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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예수님은 잃은 자를 찾아오셨어요


본    문 누가복음 15장 11~32절
읽을말씀
“아버지는 그의 종들에게 말하였다. ‘어서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이 아들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찾았기 때문이다’”(누가복음 15장 22-24절 상반절).

누가복음 15장에는 세 가지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잃은 양 비유, 2) 잃은 드라크마 비유, 3)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 이 비유들은 모두 죄인들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열망을 보여 줍니다. 특별히 세 번째 비유에서, 아버지는 잃어버린 아들이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매우 기뻐합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진정으로 회개할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매우 기뻐하시며 그를 온전히 맞아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배경]

이야기의 배경에는 어떤 무리가 등장합니다. 특별히 이들 가운데에는 세리와 죄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부류로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린 자들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나아왔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시는 일에 대하여 불평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시는 예수님까지도 경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두 명이 있었습니다. 그중 작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신에게 줄 재산을 미리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고, 아버지에게서 멀리 떠나가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이 말은 아버지의 마음을 아주 아프게 했지만, 아버지는 기꺼이 아들의 요청을 들어 주었습니다.

작은 아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재산을 챙겨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과 놀고, 마시고, 즐기는 일에 모든 돈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빈털터리가 되자, 그때까지 작은 아들과 함께하던 사람들이 모두 그를 떠나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작은 아들이 누리던 방탕한 삶은, 이제 올무가 되어 그의 삶을 밑바닥까지 무너뜨렸습니다. 심지어 그 나라에는 극심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몹시 힘들어 했는데, 작은 아들 역시 가족도 없는 먼 나라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돈도 없는 상황 속에서, 작은 아들은 어느 농장에 들어가 돼지를 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에게 돼지는 부정한 짐승이었기 때문에, 돼지를 치는 일은 아주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도 여전히 작은 아들은 굶주림에 허덕여야 했습니다. 결국 그는 돼지들이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려 했지만, 그마저도 배부르게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 작은 아들은 비로소 집에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작은 아들은 자신이 하나님과 아버지에게 큰 죄를 지었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자신의 모든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백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겸손히 아버지의 처분을 따라) 아버지의 집에서 가장 낮은 신분(품꾼)으로 살아갈 각오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작은 아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아직 아버지의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을 때, 아버지가 집 밖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보았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을 향해 달려가 힘을 다해 그를 꼭 껴안았습니다.

작은 아들은 이전에 자신이 결심한 대로, 아버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아버지의 처분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작은 아들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지위와 특권들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아들이 돌아온 것을 축하하기 위해 잔치를 열었습니다. 아버지는 말하였습니다.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찾았다.”

[생각하기]

비유에서, 잃어버린 작은 아들은 죄인을, 아버지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실로, 진정으로 회개한 죄인들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잔치 자리에 앉아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깨닫고 뉘우치며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회개’라고 부릅니다. 사실 오늘날 ‘회개’는 많은 한국 교회의 정서에서 달갑지 않은 주제입니다. 회개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개함 없이는 죄 사함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죄의 문제를 처절하게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는 반드시 죄에 대하여 각성하고 뉘우치게 됩니다. 비유에서, 작은 아들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아버지를 생각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 앞에서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에 대하여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가장 비천한 자리에라도 자신을 받아들여달라고 겸손하게 요청합니다.

작은 아들의 이러한 모습은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회개란 자신의 권리와 관련해서, 하나님께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돌보심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죄에서 돌이켜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신자 역시 회개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참된 믿음’의 고백이 있다면, 그 믿음은 반드시 회심의 열매를 맺으며, 성화의 삶 가운데 매일의 삶을 돌이키며 죄 용서를 구합니다. 이러한 회개로의 촉구는 언약의 삶을 실천하는 방편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은혜이자, 언약의 특권입니다.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때,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을 기꺼이 맞아주시며, 그 일을 기뻐하십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기다렸던 것처럼, 우리가 놓여 있는 상황이 아무리 비참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먼 데서부터 보고 달려가 아들을 힘껏 안아 주었던 것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을 위하여 잔치를 벌인 것처럼,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기 백성에게 풍성한 선물을 주십니다.

날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오. 죄에 대한 처절한 몸부림 가운데,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회개를 가르쳐 주세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진정으로 부흥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전적인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의 자녀들과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많은 형제와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바랍니다. 그러함으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경험할 뿐만 아니라, 복음을 통해 잃어버린 자들이 돌아오는 기쁨에 기꺼이 동참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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