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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230917 캄캄한 밤에 드리는 기도

시 88:1-18

시편은 시라고 하는 문학 형태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존 골딩게이는 말하기를, “시편은 달리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할 수 있게 한다.”고 하였는데, 참으로 그러합니다. 시의 독특한 운율과 구조, 시적 언어가 가진 함축성 등은 시편만이 가지고 아름다움과 힘입니다. 시편은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시로 우리에게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시편에는 여러 주제들이 등장합니다. 시편은 진리의 다양한 내용을 찬송의 형태로, 또는 감사의 형태로, 또는 탄원과 간구의 형태로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우리는 시편을 읽을 때에 시편의 전체 구조와 흐름과 주제와 분위기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시편 88편은 그 내용을 미루어볼 때, 크게 세 단락(1-9a절, 9b절-12절, 13-18절)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각각의 단락은 동일한 단어(표지어)로 시작되는데, 그것은 “여호와여(O, LORD)”라는 말입니다(1,9b,13절). 또한 이 시편이 하나님을 “내 구원의 하나님”(1절)라고 부르는 것을 볼 때, 이 기도는 구원 받은 참된 성도의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편은 구원 받은 참된 성도의 기도임에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편은 시편들 중에서 가장 당황스러울 정도로 암울한 시편입니다. 시편에는 자신의 곤고한 처지를 하나님께 아뢰며 부르짖는 탄원시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대개 시편을 마칠 때에는 깨달음과 확신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끝맺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시편 88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암울합니다. 시편 88편을 읽다보면 단락마다 “무덤”, “음부”, “사망”과 같은 단어들이 계속 반복됩니다(3-6,10,11,15절). 또한 “흑암”, “어둠”이라는 단어도 반복됩니다(6,12,18절). 그 외에도 “곤란”(3,9,15절), “주의 진노”(7,16절), “주께서 나의 아는 자로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셨다”(8,18절)는 표현들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이 시편은 매우 어둡고 절망적이며 탄식으로 가득합니다. 시편 88편은 캄캄한 밤, 큰 괴로움과 두려움 가운데 있는 한 기도자의 기도입니다. 그렇다면 이 암울한 시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시편을 우리의 신앙생활과 기도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 어두운 곳 음침한 데 두셨사오며

시편 88편의 기자는 캄캄한 밤과 같은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부르짖은 이유는, 그에게 곤란과 괴로움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혼은 고난으로 가득했고, 그는 생명보다는 죽음에 더 가까이 있었습니다(3절). 그는 무덤으로 내려가는 사람으로 여겨질 정도로 아무 기력이 없었습니다(4절). 그는 죽은 자들 가운데 던져진 자와 같았고, 살육을 당해서 무덤에 누워 있는 자와 같았고, 주님께 완전히 잊혀진 자와 같았고, 주님의 손에서 끊어진 자와 같았습니다(5절). 그는 깊은 웅덩이, 어둡고 음침한 가운데 있었고, 주의 진노는 그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고 주의 파도로 인해 괴로운 가운데 있었습니다(6-7절). 그의 친구들마저 그를 멀리 떠났고, 그의 얼굴은 수척하고 흉해져서 그 누구와도 만나기 힘든, 외로운 신세가 되었습니다(8절). 또한 그는 곤란으로 인해 눈이 쇠하여질 정도였습니다(9절). 이러한 현실은 아무리 구원 받은 신자라도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스럽고 두려운 현실입니다. 이런 괴로운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신자라도 지치게 되고 절망과 두려움에 쉽게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자의 마음을 괴롭게 했던 것은 이런 두려운 현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두려운 현실도 현실이었지만, 이런 모든 괴로운 현실들이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왔다는 사실로 인해 그의 마음은 더욱 괴로웠습니다. 시편 기자는 “주께서” 그를 어둡고 깊은 구덩이에 던지시고, 주의 진노로 그를 무겁게 짓누르고 주의 파도로 그를 괴롭게 하셨다고 말합니다(6-7절). 주님께서는 심지어 사랑하는 자들마저 그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셨습니다(8절). 주님께서는 마치 그의 영혼을 버리신 것 같았고 주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신 것 같았습니다(14절). 그는 어릴 때부터 이런 곤란을 많이 당하였고, 주님께서는 그를 두렵게 하셔서 그를 당황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진노를 발하셔서 그를 삼킬 것처럼 하셨습니다(15-16절). 이런 괴로운 현실들은 온종일 홍수처럼 몰려와서 그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17절). 이 모든 괴로운 현실들을 바로 주님께서 가져다 주셨다는 생각을 할 때, 시편 기자의 마음은 더욱 괴로웠습니다. 신자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캄캄한 밤과 같은 현실을 만날 때 하나님께 더 큰 배신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주야로, 매일, 아침에, 주의 앞에, 주께,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듭니다

하지만 이 기도자는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시편 88편의 각 단락의 시작에는 “주의 앞에”(1,2,13절) 또는 “주께”(9,13절) 또는 “주를 향하여”(9절)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이것은 이 시편의 또 다른 표지어(標識語)입니다. 또한 각 단락의 시작에는 또 다른 표지어가 있는데 그것은 “부르짖는다, 부른다”는 동사 또는 “부르짖음”이라는 명사입니다(1,2,9,13절). “기도”라는 명사(2,13절)와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든다”(9절)는 표현도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2,13절, 9절 참조).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부르고 있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고, 하나님께 두 손을 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야로”(1절), “매일”(9절), “아침에”(13절) 기도하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주님 앞에 “달하고”(2,13절) 있었습니다.


이는 인생의 캄캄한 밤을 지내는 모든 성도들이 누구를 향해야 하고 누구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시편 88편은 탄식을 하는 중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향하는 기도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기도자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과 아버지로 알고 있고, 여전히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작용입니다. 그래서 한 주석가는 “시편 88편은 가장 암울한 시편이지만 여전히 기도”라고 했습니다(트램퍼 롱맨 3세, [시편 I·II], 452).


시편 88편을 자세히 읽다보면, 이 기도자는 하나님께 단순히 불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무언가를 간절히 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10-12절의 일련의 질문들은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간구입니다. “주님은 죽은 자에게 기적을 베푸시겠습니까? 죽은 자의 영이 일어나서 주를 찬양하겠습니까? 무덤에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포되겠습니까? 죽은 자의 세계에서 주의 성실하심이 선포될 수 있겠습니까? 흑암 속에서 주님의 기적이 알려지겠습니까? 잊음의 땅에서 주님의 의가 알려질 수 있겠습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사를 베풀어주시기를, 주님을 마음껏 찬양하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구하는 기도입니다. 자신이 주님의 인자와 성실을 마음껏 선포할 수 있게 되기를, 자신을 통해서 주님의 행하신 놀라운 기사가 알려지게 되고 주님의 의가 알려지게 되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자는 주님께 자기의 영혼을 버리지 말고 주의 얼굴을 숨기지 마시기를 간구합니다(14절). 그는 깊은 고난 속에서도 끈질기게 믿음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크리스토퍼 애쉬, [티칭 시편], 494).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지만, 캄캄한 밤을 만날 때 여전히 고통스럽고 두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편 88편을 통해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때로 너희의 기도가 감사로 끝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가 한없이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언제나 교과서처럼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때는 기도하러 기도의 자리에 나아갔다가 우리의 슬픔과 괴로움을 아뢰며 탄식하며 울기만 하다가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주께, 주를 향하여, 주야로, 매일, 아침에, 주의 앞에 우리의 손을 들고 부르짖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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