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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9 네 형제를 판단하지 말라

작성자 사진: 병철 안병철 안

최종 수정일: 2023년 3월 25일

롬 14:1-12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다른 성도들과 바른 관계를 맺어나가야 합니다. 가정생활을 잘 하려면 가족과의 관계가 좋아야 하는 것처럼,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면에 있어서 모두 다 부족하고 서투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잘 맺어나갈 수 있는지 그 성경적 지침을 열심히 배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신자들이 다른 성도들을 어떻게 대하고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지를 교훈하는 소중한 말씀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만날 때

사도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1절)고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는 믿음이 “강한” 성도들도 있고,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상대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연약한 자들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1절)고 하신 것은 무엇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까? 당시 로마 교회의 성도들은 음식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안에는 유대인도 있었고 이방인도 있었는데,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후에 먹는 것, 특별히 고기를 먹는 문제와 관련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고기들을 먹는 문제로, 또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느껴서 고기를 먹지 않고 채소만을 먹는 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채소를 먹는 자를 가리켜서 믿음이 연약한 자라고 불렀습니다(2절).


사실 신자가 고기를 먹거나 먹지 않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구약 시대에는 음식을 구별해서 먹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신약의 성도들은 음식법에 더 이상 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의식들과 상징들이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종결되었으며 모든 그림자들이 끝나게 되었으므로 그것들의 사용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서 폐지”되었기 때문입니다(벨직신앙고백 제25조). 구약의 의식법에 해당하는 법들(제사법, 절기법, 음식법 등)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에, 고기를 먹든 먹지 않든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고기를 먹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성취가 되신다는 사실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율법이 금한 고기를 먹지 않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또한 그들은 아무리 우상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더라도(고전 8:4,8), 우상의 제물이 되었던 고기는 먹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기를 먹는 자나 고기를 먹지 않는 자나, 둘 다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의식법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있어서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신앙생활의 본질적인 문제의 차이는 아니었습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양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비본질적인 문제”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아디아포라(adiaphora)”의 문제라고 부릅니다. 이는 그 자체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각자 양심을 따라

판단해야 할 문제를 말합니다.

서로를 받아주고 비판하지 말라

거듭난 신자라 하더라도 모든 문제에 있어서 동일한 지식과 판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자들 간에도 비본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서로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경우에 서로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비판”으로 번역된 단어(디아크리시스, διάκρισις)는 “분별(discerning)” 또는 “판결(judgment)”을 의미합니다. 이는 무엇이 절대적으로 옳거나 틀리지 않은데도 사사건건 재판장이 되어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을 향해서 “이제는 의식법의 외적 준수는 폐지되었는데 너희는 왜 어리석게도 고기를 먹지 않고 채소만 먹느냐?”고 하며 업신여기거나 비판하지 말고,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향해서 “너희는 왜 ‘부정한’ 고기를 먹느냐?”고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절기 문제를 인해서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5절)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절기들 역시 의식법에 속합니다. 초대교회의 유대인 신자들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절기를 한꺼번에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절기 문제에 있어서 아직 신학적으로 성숙한 이해에 이르지 못하여, 여전히 절기를 지키는 것이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로마 교회 안에는 더 이상 구약의 절기들을 외적으로 지킬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잘 깨닫고 있는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둘은 모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기를 먹은 자도 “주를 위하여” 먹은 것이었지만, 먹지 않은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않은 것이었습니다(6절). 다만 고기를 먹지 않은 자들의 믿음은 연약하고 그들의 양심은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비본질적인 문제로 인해 믿음이 강한 자들과 약한 자들이 서로의 견해가 다르게 되었을 때에, 서로 비판하지 말고 서로 용납하여 받아주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3절). 그러므로 우리는 비본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다른 성도들을 비판하거나 업신여기거나 정죄하지 말고(1,4-5,10절), 서로 용납하고 받아주어야 합니다(1,3절). 다른 성도들을 비판하는 것은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것과 같습니다(4절). 그것은 월권이고 우스운 일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또한 우리는 우리의 형제를 비판하기 전에, 우리 각인이 다 우리의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자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10-12절). 최종 심판은 하나님께서 그의 심판대에서 하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강조하기 위해 이사야 45:23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11절).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장차 모든 무릎이 하나님께 꿇고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할 것입니다. 하나님도 문제를 삼지 않으실 비본질적인 것을 가지고 우리가 다른 성도들을 함부로 비판하고 비난하고 정죄한다면 그것은 월권이요 웃기는 일입니다.


개혁교회에 속해 있는 목회자들이나 성도들도 이런 우를 범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좋은 신학과 좋은 신앙전통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우월감에 빠져 다른 형제들과 다른 교회들을 쉽게 비난하고 정죄하고 업신여기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먼저 좋은 신학 전통을 알고 누리게 되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가지고 서로를 비난하거나 공격하거나 정죄하거나 업신여기는 무기로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신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우리의 형제들입니다. 서로를 업신여기고 비난하고 정죄하고 공격하고 치고받아서 연약한 형제들을 실족시키고, 그렇게 서로가 만신창이가 된 후에 믿음이 강한 자가 고기를 뜯어먹은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를 비판하지 맙시다. 우리는 왜 형제들을 비판하지 말고 용납해야 합니까? 그들은 여전히 우리의 형제고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주를 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서로 용납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판단에 맡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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