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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6 서로 용납하고 받아들이라

작성자 사진: 병철 안병철 안

롬 15:1-13


강한 자는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1-3절)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강한 자와 약한 자가 함께 어우러져서 살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고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가정에서는 강한 부모에게서 연약한 아기가 태어나게 하셔서 부모가 아기를 돌보고 양육하게 하십니다. 언제나 집에 건강한 청년들만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서 연약한 아기가 태어나게 하시고, 또한 강했던 부모들이 연로해지면 장성한 자녀들이 부모를 돌보도록 하십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연약한 것을 담당하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는 믿음이 강한 자와 믿음이 약한 자가 함께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보호해주고 돌봐주고 사랑해 주고 세워주고 유익을 끼치고 기쁘게 해주어야 합니다. 마치 어린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는 자녀들의 유익을 위해서 희생하면서 그들을 보호해주고 돌보아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강한 자에게는 약한 자를 돌보고 세워주고 유익을 끼치고 사랑할 책임이 따릅니다. 그래서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1절)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강한 자는 약한 자의 약점을 까발리거나 비난하거나 업신여기거나 조롱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진정으로 강한 자가 아니라, 교만한 사람이고 못난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강하신 분으로서 연약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온갖 비방과 수치와 멸시와 조롱을 개의치 않고, 강한 자로서 약한 자의 모든 약점을 담당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질고를 짊어지셨지만, 한 번도 우리의 약함과 죄악을 비방하거나 조롱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약점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강한 자의 태도입니다. 강한 자는 약한 자들을 내팽개치지 말고 그들이 자라고 변화될 때까지 그들을 받아주고 참고 인내하면서 유익을 끼쳐야 합니다(2절). 사실 우리 모두는 어떤 의미에서 다 약한 자입니다. 약점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지체들의 약점을 볼 때에 비난하거나 업신여기거나 조롱하거나 그들의 약점을 드러내어 그들을 수치스럽게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약점을 대신 담당하고 짊어져야 합니다. 다른 지체들의 허물을 덮어주고 그들에게 유익을 끼치고 그들을 세워주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시편 69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모든 멸시와 비방을 견디신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3절). 시편 69편은 대표적인 메시아 시편으로, 다윗이 고통 중에 기도한 내용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한 열심을 가지고 일하였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방뿐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주님께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온갖 멸시와 조롱과 비방을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먹기를 탐하는 자요 죄인들과 세리들의 친구이며 귀신의 왕이라고까지 비방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결국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를 대신하여 그렇게 죄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용납하고 받으라(4-7절)

사도 바울이 시편 69편의 말씀을 인용한 것은, 바로 그 시편의 말씀이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된 것은 물론이고, 또한 오늘 우리들을 위하여 기록된 말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우리의 위로를 위한 말씀입니다(4절). 받고 소망 중에 인내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4절).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주심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용납하고 받아주어야 합니다(5,7절). 주님께서 죄인들의 연약을 짊어짐으로써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서 택하신 자들을 구원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뜻을 같이 하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5-6절). 이 일을 위해서는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안위를 위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소망 중에 인내하며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또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 곁에는 언제나 우리의 사랑과 인내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강한 자는 연약한 자를 돌보고 세워주도록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7절)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주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것과 같이 우리도 서로 용납하고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8-13절)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신실하심)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주셨던 언약을 성취하심으로써 할례(할례자)의 수종자(종)가 되셨습니다(8절).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신 하나님께서 할례자들을 섬기는 종이 되신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찾아가셔서 그들을 받아주시고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심으로 그들을 구원하셔서 그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9절).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통해서 찬송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실 것을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구약 성경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온 열방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며 찬송하게 될 것을 자주 내다보며 예언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열방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을 예언한 구약 성경의 말씀을 9-12절에서 연거푸 네 번 인용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역사서(삼하 22:50, 시 18:49)와 모세오경(신 32:43)과 시편(시 117:1)과 선지서(사 11:10)에서 한 구절씩 인용하였습니다. 이 인용문들에는 “열방”이라는 단어가 공통으로 등장합니다. 이 모든 구절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열방)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열방을 받아주셔서 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도록 하셨고 열방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연약한 자들을 받아들이고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열방이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단락을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3절) 사도 바울이 말하는 이 소망은 어떤 소망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내와 수고를 통해서 연약한 자들을 강하게 하시고 성숙하게 하시며 그리스도의 교회를 친히 세워나가실 것이라는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약한 자들을 볼 때 그들을 책망하거나 멸시하거나 업신여기거나 다그치지 말고, 소망을 가지고 그들의 연약함을 대신 담당하면서 그들에게 유익을 끼치고 덕을 세우고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강함을 그들의 약함을 짊어지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믿음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 가운데 인내하며, 약한 자들의 약점을 대신 담당하고, 서로 용납하고 덕을 세우며 살다가 주님 앞에 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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