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1:33-36
올해는 종교개혁 505주년을 기념하는 해입니다. 교회사가들과 신학자들은 종교개혁자들의 종교개혁 운동을 다섯 개의 표어(모토)로 요약하였습니다. 그 다섯 개의 표어는 종교개혁자들이 종교개혁 운동에 헌신할 때에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학적인 입장과 신념들, 그리고 그들이 가장 강조했던 진리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종교개혁의 다섯 가지 “솔라”들
종교개혁의 다섯 표어들 중 첫째는 “오직 성경(솔라 스크립투라)”입니다. 이는 종교개혁자들이 모든 것을 성경의 권위 아래에 두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교황이나 교회의 회의나 전통의 권위에 의지해서 비성경적인 교리들을 세움으로써 신학(복음)이 변질되고, 비성경적인 관습들로 인해 교회가 변질되어가고 있었을 때, 종교개혁자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된다는 것을 그들의 확고한 신념으로 삼았습니다. 둘째는 “오직 믿음(솔라 피데)”입니다. 이것은 루터나 칼빈을 비롯한 모든 종교개혁자들이 그토록 강조했던 이신칭의 교리를 함축하는 표어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행함이나 공로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오직 그리스도(솔루스 크리스투스)”입니다. 이는 우리의 구원의 모든, 유일한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에게 집중했고 그리스도를 중심해서 모든 성경을 이해했고 가르쳤습니다. 넷째는 “오직 은혜(솔라 그라치아)”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도 은혜, 우리를 복음으로 부르심도 은혜, 우리의 거듭남도 은혜, 우리의 믿음도 은혜, 죄 사함도 은혜, 모든 것이 다 은혜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강조했습니다. 다섯째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솔리 데오 글로리아)”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았기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은, 실제로 모든 영광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철학자들은 “인간은 하나의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인데 내가 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되느냐?”고 반문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존재이며, 어떤 인간도 스스로 영광을 가지고 태어난 자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을 그 주인이신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은 매우 합당하고 이성적인 일입니다(소요리문답 제1문답).
창조와 구원과 심판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이란 무엇입니까?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많은 완전하심(manifold perfections)의 고유한 가치와 위대함과 아름다움의 광채(radiant)이다.” 하나님에게는 많은 완전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지혜와 능력과 사랑과 선하심과 공의와 진실하심이 완전합니다. 이런 완전하심들의 고유한 가치와 위대함과 아름다움의 광채를 가리켜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 되심의 아름다움과 위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크게 세 곳에서 드러납니다. 첫째,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창조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 지으신 만물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고 궁창은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냅니다(시 19:1). 그중에서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고귀하고 특별한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사 42:8, 43:7 참조). 그러므로 그의 피조물된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영광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에서 더욱 찬란하게 드러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드러난다고 했습니다(고전 4:6). “빛이 있으라”(창 1:3) 하고 말씀하심으로 그의 영광을 창조 세계에 밝히 드러내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얼굴, 곧 그리스도의 온 인격과 삶을 통해서, 특별히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대속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란하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복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그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고전 4:4).
셋째, 하나님의 영광은 장차 하나님의 심판에서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이 영광은 마지막날에 찬란하게 드러나게 될 심판주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날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빌 2:10-11). 그때가 되면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3-36)
사도 바울은 로마서 9-11장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로마서 1-11장 전체를 마무리하면서 로마서 11:33-36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합니다. 이 단락은 일종의 송영(doxology)으로, 이렇게 시작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33절). 우리의 머리는 작고 우리의 생각은 짧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다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고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습니다(사 55:9).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33-34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측량할 수 없고 하나님의 계획도 다 알지 못합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습니까? 또한 누가 주의 모사(상담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누가 감히 하나님에게 조언하고 충고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35절)? 우리는 모두 그의 지으심을 받은 피조물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서 하나님께 “하나님, 제가 이것을 하나님께 먼저 드릴 테니 나중에 제게 갚으십시오.” 하고 말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단락을 이렇게 마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36절). 모든 것이 주에게서 나왔습니다. 창조와 구원이 다 주에게서 나왔습니다. 우리의 생명도, 우리의 구원도, 모두 다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주에게로 돌아갈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날에 모든 영광이 주께로 돌려질 것입니다. 그날에 우리는 우리의 면류관을 벗어서 하나님께 돌려드리게 될 것입니다(계 4:10; 시 115:1). 그래서 바울은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하고 이 단락을 마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우리 자신의 만족과 행복이 아닙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내”가 더 행복해지는 것에 너무 많은 방점을 두고 삽니다. 그래서 모든 것의 목적을 다 뒤바꾸어버렸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정말 무엇이 행복한 삶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우리를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법도를 주셨습니다. 그 법도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갈 때 최고의 행복과 만족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 그리고 심판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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