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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병철 안

240721 비참, 구속, 그리고 감사

시편 107편

     

시편 107편은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받은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시편입니다. 많은 주석가들은 이 시편이 바벨론의 포로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동서남북에서 모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던 지난 날들을 돌아보며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했던 시편으로 생각합니다(2-3절). 시편 기자는 구속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을 4개의 시적인 장면으로 아름답게 묘사하며 노래합니다(4-32절). 여기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에게 닥친 비참이 있고, 그 다음에 여호와께 부르짖는 부르짖음이 있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이 있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는 찬송으로 동일하게 매 단락을 마무리하는 시적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4-9절)

제일 먼저 시편 기자는 바벨론 땅에서 포로생활 했던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길을 잃고 거할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나그네에 비유했습니다(4-9절). 그들은 이방 땅에서 70년을 살면서, 광야에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나그네처럼 비참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단 9:3-5; 느 1:8-9; 렘 29:12-14 참조). 하나님의 백성들은 비참과 곤란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했고, 언약의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들을 고통에서 건지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습니다(6-7절).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셨습니다(9절).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도다(10-16절)

두 번째로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곤고와 쇠사슬에 매인 포로와 죄수에 비유했습니다(10-16절). 그들이 비참하게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이게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했기 때문이었습니다(10-11절). 구약의 선지자들은 유다의 패망과 바벨론의 포로된 것은 유다 백성들이 그들의 죄로부터 끝끝내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일관되게 말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존자의 뜻을 거역해서 강퍅하게 나가다가 매를 맞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힘을 다해서 매를 때리셔서 그들의 마음을 낮추셨다고 했습니다(12절). 그랬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바벨론 제국의 놋문을 깨뜨리시고 쇠빗장을 꺾어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17-22절)

세 번째로 시편 기자는 인생을 병들어 죽어가는 환자에 비유했습니다(17-22절). 그들이 병들어 곤란을 당한 것도 그들의 범과와 죄악을 인한 것이었습니다(17절). 이스라엘은 병들어 기력이 쇠하고 먹지도 못하여 극도로 쇠약해져서 사망의 문에 가까이 간 병자와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환자는 의사 앞에서 부르짖을 뿐입니다. 그러면 의사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다 알아듣고 병든 사람을 돌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백성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보내사” 저희를 고치시고 위경에서 건져주셨습니다(20절).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복되는 것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만 됩니다. 죽어가는 심령들을 위한 치료법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그것을 가리켜서 “옛적부터 내려온 오래된 치료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치료법은 말씀을 보내셔서 그들을 고치고 살리는 치료법입니다. 옛적부터 내려온 오래된 치료법, 곧 오래 전부터 사람들을 고치고 살렸던 그 간단한 방법이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 유효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보내어 지금도 우리를 고치시며, 고치기를 기뻐하십니다.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23-32절)

마지막으로 시편 기자는 구속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다를 항해하는 뱃사람들에 빗대어 노래했습니다(23-32절). 바다는 험하고 무서운 곳입니다. 뱃사람들은 바다가 얼마나 험한 곳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바다에 가면 하나님의 행사와 그 기사를 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24절). 바다에서 풍랑이 일어나면, 배가 하늘까지 솟구쳐 올랐다가 깊은 곳으로 곤두박질칩니다. 그렇게 되면 간담이 녹고, 영혼이 녹아내립니다(25-26절). 또 풍랑이 일면, 배 위에서 이리저리 구르며 마치 술 취한 사람들처럼 비틀거립니다(28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험한 풍랑을 지나가는 항해자들과 같이 곤란과 혼돈 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는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고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셨습니다(29-30절). 항구는 모든 뱃사람들과 모든 선척들의 피난처입니다. 죽어가는 병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병원이 있다면 풍랑을 만나 파선한 항해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항구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하나님께서 광야길을 헤매던 우리, 흑암과 쇠사슬에 매여 있던 우리, 병들어서 죽어가던 우리, 험한 바다를 항해하던 우리를 곤고하고 위험한 자리에서 건져 주셨으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시편 기자는 명령합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8,15,21,31절).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찬송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일반적인 인자하심이 아닙니다. 놀라운 인자하심입니다. 그의 인자하심은 헤세드, 하나님의 위대한 언약적 사랑과 신실함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여호와께서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 곧 기적”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위대한 기적입니다. 이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라”(22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와 경배할 때마다, “감사”를 가지고 나아와서, “감사”를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입니다. 여러분이 죽어가고 있었는데, 누군가 여러분을 건져서 살게 해주었다면, 여러분은 그에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구원의 은혜를 넘치게 받았으니 감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님께 고침을 받고도 감사하지 않았던 나머지 아홉이 되지 마십시오.


또한 “그 행사를 선포하라”(22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행하신 일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이 선포하십시오. 위대한 의사를 만나고 훌륭한 병원을 알게 되어 그곳에서 고침을 받았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다른 환자들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도 그리스도의 병원에 가서 복음의 처방을 받아서 나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과 위엄을 상기시키면서, 온 세상을 향해서는 경고하고,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뢰하라는 권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강을 사막으로, 샘을 마른 땅으로 바꾸시는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33절). 거민의 악을 인하여 옥토를 염전으로 바꾸기도 하시고, 궁핍한 자들을 위하여 거할 성을 예비하시기도 하십니다(34-41절). 그러므로 악인들은 자기 입을 가려야 하고, 정직한 자는 이런 일들을 보고 기뻐해야 합니다. 지혜 있는 자들은 이 일을 주의하여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43절).


그러므로 우리의 곤고한 중에서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언약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인자하심을 따라 우리를 돌아보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말씀을 보내사 우리를 고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감사제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행사를 선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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