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9편
모든 시편은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의 입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49편은 세상의 모든 인생들을 향해서 “들으라”(1절)고 말씀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만민들이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거민들을 지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라 자손의 입을 통해 지혜와 명철의 말씀을 비유(잠언)와 노래의 형태로 주고 계십니다(3-4절).
죄악이 나를 둘러싸는 환난의 날에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5-12절)
먼저 시편 기자는 “죄악이 나를 따라 에우는 환난의 날에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5절)라고 하였습니다. “죄악”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문자적으로는 “나에게 악을 행하는 자들의 죄악”을 의미합니다. “나에게 악을 행하는 자들”의 특징은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6절)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며 세상의 재물을 자신의 자랑과 힘으로 삼고, 돈으로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부와 권력을 믿고 자긍하면서(뽐내고 자랑하면서)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악을 행하며 경건한 성도들을 압제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에 압도적이고 위협적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그들의 기세에 눌려 위축되어야 합니까? 여기에 대한 답은,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대답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두려워할만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매우 가련하고 가난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속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 속전(ransom)을 드릴 수 없는 가련한 자들입니다(7절).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값은 너무나도 비싼 것이기 때문입니다(8절). 온 세상의 재물을 다 합한다 해도 그것으로는 한 생명도 구속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값비싸서 그 무엇으로도 그를 영원히 살게 하거나 무덤을 보지 않게 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9절)고 선언하십니다. 인생 중에 영원히 살아서 썩음(구덩이, 무덤, 죽음)을 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재물이 많고 건강한 사람이라도 죽음과 무덤을 피할 수 없습니다. 지혜자도 죽고 무지한 자도 죽고, 왕도 죽고 부자도 죽고, 모든 사람은 다 죽습니다(10절). 그리고 그들의 모든 재산은 다른 사람들에게 남겨집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당연한 진리를 잊어버리고 삽니다. 오히려 자기는 영원히 살며 자기의 거처도 대대에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토지에 자신의 이름을 붙입니다(11절). 하지만 이 얼마나 덧없는 일입니까! 그들은 곧 무덤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대대로 거하게 될 것이고, 그들이 소유했던 땅에는 곧 다른 사람의 이름이 붙여질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경고하십니다. 사람은 고귀한 존재이지만,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없고 결국 무덤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말씀합니다(12절).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 죽음 이후 영원한 형편을 준비하지 않고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12절).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13-20절)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아무 두려움 없이, 헛된 것을 의지하고 자랑하며, 온갖 악을 행하는 데 거침없이 살아갑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가며, 오히려 악인들의 말을 칭찬합니다(13절). 그 결과, 그들을 추종하던 무리들은 어리석은 양(羊)과 같이 음부로 내려가게 될 것이며, 사망이 그들의 목자가 되어 그들을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14절). 그리고 새 날, 새 아침이 오면 정직한 자 곧 공의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왕이신 것이 그 날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에, 그들이 뽐내며 자랑했던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음부에서 소멸하게 될 것이며, 그 거처조차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15절). 여기에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라고 고백하는 “나”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모든 참된 신자들을 대표하는 “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서 나를 영접해 주신다는 사실에만 우리의 모든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영원한 사망과 지옥 형벌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셔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를 구속할 값인 속전을 마련하여 그의 피로 값 주고 우리를 사서 그에게 나아오는 모든 자들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생명으로, 영원한 아버지의 집으로, 영광의 처소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요 10:11)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 점점 재산이 늘어나고 부자가 되고 그 집의 영광이 더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주눅 들거나 위축되거나 자신을 초라하게 생각하거나 그들을 부러워하거나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16절). 왜냐하면 그 사람도 죽을 때에는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고, 그의 영화도 그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17절). 비록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자신을 복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 자신에게 아무리 잘 해주고 아무리 풍족한 삶을 살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과 칭송을 한 몸에 받으며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도 결국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서 영원한 흑암 가운데 거하게 될 것입니다(18-19절). 이 세상의 형적은 다 지나갑니다(고전 7:31).
그래서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다시 경고하십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20절). 사람은 존귀하지만, 자기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고귀한 피조물이요 자기에게 고귀한 영혼이 있다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안식이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는 마치 이 세상에 한껏 취해서 살던 어리석은 부자와 같습니다(눅 12:19-20).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어리석은 부자처럼 자신의 재산과 건강과 생명을 과신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채로 살아갑니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이 아주 오랫동안 살 줄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언젠가 쇠약하게 되고 늙고 병들고 약해지고 죽음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고 죽음보다 신속한 것은 없습니다(리처드 백스터).
시편 49편은 이 세상에서 자기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을 자랑하면서 거침없이 악을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힘이나 친구나 재산을 믿고 자랑하는 것은 주제넘은 신뢰입니다(어거스틴). 그런 것들은 결코 사람을 사망과 파멸에서 건질 수 없으며,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게 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시편 49편은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실 것이라는 사실에 우리의 모든 소망이 있습니다. 인간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져 구속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하나님 외에 우리의 사모할 자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헛된 자랑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자랑하고 신뢰하며 우리의 모든 날들을 살아갑시다. 여기에서 지혜를 얻고 여기에서 경고를 받읍시다. 죽음과 죽음 이후의 영원한 형편을 준비하지 않고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왜 사망을 여러분의 목자로 삼으려고 합니까?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목자로 모시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의 목자가 되어 여러분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져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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