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23:9-22
10월 31일은 종교개혁기념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채교회당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 사건을 신호탄으로 해서 유럽 전역으로 신학과 교리, 교회와 예배와 실천의 개혁 운동이 퍼져나갔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우리는 “종교개혁” 또는 “종교개혁 운동”이라고 부릅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개혁 신학의 전통을 따르던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교회를 가리켜 “항상 개혁되어야 하는 교회(Ecclesia semper reformanda)”라고 부르기를 즐겨했습니다. 교회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항상, 계속 개혁되어야 합니다. 첫째, 이 지상에는 완성된 교회, 즉 완전한 교회는 없기 때문에, 교회는 항상, 계속 개혁되어야 합니다. 우리 신자들이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도 이 지상에서 끝없이 성화를 이루어가야 하는 것처럼, 지상의 교회는 항상, 계속 개혁되어야 합니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은 교회의 개혁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17세기의 화란의 반 로덴슈타인 목사님은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하여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라고 말했습니다.
둘째, 지상의 교회가 지금 아무리 잘 개혁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교회는 그 개혁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후퇴하고 부패하고 변질되기 쉽기 때문에, 교회는 항상, 계속 개혁되어야 합니다. 신자가 끊임없이 은혜의 돌보심과 통치를 받지 않으면 영적으로 퇴보하기 쉬운 것처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사에는 처음에 잘 시작했던 교회들, 또는 놀라운 부흥과 개혁을 경험했던 교회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퇴보하고 변질되는 경우들로 가득합니다. 사도들이 목회했던 초대교회는 어떻게 보면 가장 이상적인 교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초대교회도 완전한 교회가 아니었고, 초대교회의 영적 활력도 그리 오래 계속 유지되지는 못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교회는 퇴보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와 권능의 돌보심을 경험했던 모세와 여호수아의 시대가 지나가자 “다른 세대”가 일어났는데, 그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습니다(삿 2:10). 교회 역사는 늘 그래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17세기 위대한 청교도 시대도 맞이했습니다. 신학과 교리가 바로 정립되고, 교회는 여러 면에서 개혁되었습니다. 그러나 16,17세기의 개혁 교회들도 완전한 교회는 아니었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영적 활력도 그리 오래 유지되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교회의 모습을 보면 설령 개혁교회라고 하더라도 16,17세기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시대로부터 너무 멀어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은 지금도 계속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의 신학과 실천의 개혁, 그리고 사람 개혁
그렇다면 종교개혁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개혁하는 것입니까? 첫째, 종교개혁은 신학과 교리의 개혁을 의미합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가톨릭교회의 신학과 교리가 성경의 가르침에서 너무 많이 이탈하였기 때문입니다. “종교(宗敎)”라는 말 자체는 지식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종교”라는 말은 “최고의 가르침, 으뜸 되는 교훈, 근본적인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종교가 자신들의 가르침이야말로 “최고의 진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참된 “종교”는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부터 아담과 하와에게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에 대한 진리, 곧 바른 종교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한 이후,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 참된 종교에서 끊임없이 멀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족장들과 모세를 위시하여 여러 선지자들에게 진리를 거듭거듭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진리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이란 하나님을 아는 지식 면에서의 개혁, 곧 신학과 교리의 개혁을 의미합니다.
둘째, 종교개혁이란 교회의 개혁을 의미합니다. 종교개혁은 단순히 신학과 교리만의 개혁이 아니라, 교회의 질서 곧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잘못된 실천들을 개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예배의 개혁, 성례의 개혁, 찬송의 개혁, 직분의 개혁, 회의의 개혁, 권징의 개혁 등이 다 포함됩니다.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그리고 역사 가운데 신실한 신앙의 선진들의 본을 따라서, 교회의 질서를 개혁해 나가야 합니다.
셋째, 종교개혁이란 그리스도인의 삶의 개혁, 곧 사람 개혁을 의미합니다. 참된 종교개혁은 단순히 신학의 개혁, 교회의 개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개혁, 곧 사람 개혁으로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참된 종교개혁은 신자의 개인 생활, 가정 생활, 사회 생활 등 삶의 모든 국면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특별히 17,18세기의 청교도들은 이 면에 있어서 우리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종교개혁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렇다면 오늘 우리 시대의 종교개혁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합니까? 오늘 본문 예레미야 23장은 하나님께서 유다의 선지자들을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퇴보와 변질의 주된 원인을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타락과 변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0절). 그들은 심지어 성전 안에서도 악행을 저지를 정도로 사특했고, 하나님은 그런 거짓 선지자들을 심히 미워하셨습니다(11-12절). 그러한 거짓 선지자들은 이미 북왕국 이스라엘에도 있었습니다(13절). 사마리아의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여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고 교회를 다 망쳐놓았습니다(13절).
예루살렘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또 행악자의 손을 굳게 하여 사람으로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여 예루살렘의 거민들을 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처럼 만들었습니다(14절). 그들은 죄를 책망하지 않고 자신들도 행음하고 또 악을 행하는 자들의 손을 오히려 굳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5절). 예루살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마음에서 나온 헛된 것을 가르쳤고, 하나님을 멸시하며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했습니다(16-17절). 그들은 여호와께서 보내지도 않았는데 달음질쳤고,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적도 없었는데도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노를 쏟아 부으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18-22절).
이처럼 참된 종교개혁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의 개혁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교도들은 변화된 목사를 통해 각 교회, 각 회중 전체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교회 개혁을 향해 가지고 있었던 이상이었습니다. 목사의 개혁 없이 교회의 개혁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목사의 지성과 인격과 목회와 경건과 삶과 가정이 성경의 진리로 개혁되지 못하면, 그가 속한 교회와 그 시대의 교회가 개혁되는 일은 만무합니다. 모든 참된 종교개혁은 사람의 개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특별히 목사의 변화와 갱신이 없이는, 이 땅에 참된 종교개혁은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에 대해서 말하는 자들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종교개혁자들의 글들을 좋아하고 그들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지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가졌던 이상을 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삶을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우리 시대의 종교개혁자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종교개혁의 정신과 전통을 계승하는 개혁교회로 서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끊임없이 개혁되지 않으면, “개혁교회”라는 이름은 껍데기와 허상으로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종교개혁이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에서 항상, 계속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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