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작성자 사진병철 안

240310 예배자의 기쁨과 행복

시 92:1-15

     

시편 92편은 [안식일의 찬송시]라는 표제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 92편은 안식일의 본질을 잘 말해주는 시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준비하거나 안식일에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이 시편을 자주 불렀기 때문에 이런 표제어를 가지게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어떤 주석가는 “시편 92편은 안식일에 헌정된 시편”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시편 92편은 예배가 무엇인지, 왜 예배해야 하는지, 예배하지 않는 자들의 비참이 무엇이며 참된 예배자의 기쁨과 행복이 무엇인지를 교훈하는 귀한 시편입니다.

     

주의 손의 행사를 인하여 내가 높이 부르리이다(1-5절)

시편 92편은 “지존자여”라는 말로 시작됩니다(1절). “지존자”라는 말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라는 뜻으로, 영어성경에서도 “가장 높으신 분(Most High)”으로 번역됩니다(히, 엘리욘). 하나님은 가장 크고 높으신 지존자이십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1절은 “좋다, 선하다(good)”라는 뜻의 형용사 “토브”로 시작됩니다. 시편 92:1-3은 한 마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참으로 좋다.”는 선언입니다. 예배는 안식일의 주된 일이기 때문에, 예배를 예찬하는 이 시편은 안식일의 찬송시로 통했습니다. 시편 92편은 “예배”라는 말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감사한다(give thanks)”, “찬양한다(sing praises)”, 그리고 “나타낸다(proclaim, 선포하다, 전하다, 베푼다)”는 세 개의 동사로 예배를 묘사했습니다. 예배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고, 주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이며, 주의 인자와 성실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매주일 공예배로 모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높이 불러 찬송하며 주의 변함없는 사랑과 신실하심을 주야로 선포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참으로 좋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이 그토록 좋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는 여호와께서 “주의 행사(行事)로 나를 기쁘게 하셨”(4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주의 손의 행사를 인하여 내가 높이 부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4절). 4-5절에는 “주의 행사”라는 말이 3번이나 반복됩니다. 시편에서 “주의 행사”라고 할 때에는 크게 두 가지를 의미하는데, 첫째는 “창조와 섭리의 일”이고, 둘째는 “구원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으신 만물을 섭리로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는 일도 크고 놀랍지만,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행하신 구원의 일은 훨씬 더 크고 놀랍고 기이하며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성령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복음으로 부르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행하셨습니까? 이러한 주의 행사가 우리를 기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기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배와 찬양은 감사와 기쁨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본질이고 찬송의 본질입니다.

또한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니이다”(5절)라고도 하였습니다. “주의 생각”이란 하나님께서 창조와 구원의 일을 위해 하셨던 그 수많은 생각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완전한 지혜로 깊이 생각하셔서, 그의 창조와 섭리와 구원의 일에 있어서 한 치의 오차도 없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행사와 주의 생각을 인해서, 그리고 주의 인자와 성실을 인해서 기뻐하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주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고 이를 선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우준한 자는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6-9절)

하지만 우준한 자는 알지 못하고 무지한 자는 깨닫지 못합니다(6절).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과 감각이 없습니다. 그들은 주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주의 행사를 알지 못하고, 주의 생각을 알지 못하고, 주의 인자와 성실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할 줄도 모르고 찬양할 줄도 모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을 가리켜 우준하고 무지한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장 중요하고 고상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대신 자기 자신을 섬기고 세상을 찬양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삶의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 뜻대로 살고 세상의 방식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거스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가리켜 “악인”(7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때로 그들은 신자들보다 훨씬 더 지혜롭게, 잘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죄악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이 세상에서 풀같이 생장하고 한동안 흥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악인은 영원히 멸망하고 맙니다(7절). 하나님은 영원토록 지존하신 분입니다(8절). 우준하고 무지한 자들은 주의 원수가 되어 결국 패망하고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9절). 이것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악인의 결국이고 악인의 비참이고 악인의 불행입니다.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10-15절)

“그러나!”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믿고 사랑하며 예배하는 참된 예배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들소의 뿔과 같은 구원의 뿔을 받으며 신선한 기름 곧 풍성한 은혜의 부어주심을 받습니다(10절). 그들은 어리석은 악인들 곧 원수들이 보응을 받는 것을 그들의 눈으로 똑똑히 보고 그들의 귀로 똑똑히 보게 될 것입니다(11절). 


시편 92편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예배자들을 “의인”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은 여호와의 집과 하나님의 궁정(뜰)에 심겨진 종려나무와 백향목 같다고 하였습니다(12-13절). 종려나무는 중동 지방에서 흔히 자라는 대추야자 나무를 말합니다. 대추야자(date palm)는 종려과에 속하는 나무로, 열매가 많기로 유명한 나무입니다. 대추야자는 어릴 때에는 열매를 많이 맺지 못하지만, 자라면서 점점 질 좋은 열매를, 더욱 풍성하게 맺습니다. 또한 레바논의 백향목은 크게 자라서 가지를 뻗치는 침엽수로, 내구성이나 향이 좋아서 다윗의 궁이나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이들은 풀같이 생장하는 악인들과 대조됩니다. 


성도는 여호와에 집에 심겨진 나무와 같습니다. 성도는 지상에서 한 개교회에 속해서 주일마다 공예배에 참여하면서 영적 힘과 양분을 얻고 자랍니다. 참된 예배자들은 여호와의 집, 하나님의 뜰에서 흥왕할 것입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도 자라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된 신자는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자라가야 하고 종려나무처럼 결실해야 합니다.


참된 예배자는 늙어서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할 것입니다(14절). 어린 아이들과 청년들이 은혜 속에서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노년에 이르도록 일평생 여호와의 집에 심겨져서 올곧게 신앙의 자리를 지키며 항상 청청하며 진액이 풍성하여 여전히 결실하는 분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더욱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여호와의 집에 잘 심겨져서, 주의 날을 거룩히 지키고, 공예배를 귀히 여기고, 은혜의 방도를 부지런히 사용해서, 주 안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영적으로 메마르게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예배자는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선포하며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15절, 3절의 “나타낸다”는 동사와 동일). 우리는 예배자의 삶이 이렇게 복된 삶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는 바위와 같으시고 하나님에게는 불의가 없기 때문입니다(15절).

     

그러므로 복된 예배자로 삽시다. 주일마다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며, 주의 인자와 성실을 선포하는 복된 예배자로 살아서, 늙어도 결실하고 진액이 풍족하고 늘 푸르른, 복된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조회수 93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entário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