 안

[22년 여름성경학교] 요나 4장


요나의 이러한 반응은 요나가 두 번째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 니느웨 성으로 간 것도 사실은 진정한 순종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고 재앙으로부터 구원 받게 되기를 여전히 원하지 않았습니다. 니느웨와 앗수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학대한 악인들이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을 받고 멸망당함이 마땅하다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어지는 2절과 3절은 이러한 요나의 속 마음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2절)


요나는 하나님께서 처음 자신을 니느웨로 보내실 때부터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악독한 니느웨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시는 것을 보니 하나님께서 악한 니느웨 백성들을 구원해주실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하나님의 낯을 피해 큰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다시스로 도망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기보다 싫은 그 일이 현실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는 차라리 자기 생명을 거두어달라고 기도합니다(3절).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요나를 책망하시거나 벌하시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요나를 설득해나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향해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새번역,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는 악한 니느웨를 향해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고 내리기로 하신 재앙을 거두신 하나님이 틀리셨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기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해 화를 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나의 분노가 옳으냐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질문에도 요나는 요지부동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기도의 자리를 박차고 나가 니느웨 성 동편으로 갑니다. 그리고 거기에 초막을 짓고, 그늘에 앉아서 그 성읍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려고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들의 회개를 보시고 그 뜻을 돌이키셔서 그들에게 내리려고 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요나는 왜 니느웨 성이 무너질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요나는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는 하나님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네. 제 생각이 옳습니다.’라는 마음을 견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악한 니느웨는 심판을 받아야한다는 자기 생각이 옳으며,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늦게라도 생각을 바꾸셔서 자기 생각을 따르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완고한 요나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요나 설득하기를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어리석고 완고한 요나의 마음을 일깨우시려고 박 넝쿨을 준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인 섭리 가운데 하루만에 박넝쿨이 높이 자라게 하셔서 요나가 지은 초막을 덮어주셨습니다. 그러자 요나는 박넝쿨로 인해 매우 기뻐합니다. 니느웨 백성의 회개를 보고서도 기뻐할 줄 몰랐던 요나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 박넝쿨 때문에 기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이튿날 새벽, 하나님께서는 이번엔 벌레를 준비하셔서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니 곧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아침에 되고 날이 더워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가 요나의 머리를 쬐니 요나는 기진하여 하나님께 죽기를 청합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요나가 박넝쿨을 인해 즐거워한 것은 단순히 박넝쿨이 만들어준 그늘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요나는 하루만에 자라 무성하게 초막을 덮은 박넝쿨이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만들어주신 것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심은 악한 니느웨 성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알아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요나는 크게 기뻐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박넝쿨을 하루만에 시들게 하시고 뜨거운 바람과 따가운 햇볕이 내려쬐게 하셔서 요나의 생각이 틀렸음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로 인해 요나는 크게 실망하여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는 말을 쏟아 놓았습니다. 이처럼 요나의 관심사는 늘 자기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뜻과 소원이 꺾이는 순간을 만날 때마다 쉽게 실망하고 낙심하며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박넝쿨과 벌레와 뜨거운 바람을 준비하셔서 요나에게 가르쳐주시고자 하는 교훈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하나님께서는 요나와 하나님 자신을 비교하십니다. 요나는 자신이 심지도, 기르지도 않았던 박넝쿨을 아껴서, 박넝쿨이 벌레 먹어 말라버린 사실을 인해 분노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요나에게 ‘미물에 불과한 박넝쿨은 그렇게 아꼈으면서도 니느웨에 살고 있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십이만명을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것을 그토록 싫어하고 화를 내는 그것이 옳으냐’고 물으십니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살게 되기를 원하는 내 마음을 아직도 모르겠느냐?’

조회수 61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