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35-42
세례 요한이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님에게로 보내다(35-37절)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주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보냄을 받은 선지자가 있었습니다(요 1:6). 그는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복음을 전파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백성들의 마음이 오실 메시아를 대망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때가 왔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요 1:29). 세례 요한은 성령의 가르치심을 받아서 자기에게 오셔서 세례를 받고자 하시는 그분이 바로 자신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아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있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다니시는 것을 보고는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36절) 하고 말했습니다. 이는 “내가 평소에 너희에게 증거했던 그 분, 내 뒤에 오실 것이라고 증거했던 그 메시아가 바로 저분이시다. 그러니 너희는 그분에게로 가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결국 “나에게로 오라, 나를 따르라”고 말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례 요한처럼 “그리스도에게로 가라, 그를 따르라”고 말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세례 요한의 두 제자는 예수님을 좇았습니다(37절).
예수님과의 복된 저녁(38-39절)
예수님은 자신에게 찾아온 이 두 제자를 보시고는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38절)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 두 사람은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38절) 하고 예수님께 대답했습니다. 이 대답은 “선생님, 선생님이 계신 곳을 알려주십시오. 저희가 그곳으로 가서 선생님께 배우고 싶습니다.” 하는 요청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기 원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와 보라(come and see)”(39절)고 하셨습니다. 그들을 받아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함께 예수님이 머무시던 곳으로 가서 예수님과 함께 거하였는데, 때가 제 십시(오후 4시)쯤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그날 밤이 깊도록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들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어떻게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보다 분명한 이해와 믿음에 이르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저녁에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르게 알고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안드레는(40절) 예수님과의 대화를 마친 후에 제일 먼저 자기 형제 베드로에게 가서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41절)고 외쳤습니다. 존 라일 목사님은, “이날 밤이 이 두 제자에게는 지극히 복된 저녁이었음에 틀림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진정으로 바르게 알고 믿고 그의 좋은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 모두에게도 예수님과의 이런 복된 저녁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40-41절)
안드레는 제일 먼저 자기 형제 시몬에게 가서 그를 예수님께 데리고 갔습니다. 안드레 자신도 예수님을 이제 막 만났고, 이제 막 믿기 시작하였을 뿐입니다. 칼빈의 말처럼 안드레에게는 겨우 불꽃 하나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는 바로 그 불꽃 하나를 가지고 그의 형제를 밝혔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의 속성입니다. 칼빈은 “믿음은 자신이 받아가진 빛을 모든 방향으로 퍼뜨리는 속성이 있다... 우리가 안드레보다 더 충분한 비췸을 얻었음에도 다른 사람들을 동일한 은혜에 참여하게 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무정함에 화가 있을 것”(칼빈, 요한복음 주석)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안드레보다 훨씬 더 많은 불꽃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 불꽃을 꺼뜨리는지요! 우리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었다면, 모든 사람에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가서 그들에게 불꽃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안드레는 베드로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41절).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한글성경에는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로 번역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문은 “우리가 메시아를 찾았다(헬, 휴레카멘)”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어번역본은 “we have found the Messiah”로 번역하였습니다.
“메시아(또는 그리스도)”라는 이 호칭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예수님의 대속 사역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설명하는 호칭이며, 예수님에게 주어진 가장 영광스럽고 위대한 호칭입니다. “메시아”는 히브리어로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며, 이를 헬라어로 번역하면 “그리스도”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왕과(삼상 16:6), 제사장과(출 29:29; 레 6:22), 선지자가(왕상 19:16) 세움을 받을 때에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중요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엄숙하게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구원자가 아니었고, 장차 오실 “그 기름 부음 받은 자(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은 장차 오실 구원자는 곧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일 것을 거듭 약속하고 예고하였습니다(시 2:2, 사 61:1, 9:24).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이미 “그리스도”라는 호칭은 오시기로 약속된 구주에 대한 특별한 명칭으로 통했습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조차도 “그리스도”라는 칭호에 대해서는 익숙해 있었습니다(마 2:4, 요 4:25).
세례 요한 역시 “그리스도”라는 칭호를 잘 알고 있었고, 자기 제자들에게 “그리스도(메시아)”께서 자기 뒤에 오실 것을 계속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안드레가 바로 그 “메시아”를 만난 것입니다. 안드레는 이제 누가 메시아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형제 시몬에게 가서 “내가 이제 누가 그리스도이신지를 찾았다, 그리스도를 발견했다”고 외치면서 그를 예수님께 데리고 온 것입니다.
시몬아 네가 장차 게바라 하리라(42절)
안드레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을 때, 예수님은 그를 처음 만나셨지만 그가 누구인지 이미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향해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42절)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장차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서 귀하게 쓰임 받게 될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새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는 새 이름이 주어지고 새 사명이 주어집니다.
세례 요한은 안드레를 예수님에게로 보냈고, 안드레는 베드로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고, 베드로는 많은 영혼을 예수님께로 이끌었습니다. 이것이 지상의 교회가 지속되는 방식입니다. 안드레의 전도를 통해 나중에 예수님을 믿게 된 베드로는 안드레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하였고, 위대한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좋은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고백에 이르러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이유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요 20:31).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합니까?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오십시오. 예수님과의 복된 저녁 시간을 가져서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에 이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서 “내가 메시아를 찾았다”고 증거하십시오.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끄십시오. 그래서 그들도 새 이름, 새 생명, 새 사명을 얻게 하십시오. 바로 이것이 메시아를 만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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