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5:20-22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바로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바로 믿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의 죽음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죽음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신약성경 전체는 예수님의 죽음도 증거하지만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예수님의 부활을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한 세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아는 것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성을 알고 믿는다
첫째, 예수님의 부활을 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역사 가운데 실제로 부활하셨음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대해서는 부활의 목격자요 증인된 사도들이 우리에게 증거하여 주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친히 목격하였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대화했고,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자신들의 피로써 인쳐서 엄중하게 증언해 주었습니다. 사도들의 중요한 직무는 예수님의 죽음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가룟 유다 대신 사도의 직무를 수행할 사람을 택할 때에,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항상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가 되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행 1:20-22). 사도들에게 있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것과 거의 동의어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부활하신 이들을 목격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고(요 20:14,18), 무덤에 찾아왔던 여인들에게와(마 28:2,10), 베드로와(눅 24:34),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눅 24:13-31), 열한 제자들과(요 20:19,26), 야고보와(고전 15:7),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나타나신 적도 있었고(고전 15:6),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행 1:9), 승천하신 후에도 스데반과(행 7:55), 바울과(행 9:17), 사도 요한에게(계 1:9-20)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의 목격자와 증인으로서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성을 알고 믿은 후에 모두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증거하여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알고 믿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지낸 바 되셨다가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 곧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사실을 알고 믿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부활을 믿는다
둘째로, 예수님의 부활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셨다는 사실만을 알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그 자체만을 단순하게 홍보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한 분만의 부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의 부활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우리도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체포되었을 때에,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행 4:2, 개역개정) 그들을 잡아 가두었다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단순히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전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다가 죽은 후에는 부활하게 될 것을 가르쳤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부활의 첫 열매이기 때문에(20절), 그리스도 안에서 살다가 죽은 자들에게도 부활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20절).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그리스도의 죽음뿐만 아니라 부활에도 연결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결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때, 우리도 마지막날에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과 같이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고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킴을 받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의 첫 열매이고 우리의 부활의 근거가 됩니다.
아담 한 사람이 범죄함으로써 아담 안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사망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해서 오는 것이 마땅합니다(21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살리심을 받게(부활하게) 될 것입니다(미래 수동태, 22절).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아담 안에서는” 모두 죽지만(현재시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살리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 자체를 믿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부활의 첫 열매임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만 우리를 위한 죽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 역시 우리에게 부활을 가져다주시기 위한 부활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을 전하고 증거한다
셋째,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고 믿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로 믿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려주신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도들은 가는 곳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순절 성령강림 때에 설교하면서도(행 2:23-24, 30-31), 솔로몬의 행각에서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어나게 한 후에 설교하면서도(행 3:14), 그리고 유대인의 공회원들 앞에서 변론하면서도(행 4:10, 5:30-32)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면서 “우리가 다 이 일의 증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 역시 이 일의 증인입니다.
우리가 특별히 부활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복음이라고 부를 만한 소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형편을 둘러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어떤 위로와 소망을 찾을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가리켜 사망의 냄새가 진동하는 세상이라고 하였습니다(고후 2:15-16). 이 세상은 죽음이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건강도, 돈도, 권력도 우리의 죽음을 막아내지 못합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삼켜지는 이 세상에서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죽음을 이길 수 있는 것이 과연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담 안에 있는 자는 모두 죽습니다. 그렇게 아담 안에서 죽는 자들은 두 번째 죽음, 곧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 영원한 지옥 형벌과 사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기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부활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만이 죽음을 이겼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만이 죽음을 이기고 생명의 부활로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한 번 죽지만, 두 번째 생명,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받아서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신 것과, 우리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스럽게 부활할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이 부활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십시오. 부활의 복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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