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5:18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오순절에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강림하셨습니다(행 2장). 마치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상 때부터 믿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더욱 굳게 믿도록 하셨던 것처럼, 그리고 성자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강림하셔서 그의 공생애를 통해서, 특별히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밝히 보여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고 더욱 굳게 믿도록 하셨던 것처럼, 성령 하나님께서도 영광스럽게 강림하셔서 성령님의 영광을 드러내 보여주심으로 성령님을 더욱 두려워하고 의지하고 성령님을 더욱 굳게 믿도록 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그때에 내가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욜 2:28-30; 겔 36:26-27 참조). 예수님께서도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요 14:25-26, 15:26 참조).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5; 눅 24:49 참조).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이 모든 예언과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오순전 성령 강림 사건은 구속사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중요한 계시 사건이었습니다. 싱클레어 퍼거슨 목사님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두고 말하기를, “오순절은... 주님의 십자가에 달리심이나 죽으심 그리고 부활 등의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구원 역사(historia salutis)의 한 사건이요,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의 눈금으로 짜맞춰져서는 안 된다”(퍼거슨, [성령], 99)고 하였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과 같은 경험이 모든 개인의 구원 서정에서 매번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임하십니다.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임하신 성령님께서는 지금도 온 세상의 믿는 자들에게 부어지고 계십니다(슥 14:8 참조). 지금도 성령님께서는 개인적으로 믿는 자 각 사람에게 임하여 거듭나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성화를 이루어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의 세례와 내주하심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세례와 계속적인 내주하심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이처럼 성령님은 강림하셨고,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명령형 표현은 신약성경에서 이곳에서 유일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명령하신 것은, 그 당위성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신자들은 신자라면 마땅히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또한 여기에는 모든 신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라는 주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동사는 현재 시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는 계속해서 성령으로 가득하게 되어야 한다는 명령입니다. 그리고 이 동사는 수동태 동사입니다. 이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일임을 말해줍니다.
신약성경에서 “충만하다, 충만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동사는 두 개인데, 하나는 플레로오(πληρόω)라는 동사이고, 두 번째는 핌플레미(πίμπλημι)라는 동사입니다. 플레로오 동사가 주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86회). 플레로오 동사는 기본적으로 “가득 채우다(make full), 완전히 채우다(fill up completely)”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마 13:47)라고 하셨을 때, “가득하매”라는 동사가 플레로오입니다. 이 동사는 주로 수동태로 사용되어 “~으로 가득하게 되다, 충만하게 되다(be or become full of)”라는 뜻을 가집니다. 구약의 예언이나 약속을 “성취하다, 이루다(fulfill)”라는 의미로도 자주 사용됩니다(예, 마 1:22, 5:17 등).
“가득하게 되다, 가득하다”라는 뜻으로 번역되는 또 다른 동사는 핌플레미입니다. 핌플레미 동사는 기본적으로 “채우다(fill), 성취하다(fulfill)”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 동사도 주로 수동태로 사용되어 “~으로 채워지다, 충만하게 되다, 가득하게 되다(filled with)”라는 뜻을 가집니다. 따라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행 2:4)는 말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고, 성령으로 가득하게 되고”라는 뜻입니다(행 5:17 참조).
좋은 것으로도 충만하게 될 수도 있지만, 나쁜 것으로도 충만하게 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근심으로 가득하게 되었던 때도 있었고(요 16:6), 기쁨으로 충만했던 때도 있었습니다(행 13:52). 아나니아는 그의 마음이 사탄과 사탄의 생각으로 가득하게 되어 성령과 교회를 속이고 베드로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행 5:3).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고 가득하게 되라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고 할 때에는 플레로오 동사가 사용되었습니다. 결국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라, 성령으로 가득하게 되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고 가득하게 되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첫째,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고 가득하게 되는 것은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인식하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역사하고 계심을 깊이 인식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내주하시지만 성령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삶은 성령으로 가득한 삶이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깊이 인식해야 됩니다. 성령을 근심시키거나 성령을 소멸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은 성령의 생각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에서는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라는 말씀 대신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골 3:16)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되고 가득하게 될 때 우리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으로 가득하게 되고 충만하게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게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모든 신자들이 간절히 추구해야 하는 어떤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 영혼을 가득하게, 충만하게 채워가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주장하게 되기를 추구하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살기를 소원하며, 그리스도를 위하고자 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를 소원하며 사는 것이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셋째, 성령으로 충만한 삶은 실제로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삶입니다. 성령을 좇아서 순종의 삶을 살면서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인격과 삶에 맺히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성령 충만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마땅히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충만합니까? 우리의 생각은 무엇으로 가득합니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꽉 채우고 지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과 세상의 것들에 취해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성령의 생각으로 가득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자 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합니까?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합니까? 성령의 임재와 내주하심을 깊이 인식하고,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성령의 생각으로 충만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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