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1:1-12
신약성경 전체에서 로마서 9-11장은 매우 특별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특별한 장입니다. 이 장들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이유와,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그리고 하나님께서 장차 이스라엘을 어떻게 다루실 것인지에 관해서 집중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언약 백성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 다수가 복음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그 불신앙의 이면적인 원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1-6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거 복음을 거부하였던 현상만을 놓고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1절). 여기에 대한 대답은 “그럴 수 없느니라”입니다(1절). 여기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 중 하나가 바로 바울 자신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요 베냐민 지파에 속하는 사람이었지만 구원을 받아서 사도와 전도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다시 한 번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2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기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 중 다수가 믿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이스라엘 전체가 버림을 받은 것처럼 보였을 뿐입니다. 참되게 믿는 자는 언제나 소수였습니다. 엘리야 시대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아합 왕 시대에 활동했던 엘리야는 영적으로 어두워져 가고 있던 북왕국 이스라엘의 영적 재건을 위해서 고군분투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척결하는 큰 승리를 거두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영적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엘리야는 이세벨로부터 생명의 위협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유대 땅 브엘세바를 거쳐 호렙 산까지 도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3절, 왕상 19:10). 그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두었다”(4절, 왕상 19:18)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옛적에 극심한 배교와 영적 암흑기에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 칠천 명을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남겨두셨던 것처럼, 모든 유대인들이 다 복음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the remnant)”(5절)가 있다고 말입니다(5절). 누군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근원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택하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택하심은 “은혜로”(5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로 되었다면 그것은 행위로 말미암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는다면 그것은 은혜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6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시지 않으셨고, 믿어 구원 얻는 것은 오직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되는 일입니다.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7-10절)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원인이 하나님의 택하심에 있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7절).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이란 유대인들이 율법을 행함으로써 그토록 얻고자 했던 의와 구원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들은 믿음으로 의와 구원을 얻었으며, 택하심을 받지 못한 나머지 “남은 자들(the rest)”(7절)은 완악하여졌습니다. “완악하여졌다”는 헬라어 동사 “포로오(πωρόω)”는 본래 의학 용어로 “피부가 딱딱하게 되다, 굳은살이 박이다, 부러진 뼈가 단단하게 굳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에 비유적으로 사용될 때에는 “완고하게 되다, 강퍅하게 되다, 무감각하고 둔하게 되다(막 6:52)”는 의미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완악하고 우둔하여진 채로 남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롬 9:18).
바울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사야 29:10과 신명기 29:4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8절). 하나님의 은혜의 택하심이 없이는 아무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깨달을 수 없고 거듭날 수 없고 믿을 수 없습니다. 또 바울은 시편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9-10절; 시 69:22-23). “밥상”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풍성한 은혜를 상징”(존 머리)하는 상징물입니다. 본문의 맥락에서 볼 때, 유대인들에게 “밥상”이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신앙적 배경과 특권, 신앙의 풍성한 유산을 가리킵니다. 바로 그것이 유대인들에게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이 되었고 그리하여 거기에 상당한 보응을 받게 된 것입니다.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11-12절)
사도 바울은 이 단락을 마무리하면서 하나의 결론적 논지를 제시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실족하였지만 완전히 넘어지고 쓰러진(πίπτω)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이스라엘의 죄와 허물(“넘어짐”으로 번역된 명사 παράπτωμα)로 인해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게 하셨고, 동시에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하셔서 그들도 결국에는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 하신다고 하였습니다(11절).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계획입니다. 끝으로 바울은,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고 이스라엘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된다면 이스라엘의 충만함은 얼마나 더 큰 부요함을 가져오겠느냐고 하였습니다(12절). “실패”로 번역된 헬라어 “헤테마(ἥττημα)”는 “실패(failure, ESV, NAS), 손실(loss, NIV), 감소(diminishing, KJV, NAB)” 등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실패, 곧 이스라엘의 불신앙은 구원 얻는 유대인들의 감소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수많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바로 믿고 바로 서면 이방인과 유대인 전체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일어나 얼마나 더 부요하게 되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렘 31:37).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는 언제나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택하심은 또한 이방인들에게도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만 되시는 분이 아니라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십니다(롬 3:29). 하나님은 이스라엘도 구원하시고 이방인도 구원하시려는 놀라운 구원 계획을 처음부터 가지고 계셨습니다(창 12:3). 하나님의 이 위대한 구원 계획에 우리를 포함시켜 주신 것을 인해 감사합시다. 은혜로 따라 되는 택하심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인해 감사합시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고 그의 택하신 자들을 친히 남겨두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구원은 결국 하나님의 택하심에 달려 있는 것이니, 내가 굳이 그리스도를 믿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냉담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구원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의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택함을 받은 자이기를 바라야 하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택하심을 확인하고자 해야 합니다(벧후 1:10).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지 않으심으로써 우리를 믿지 못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멸망으로 치닫던 인류 중 일부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은혜로 택해주셨을 뿐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입니다. 아울러, 우리의 밥상이 올무와 덫이 되지 않게 하십시오. 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것에 안심하지 마십시오. 복음을 여러 번 들었다는 사실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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