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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230716 복음의 동역자들(이상규 목사)

롬 16:1-9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있으면서 1,400km 떨어져 있는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로마서는 총 16장으로 되어 있는데, 바울은 15장에서 편지를 맺고 마지막 16장에서 로마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6장에는 총 34명의 이름이 언급됩니다. 34명의 이름 중 로마교회 신자가 아닌 사람을 빼고 나면 26명이 남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두 사람이 있으므로 바울은 적어도 로마 교회 성도 28명 이상을 알고 있었고 그들에게 문안 인사하고 있는 것입니다(13,15절 참조).


성경이 기록된 당시에는 모든 사람을 세 가지 기준으로 판단했습니다. 첫째는 유대인인가 이방인인가 하는 인종적인 구분입니다. 둘째는 사회적 신분의 문제인데 자유인인가 노예인가를 판단했습니다. 마지막은 성(性)의 문제인데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구분하였습니다(갈 3:28 참조). 그래서 우리도 이 시대로 돌아가서 세 가지 범주를 가지고 로마 교회 성도들의 구성을 한번 따져 보고자 합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의 구성(인종,신분,성별)

먼저 인종적으로 한번 따져 보겠습니다. 7절에서 바울은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유대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이었던 바울의 친척이었기 때문에 유대인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또 11절에서는 “내 친척 헤로디온”이라고 말했으므로 “헤로디온”도 유대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밖에 로마교회의 대표적인 유대인의 이름이 3절에 언급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브리스가(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대표적인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렇게 따져보았을 때, 로마서 16장에 기록된 26명 가운데서 유대인이 5명이었고 이방인이 21명이었습니다.


로마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 있는 교회였습니다. 로마교회는 인종적인 차별이 철폐되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혼제된 공동체였습니다. 당시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큰 차별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지옥 불에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이방인을 만드셨다고 가르쳤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유대인과 같은 모습으로 만든 것은 유대인들이 그들을 부릴 때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철저하게 무시했고, 그들과 함께 앉거나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대에 로마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섞여 있는, 인종적 차별이 철폐된 공동체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사회적 신분의 문제를 따져 보겠습니다. 비록 로마서 16장에 언급된 사람들의 이름에는 그 사람의 신분이 표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름을 통해 어느 정도 그들의 신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 노예의 이름으로 고정화된 이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6장에도 노예에게 붙여졌던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고 하였습니다(12절). 두 사람은 자매인데, 이들은 노예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같은 절에 등장하는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 역시 노예 이름입니다. 이렇게 따져보았을 때 로마서 16장에 기록된 이름들 가운데, 노예 이름이 11명, 자유인이 15명 언급됩니다. 즉 로마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일부는 자유인이었고 일부는 노예였습니다.


지금은 이런 기록들을 읽을 때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지만, 그 시대로 돌아가면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시대에 자유인은 노예를 인간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노예는 일종의 소모품, 움직이는 도구, 말하는 가구처럼 취급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자유인들은 노예와 함께 앉지도 음식을 먹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로마교회 안에는 자유인과 노예 사이에 아무 차별이 없이 한 믿음의 권속이 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로마서 서두에서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의 믿음에 관한 소문이 온 세상에 전파된 것을 인해 감사한다고 한 것은 아마도 이런 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롬 1:8 참조). 실제로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런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사람이 만든 관습과 차별의 벽이 무너지고 복음 안에서 하나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性)의 문제를 따져 보겠습니다. 로마 교회 안에는 남자와 여자가 섞여 있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6절),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7절), 두루배나와 두루보사, 버시도 모두 여자입니다(12절). 이렇게 다 따져봤을 때, 로마서 16장에 기록된 26명 가운데서 여성이 8명, 남성이 18명이었습니다. 즉 남성과 여성이 섞여 있는 공동체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남녀 차별이 철폐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하물며 이천년 전에는 얼마나 심했을까요? 그런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로마교회는 남성과 여성의 차별 없이 주님을 섬기는 공동체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6장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네 가지

마지막으로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네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로마서 16장은 우리에게 성도들 간의 믿음의 교제의 중요성을 가르쳐줍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1,400km나 떨어진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무려 26명의 성도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문안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도들 간의 믿음의 교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도들 간의 믿음의 교제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때로 얼굴을 마주하고 나누기 어려움이 있을 때, 짧은 문자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서로 소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서로 간에 아름다운 영적인 교제가 있는, 교제가 풍성한 교회를 세워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로마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유대인과 이방인, 노예와 자유인, 여성과 남성으로 이루어진 교회였습니다. 당시 시대상을 생각할 때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원수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주님 앞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중요한 특징은 누구든지 와서 예배 드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교회의 연합을 방해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든지 교회에 와서 주님을 섬기고 믿음 안에서 영적인 자유를 누리고 주님을 섬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셋째로 모든 차별을 허무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로마 교회는 어떻게 유대인과 이방인, 노예와 자유인, 여성과 남성 사이에 아무런 차별 없이 주님을 섬기는 교회가 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법이나 교육을 통해 이룬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십자가의 사랑 때문에 서로를 환대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는 전에 멀리 있는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고 하였습니다(엡 2:13 참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원수된 자들을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변함없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충만한 교회를 세워 가시는 모든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복음의 동역자로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16장에는 사람의 이름이 많이 언급되어 있지만 이름 앞에는 그 사람을 칭하는 호칭이 있습니다. 예컨대 그냥 마리아라고 말하지 않고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라고 되어 있습니다(6절). 16장에 등장하는 모든 호칭들이 다 귀하지만 한 가지만 선택한다면 동역자라는 말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3절) 세상에는 많은 타이틀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타이틀은 잠시 입고 있다 벗어 버리는 옷가지 같은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사모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 칭호가 있는데, “복음의 동역자”란 말입니다. 동역자라는 말은 같은 목표와 목적을 가지고 함께 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지금의 교회로 발전하고 성장해 온 것은 여러 성도들의 동역이 다 어우러진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것을 다 포기해도 복음의 동역자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30716(롬1601-복음의 동역자들)요(이상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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