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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5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

작성자 사진: 병철 안병철 안

롬 8:26-27


우리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뿐만 아니라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또 다른 호칭은 “보혜사”(요 14:16)이십니다. “보혜사(保惠師, 보호하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인데, 그 뜻은 ‘옆에서 돕는 분’입니다. “보혜사”는 우리 옆에서 우리를 격려하고 위로하기 때문에 위로자(comforter)로 번역되기도 하고, 우리의 갈 길을 일러주시고 인도해주시기 때문에 상담자(counsellor)로 번역되기도 하고,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나님께 아뢰어야 할지 모를 때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해 주시기 때문에 “대언자(advocate)”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 옆에서 우리를 보호하시면서 우리가 구원에 이르도록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며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육 간에 심히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실 연약한 정도가 아니라 전적으로 무지하고 무능한 자들이었고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이었습니다(엡 2:1). 그래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어떻게 우리를 도우십니까?


성령님은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시고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으로 도우신다

첫째, 성령님은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시고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는 성경 저자들을 감동시키셔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정확무오하게 기록되도록 해주셨습니다. 또한 성령님은 성경 말씀이 오류 없이 보존되고 전수되고 번역되는 전 과정을 주관해 주셨고, 시대마다 지역마다 복음의 설교자들을 일으켜주셔서 복음이 선포되게 해주십니다. 또한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명하셔서(밝혀주셔서) 진리를 깨닫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심으로써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님의 조명하심이 없으면 우리는 성경의 한 말씀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이 도움은 큰 도움이요 절대적인 도움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회심할 때만 아니라 우리가 회심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주십니다(요 16:14-15). 비록 우리가 참된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주와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에 모든 진리를 통달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진리를 아는 면에서 여전히 많이 자라가야 하는, 어리고 연약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심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는 진리를 자주 잊어버리고 이 진리를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럴 때에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진리로 일깨워 주시고 진리가 생각나게 해주십니다(요 14:26). 설교자들의 마음에 할 말을 일러주시는 분도 성령님입니다. 그래서 모든 설교자들은 설교를 준비할 때에나 말씀을 전할 때에나 성령님을 의지해야 하며, 설교를 마친 후에도 말씀이 우리 가운데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성령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로 가르치시고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심으로써 연약한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심으로 우리를 도우신다

둘째로, 성령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심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은 단순히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시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가 거듭나서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면서 성화를 잘 이루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고 자타의 구원을 위하여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면에 있어서도 성령님의 도우심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지금 우리는 성화의 치열한 투쟁 가운데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몸도 마음도 심히 연약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쉽게 지치고 우리의 정신은 굳세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잘 모르고,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좋을지 잘 모릅니다. 우리의 환경과 미래는 매우 불확실하고 불안정해 보입니다. 인간관계의 어려움들도 많이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면서 선을 행하면서 살아가는 삶은 복된 삶이지만, 그 길에는 또한 어려움도 많고 괴로움도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연약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십니다. 거룩의 영이신 성령님은 우리가 성화를 잘 이루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심으로써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화의 삶은 결코 손쉬운 삶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우리가 길 잃고 방황하지 않도록, 실족하지 않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확신시켜 주시고, 이제부터는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히 주를 위해 살도록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새 마음과 새 성품을 주시고, 성령의 소욕을 일으켜 주셔서 거룩을 추구하게 하십니다. 이 성령님은 세상 끝날까지 연약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신앙생활에 따르는 모든 시련과 풍파를 견딜 수 있도록 우리를 붙드시며 도와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시고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심으로 우리를 도우신다

셋째로, 성령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님은 기도의 영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심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일에 있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잠시라도 집중하여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싱클레어 퍼거슨 목사님은 기도에 있어서의 우리의 연약성을 “절대적이고 총체적인 연약성”이라고 부르면서, 우리는 “너무나 연약해서 자신의 핍절함에 대해서 일관되게 표현할 수조차 없는 그런 연약성”(퍼거슨, [성령], 21)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고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기도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할 마음을 주셔서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해주시며,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놓고 부르짖되,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기도하게 하십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기도하심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말할 수 없는 탄식 가운데 우리를 위하여 성부 하나님께 친히 간구하십니다(26절). 우리는 너무 연약해서 하나님께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대언자이신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해 주십니다(27절). 성도들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는 기도도 우리에게 큰 위로와 도움이 되지만,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힘이 있고, 더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하늘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아버지께 간구하고 계시며, 이 땅에서는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런 성령님의 전폭적인 도우심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자들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니, 성령님의 도우심에 감사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살아갑시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는데도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자기가 성령님보다 더 지혜롭고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참으로 어리석고 교만한 행동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성령의 가르치심을 잘 받고,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성령님의 인도를 잘 받으며 성령의 위로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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