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 3:17-19
빼앗길 수 없는 신자의 기쁨
사람이 즐거움, 기쁨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요? 적어도 오늘 하박국 선지자가 말하는 이런 때는 아닐 것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3:17). 모든 수고와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기뻐하기는커녕 절망할 이유만 넘칩니다. 그런데도 선지자는 “나는 기쁘다!”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하박국의 기쁨의 이유가 오직 구원의 하나님께 있었기 때문입니다(3:18). 완전히 실패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실패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내게는 부족함이 없고, 두려움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시 23편). 늘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에 머무는 삶이어서가 아닙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원수가 내 앞에서 나를 삼키려 할 때도 있지만, 그때에도 나의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고 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푸른 초장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우리의 상황과 문제를 뛰어넘어 누리는 이 기쁨,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이 기쁨이야말로 신자의 놀라운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기쁨을 잃고 절망하는 궁극적인 원인은 어렵고 힘든 현실의 문제에 있지 않습니다. 현실의 문제에 압도되어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현실과 문제보다 하나님이 더 크신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크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신뢰할 때 우리는 이 기쁨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하박국서를 통해 생각해 보고 싶은 주제입니다. 본문(3:17-19)은 하박국서의 결론과 같은 말씀입니다. 이제 하박국 선지자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러한 고백과 찬송에 이르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다(1-2장)
먼저 하박국은 자신의 문제를 안고 하나님과 씨름했습니다. 하박국 1-2장은 선지자가 묻고 하나님이 대답하시는 대화로 구성되었습니다. 하박국이 가장 먼저 한 말은 “여호와여 내가 이렇게 간절히 부르짖는데 왜 듣지 않으십니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1:2)였습니다. 여기가 출발점입니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삶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붙잡고 말하는 것입니다. 탄식하고 불평하면서라도 하나님을 붙잡고 놓지 마십시오. 야곱이 그렇게 하나님과 씨름하였고, 욥의 인내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의 죄악과 불의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악인을 심판해주시고 의인을 구원해달라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응답을 주십니다. 갈대아 사람, 곧 바벨론을 일으켜 유다 백성들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나운 육식 동물처럼 주변 나라를 잡아먹는 강포한 자들이었고, “하나님을 믿느니 내 주먹을 믿는다”라고 말하는 교만한 자들이었습니다(1:7-11). 그래서 선지자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바벨론은 더 악하고 나쁜 사람들인데, 어떻게 그런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실 수 있습니까? 악인들에 의해 의인들까지 삼켜질 텐데, 어떻게 잠잠히 지켜보실 수 있습니까?” 이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 제목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처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처방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훨씬 나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박국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과 씨름합니다. 선지자는 파수꾼의 성루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바라보겠다고 말합니다(2:1). 반드시 하나님의 대답을 듣겠다는 것입니다. 2장 전체가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비록 지금은 악인들이 의인을 짓밟고 강포와 불의를 행하면서도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그들을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더디 오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니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하박국아, 나를 신뢰하고 기다리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란다.”
하나님의 대답은 하박국이 바라는 답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박국에게 더 좋은 응답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하박국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우리의 생각보다 크신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선하고 지혜로운 뜻을 신뢰하며 소망 중에 기다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기억하다(3장)
다음으로 하박국은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큰일을 기억했습니다. 3장은 크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신뢰하게 된 하박국의 기도입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뜻이 속히 이루어지길 구합니다. 다만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말아 주시길 바라며, 주의 백성과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합니다(3:2). 이어지는 3장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과 사랑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해 주셨던 역사적인 사건, 곧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찾아오셔서, 큰 권능으로 구원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박국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애굽 땅에서 구원해 내셨는지 회상하면서, “그렇지, 우리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지, 언약하신 내용을 기억하시고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악인은 그 뿌리까지 뽑아내시는 하나님이시지!”라고 자신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본문(3:17-19)을 보면 하박국은 큰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두려움이나 염려도 없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16절을 보면, 그는 강포하고 잔인한 바벨론에 의해 주의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성읍이 무너져 내릴 것으로 인해 몹시 두려워하였습니다. 복음은 현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마취제가 아닙니다. 우리를 둘러싼 많은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두렵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낙심하게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가 그 두려움에 빠져 절망하지 않게 하고, 주저앉지 않고 일어서서 믿음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복음은 죄와 죽음에서 비롯되는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너무나도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모든 소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일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구원의 큰일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실패한 것처럼 생각될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는 어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고 실패하지 않았음을 기억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겪는 고난과 실패와 결핍이 결코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무엇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십시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3:19a).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힘입니다. 우리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셔서 어떤 험산 준령도 뛰어넘게 하십니다. 우리의 힘이 되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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