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마태복음 26장 26~30절
읽을말씀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가지시고 축복기도를 드리신 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며 말씀하시기를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하시고, 또 잔을 들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에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너희 모두 이것을 마셔라. 이것은 죄 용서를 얻도록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마태복음 26장 26-28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만찬을 위해 제자들과 함께 앉으셨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피가 발라져 있는 집을 넘어가시고, 자기 백성을 이집트의 압제에서 구해 내신 일을 기억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날, 예수님은 ‘새로운 기념일’을 제정하셨습니다. 그것은 자기 피로 온 세상에 구원을 가져올 하나님의 어린양, 곧 ‘예수님 자신을 기억하는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면서 “받아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예수님은 잔을 주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언약’은 예레미야 31:31~34에서 말씀하는 바, ‘새 언약’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기 위해 따라야 할 명령들을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언약을 어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이스라엘 멸망이라는 징계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다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의 법을 이스라엘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할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궁극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어기고 언약을 파기한 자기 백성들을 대신하여 죽음과 저주의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다시 알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 속에 함께 거하시며, 우리를 진리(말씀)로 인도하십니다(요 1:14-21).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기록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해 주십니다.
[생각하기]
1. 유월절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피가 발라져 있는 집을 넘어가시고, 자기 백성을 이집트의 압제에서 구해 내신 일을 기억하는 날이었습니다. 아빕월 10일, 이스라엘 가정은 1년 된 흠 없는 수양을 구별하여, 14일 해가 질 때 1) 그 양을 잡고 우슬초 묶음으로 피를 적셔서 집의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그 피를 발라야 했습니다. 이 피는 속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뼈를 꺾지 말고 반드시 전체로 불에 태워야 했습니다. 이후, 같은 날 저녁에는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들과 거류인과 타국 품꾼들을 제외하고) 2) 그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무교병과 쓴 나물과 더불어 그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유월절은 ‘제사’인 동시에 ‘하나님과 상호 간의 교제의 식사’였습니다.
2. 유월절과 성찬
이러한 유월절은 신약에 이르러 단지 이집트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기억만이 아니라, 죄의 종살이로부터의 구원과 약속된 메시아 안에서의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한 표시와 보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월절이 여전히 일차적으로 제사였던 반면, 성찬은 제사의 성격을 완전히 잃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유월절에 바쳐진 희생제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이루신 ‘죽음’으로 완전히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 곧 자신의 살을 찢고 피를 흘림으로써 하나님과의 속죄를 이루고, 새 언약의 토대를 놓는 참된 ‘유월절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음식의 떡과 포도주를 자신의 몸과 피의 표시로 삼으셨습니다. 곧, 떡은 속죄를 위해 죽은 가운데 희생제물로 바쳐진 것처럼, 예수님의 ‘몸’에 대한 표시입니다. 그리고 포도주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속죄의 피’입니다. 이 피를 통해 우리의 죄가 속함을 받았고,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3. 신약의 성찬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표시들(떡과 포도주)들을 먹고 마시도록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유월절은 제사에 기초한 성례였지만, 신약시대에 이르러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한 제사가 드려졌고, 이제 우리가 하나님과 누리는 교제는 훨씬 더 풍성하고 완전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를 위하여 성찬을 제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떡과 포도주 가운데 그분의 희생제사를 우리에게 보여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즐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선포하며,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식사입니다.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으로 주재하시는 식사입니다.
4. 성찬의 유익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교회에게 성찬을 제정하셨을까요? 그것은 교회의 영적인 유익(성장)을 위하여입니다. 즉, 성찬을 통하여, 신자는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의 죽음을 통해 성취된 모든 유익을 누립니다. 성찬에서 행하는 모든 것, 표시들(떡과 포도주)과 말과 행동은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하도록 합니다. 나아가 성찬의 식사를 통해,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와 참된 교제를 누립니다.
특별히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죽음으로 성취하신 유익들 가운데 ‘죄 사함’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죄 사함의 유익에 ‘영생의 유익’이 덧붙여집니다. 영적인 식사를 통해, 우리는 영생의 소망과 마지막 날 있을 부활의 소망 가운데 굳건히 서게 됩니다.
이처럼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에게 주신 것이며, 따라서 오직 믿음의 권속들만이 성찬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의 몸을 분별하여 어울리지 않게 먹고 마시지 않도록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자신을 살피라고 말하였습니다(고전 11:26-29). 어린 아이들이 성찬에서 제외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성찬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것이 곧 그들에게 있는 은혜언약의 유익을 빼앗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들 역시 언약의 모든 유익을 누리지만, 단지 그 유익이 드러나고 인 쳐지는 특별한 방식이 아직 허락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언약의 자녀로 태어나 세례를 통해 교회의 회원이 된 어린 아이들이 그들 스스로 개인적인 고백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자녀들을 가르치고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부모로서, 교사로서, 우리는 매달 행해지는 성찬 가운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찬에서 우리가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 그리고 성찬에서 행해지는 모든 말과 행위들 속에서 우리의 믿음은 오직 구원의 유일한 근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해야 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우리의 믿음이 자라납니다. 나아가 그리스도를 통해 누리게 된 모든 유익을, 우리의 일상에서 치열하게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데, 하나님께서 더욱 주권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이러한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과 위로가 우리에게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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