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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240114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시편 1:1-6

     

사람을 이해하고 나누는 방식이 굉장히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만이 있습니다. 한편에는 의인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악인이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사람이 주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판단과 하나님의 선언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의인으로 간주하시고 판단하시고 선언하시는 의인들이 있고 하나님이 악인으로 간주하시고 판단하시고 선언하시는 악인들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인간관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판단하시고 선언하시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악인으로 판단하시고 선언하시는 사람은 참으로 복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의인과 악인 이 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 시편 1편은 시편의 서문이자 성경적 인간론의 입문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을 근본적으로 이 둘 사이에 세우고는 “너희는 이 둘 중에 누구냐?”고 묻습니다. 인간에게 이 질문보다 더 중요하고 더 근본적인 질문은 없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 vs 악인의 꾀를 좇는 자(1-2절)

시편 1편은 의인과 악인의 여러 가지 특징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특징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를 보면 잘 드러납니다. 시편 1편은 의인들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을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1-2절) 것으로 꼽았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복 있는 사람의 가장 현저한 특징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이란 곧 성경을 말합니다. 시편은 성경을 “율법, 말씀, 율례, 법도, 규례, 증거, 판단 계명” 등 여러 명칭으로 묘사하는데, 이 모든 명칭들은 결국 성경과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진리를 가리킵니다. 복 있는 사람 곧 의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좋아하고 사랑합니다(시 119:97 참조). 의인들은 곧 참된 신자를 가리킵니다. 의인들은 참된 신자, 곧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 약속과 복음 약속이 제시하는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음으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아 구원 받은 성도들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이렇게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고 복음을 들음으로써 구원의 은혜를 맛보아 경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호와의 말씀인 성경을 즐거워하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고 마땅합니다. 아무나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하고 즐거워하고 존귀히 여길 수 있습니다.


또한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특징을 가집니다(2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는 것입니다. 토마스 왓슨 목사님은 “묵상이란 하나님의 진리를 기억하고 그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마음의 거룩한 행동이다.”라고 했습니다. 묵상이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생각하고 그 말씀에 비추어서 내 자신과 내 현실을 생각하고 해석하고 판단하고 평가하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려면 먼저 성경을 읽고 공부해서 성경의 내용을 익숙하게 잘 알아야 하고 설교를 들어야 하고 설교의 내용을 되새겨야 합니다. 또한 체계적으로 교리를 잘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진리를 우리 마음에 품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로 즐거워하고 좋아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늘 가까이하고 늘 묵상하고 연구할 것입니다.


하지만 악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악인들은 “악인의 꾀”, 즉 인간의 생각과 세상의 논리를 좇아서 살아갑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고, 인간의 죄와 비참에 대한 참된 지식도 없고, 구원에 대한 지식도 없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지식도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기의 생각과 신념에 빠져서 살면서, 날마다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어길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죄인의 길”을 걸으며 “죄인의 삶”을 살아갑니다. 또한 그들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가장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한껏 높이면서 살아갑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이처럼 결국 의인과 악인을 가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자 vs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자(3-5절)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며 살아가는 의인의 삶과 악인의 꾀를 좇으며 살아가는 악인의 삶은 현저하게 다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며 살아가는 의인들의 삶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터 위에서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고 말씀 위에 서 있기에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아서 그 행사가 다 형통합니다(3절). 그들은 시절을 좇아 결실하여 과실을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않으며 늘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습니다(렘 17:7-8 참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인생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그들도 이전에는 똑같이 악인의 꾀를 좇으며 죄인의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이 선하고 의로운 것이고 무엇이 악하고 거짓된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고 무엇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인지를 배워서 지혜를 얻고 거룩한 소원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좋아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성경적인 가치관과 세계관, 곧 신앙적 관점을 자신의 관점으로 삼고 견고하게 서서 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악인은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4절). 그들에게는 삶의 원칙과 기준과 뿌리가 없습니다. 삶의 체계도 없고 일관성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온갖 시류와 풍조를 따라서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흩날리는 인생, 가볍고 허무한 인생을 살 뿐입니다. 이것이 악인들의 특징입니다. 그런 악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합니다(5절).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자기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렘 17:5). 악인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악인들은 금생에서도 의인들의 회중에 들어가지 못하고 경건한 성도들과 교제하는 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악인들은 의인들과 생각이 너무나 다르고 관심사나 문화도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결국 자기와 생각이 비슷하고 가치관이 비슷하고 문화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좋아하고 그들과 자꾸만 어울리게 됩니다. 그들은 금생에서도 악인들의 회중에 속해서 살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영원토록 의인들의 회중에 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의 길 vs 심판을 견디지 못하는 악인의 길(6절)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이것이 인생 앞에 놓여 있는 두 길입니다. 의인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고 악인은 간조한 사막의 떨기나무 같습니다(렘 17:6). 모든 사람은 둘 중 하나입니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며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며 그 길에는 복이 없습니다(6절).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중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의인들입니까? 그렇다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사랑하여 말씀을 늘 가까이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품고 이를 묵상하고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여, 가뭄이 와도 청청하며 시절마다 과실을 맺는 삶을 삽시다. 이것이 의인의 복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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