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73:1-28
시편 73편은 시편 제3권(73-89편)의 첫 번째 시입니다. 시편 제3권은 슬픔, 괴로움, 탄식,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간구하는 시들이 많은데(예, 시편 74, 79, 88편), 시편 73편 역시 굉장한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1-2절)
1-2절은 시편 73편의 서론입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은 참으로 선하시다”(1절)는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더욱, 특별하게 선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들, 곧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에게 선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절). 시편 73편을 기록한 아삽은 하나님에 대한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의심 때문에 거의 실족할 뻔하고 그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했던 때가 있었습니다(2절).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나이다(3-14절)
아삽은 3-14절에서 자신이 실족할 뻔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악인의 형통함 때문이었습니다(3절). 악인이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중에서 참된 믿음이 없는 불경건한 자들이 모두 포함됩니다. 혈통적인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해서 모두 다 거듭나 참된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1절 참조). 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른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면서 온갖 악을 서슴없이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교만하고 악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외형적으로 볼 때, 너무나도 형통했습니다(3절).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이 없었습니다(4-5절). 또한 그들은 교만하고 강포하며(6절), 그들은 살이 찌고 눈이 솟아나 있고,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더했습니다(7절). 그들은 남을 능욕하며(조롱하고),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고(폭언하고), 거만하게 말했습니다(8절). 또한 그들은 입으로는 하늘의 하나님을 대적하고, 혀로는 땅에 두루 다니며 함부로 말했습니다(9절). 또한 그에게 속한 그의 사람들은 그들의 물을 먹고 그들에게 영향을 받아서 그들과 같은 불경건한 사고방식을 받아들여서 이렇게 말했습니다(10절).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11절). 그들은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살면서 온갖 악을 행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항상 평안하고 그들의 재산은 더해만 갔습니다(12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무나 잘해주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삽은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하나님의 섭리, 그분의 도덕적 세계 질서는 언제나 인간의 지성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내가 사랑한 시편], 131)라고 하였는데, 참으로 그렇습니다. 아삽은 악인의 형통이라고 하는 문제 때문에 시험에 들어서 거의 실족할 뻔하였습니다. 아삽은 이제까지 자신이 믿음을 지키며 깨끗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살아온 것이 다 헛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13절). 악인들은 너무나도 형통하고, 정작 신앙을 지키면서 살아온 자신은 온종일 재난과 징벌을 당하는 사람처럼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으니, 무언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아삽은 이 문제 때문에 거의 실족할 뻔하였습니다(2절).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15-26절)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지상의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 아삽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 문제의 해결을 보게 하셨습니다(15-26절). 아삽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마음을 깨끗이 하면서 손으로 죄를 짓지 않고 살아온 지난날들은 다 덧없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종일 재앙을 당하고 징벌을 받는 삶을 살고 있다!”(13-14절). 하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가 그렇게 말했더라면 신앙을 지키며 경건하게 살아가면서 분투 중에 있는 신실한 성도들, 곧 주의 아들들을 배반하고 그들을 낙심시키는 행위가 되었을 것입니다(15절). 그래서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삽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끝까지 붙잡고자 몸부림쳤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든 신앙적으로 해결해보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시는지 답을 찾을 수 없어서 고통스러웠습니다(16절).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해답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이고, 말씀의 자리이고, 기도의 자리이고, 예배의 자리이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리입니다. 아삽은 바로 이 성소에서 문제의 해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소는 “우리의 관점이 교정되고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는 곳”(존 스토트, 136)입니다.
먼저 아삽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악인들의 결국을 깨닫게 되었습니다(17절). 아삽은 처음에는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질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삽은 깨달았습니다. 악인들은 지금 형통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미끄러운 곳에 서 있고, 하나님은 그들을 파멸에 던지실 것이 분명했습니다(18절). 하나님은 그들을 졸지에 황폐하게 만드실 것입니다(19절). 사람이 잠에서 깬 후에 꿈을 무시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그들을 공의로 상대하실 때에는 그들을 멸시하실 것입니다(20절). 물론 아삽은 이전에 이미 그러한 진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통 중에서 그 진리를 잠시 잊었고,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의심하며 거의 실족할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소에 들어갈 때에 다시 깨달았습니다. 아삽은 이 진리를 깨닫고 보니 자기가 이전에 이 문제로 인해 마음이 산란해지고 고통스러워하며 그들을 질투하기까지 했던 것이 얼마나 우매무지한 일이었는지를 깨닫고 이를 부끄럽게 여기면서 회개했습니다(21-22절).
그리고 아삽은 하나님을 섬기는 의인들은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더욱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가 아무리 고난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그는 항상 주님과 함께 있었고 주님께서는 그의 오른손을 붙들어주고 계심을 다시 깨달았습니다(23절). 그는 하나님께서 주의 교훈(뜻, 목적, 계획)을 따라 그를 일평생 인도하시다가 후에는 영광으로 영접해주실 것을 다시 깨달았습니다(24절). 물론 그는 이 진리를 이전에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의 성소에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삽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도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대저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25-26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27-28절)
27-28절은 시편 73편의 결론으로,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할 것이고, 음녀같이 주를 떠나는 자를 주께서 모두 멸하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27절). 악인들은 형통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망할 것입니다(27절).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참된 성도들과 함께하시고 우리를 일평생 인도하시다가 후일에는 영광으로 영접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오십시오.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살고 계시다면,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오십시오. 그리스도께로 나아오십시오.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십시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복입니다. 시편 73편은 이렇게 끝납니다.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28절). 우리도 이렇게 날마다 여호와를 가까이 하면서 여호와를 우리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자랑하고 전파하며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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