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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230618 바울의 마지막 인사와 송영

롬 16:21-27

사도 바울의 마지막 인사(21-24절)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끝맺으면서 다시 한 번 여러 사람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앞서 로마서 16:1-16에 등장했던 27명은 뵈뵈를 제외하면 모두 로마 교회의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등장하는 8명은 대부분 바울과 함께 하고 있던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제일 먼저 소개된 디모데는 바울의 전도를 받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후, 바울의 2차 선교 여행 때부터 바울과 동행하며 바울의 복음 사역을 도운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21절; 행 16:1-3; 고전 16:10; 살전 3:2). 디모데는 바울이 복음으로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바울을 대하였습니다(빌 2:22).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자주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고전 4:17, 딤전 1:2,8; 딤후 1:2).


디모데 다음으로 언급된 사람은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입니다. 야손은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며 바울을 보호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행 17:5 이하). 누기오나 소시바더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없지만 이들은 모두 고린도교회의 신실한 성도들, 교회의 기쁨이 되는 성도들, 충성스러운 일꾼들이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로마서의 대서인인 더디오가 등장합니다(22절). “대서인(代書人)”이란 말 그대로 문서를 대신 써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바울은 서신서를 쓸 때에 종종 대서인을 통해 썼습니다. 바울이 로마서의 내용을 불러주면, 더디오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 적었던 것입니다.


또한 가이오가 등장합니다(23절). 가이오는 고린도에서 바울에게 세례를 받은 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고전 1:14). 바울은 가이오를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23절)라고 소개했습니다. “식주인(食主人)”이라는 말은 손님들을 맞이해서 잠자리를 제공하고 먹을 것을 대접하는 집주인(host)이라는 말입니다. 가이오는 자기의 집을 개방해서 고린도교회가 모이게 하고, 예배나 모임이 끝나면 식사 대접도 하면서 성도들을 섬겼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에라스도와 구아도입니다(23절). 에라스도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에 고린도에서 전도를 받아 고린도교회의 신실한 일꾼이 된 사람으로 보입니다. 에라스도는 고린도 시의 재무관직에 있으면서(23절), 고린도 교회를 지킨 신실한 복음의 일꾼이었습니다(딤후 4:20). 또한 구아도가 있습니다. 구아도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은 없지만, 구아도 역시 고린도교회의 신실한 성도이자 일꾼으로 인정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로마서를 끝맺으면서 이렇게 많은 이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소개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로마서가 어떤 성격을 가진 서신인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내는 유언장과 같은 서신입니다. 바울은 이방인 선교의 요충지였던 로마에 꼭 한 번 방문해서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복음의 진수를 가르치고 복음 안에서 교제함으로써 로마 교회를 더욱 굳건하게 세우기를 열망하였습니다(24절). 하지만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성도들이 모은 구제금을 전달하기 위해서 먼저 예루살렘으로 가야 했습니다. 바울은 구제금 전달도 전달이지만,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예루살렘 방문을 통해서 사랑하는 동족 유대인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복음의 진수를 증거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결박과 환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심령의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했습니다(행 20:22-24).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순교를 당하게 되면 로마의 성도들과 만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마치 유언장을 쓰는 심정으로 로마서를 써내려갔던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바울로 하여금 유언장과도 같은 로마서를 마치면서 그의 동역자들의 이름을 기록하게 하신 데에는 여러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첫째, 성령님께서는 그들이 바울과 동역함으로써 주님을 섬긴 일을 귀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며 인정하시고 칭찬하신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계십니다. 둘째, 이것은 또한 바울의 추천장과 신임장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이름을 소개함으로써, 자신이 혹시 예루살렘에서 순교를 당하게 되는 경우에도 자신의 뒤를 이어서 복음을 위해서 일하게 될 교회의 소중한 일꾼들이 누구인지를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셋째,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디모데, 더디오, 가이오, 에라스도와 같은 복음 전도의 열매가 있어야 할 것을 교훈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다 바울의 복음 전도의 열매였습니다. 우리의 삶의 유언장에도 이런 이름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마지막 송영(25-27절)

이제 바울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송영으로 로마서 전체를 끝맺고 있습니다(25-27절). 25-27절을 새롭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나의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선포를 따라, 그리고 영원 전부터 비밀로 감추어져 있다가 이제 하나님의 명령을 좇은 선지자들의 글을 통해 드러난 신비의 계시를 따라 너희를 능히 강하게 하셔서 모든 민족을 믿음의 순종에 이르게 하실 분, 곧 유일하게 지혜로우신 하나님께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영원무궁히! 아멘.”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한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복음은 결국 죄인들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구속의 의미를 알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복음은 그리스도를 선포(설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시지 않았다면 이 복음은 우리에게 영원토록 감추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족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이 복음을 계시하시고 그것을 기록하도록 명령하셔서 비밀이었던 복음이 계시로 드러났습니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드러났던 복음의 광채가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강렬한 빛으로 비추었고,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장 찬란하게 드러났습니다. 사도들은 그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파하기 시작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의 선포(설교)를 통해 지상에 교회를 세우시고 성도들을 굳세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통해 열방을 믿음의 순종에 이르게 하실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계획하시고 능히 이루실 하나님은 참으로 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 송영은 모든 영광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선언이자 선포인 동시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는 명령이며, 동시에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하며 소원하는 축원입니다.

로마서의 결말이 송영인 것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모든 성도들의 삶의 위대한 결말이어야 합니다. 모든 것의 궁극적인 종착지는 바로 이곳입니다. 세상의 모든 역사의 결국도 하나님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합 2:14).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의 삶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바울은 어쩌면 자신이 지상에서 쓰는 맨 마지막 문장이 될지도 몰랐을 문장을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송영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선포하고 찬송하는 송영의 삶을 살다가 우리의 삶의 맨 마지막 문장을 송영으로 삼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다른 영광을 구하지 맙시다. 우리 자신의 영광도 구하지 말고 이 세상의 영광도 구하지 맙시다. 오직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만을 추구하고 그 하나님만을 드러내고 높이고 자랑하고 찬송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솔리 데오 글로리아!


바울의 마지막 인사와 송영(로마서 16장 21-27절 요약 20230618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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