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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kjoon

27과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아야 해요


본    문 사사기 2장 8~23절
읽을말씀
“그 세대의 모든 사람들 역시 죽어서 그 조상들에게 돌아갔으며, 그 이후에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들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일어났다”(삿 2:10).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이스라엘 왕정 직전까지 이스라엘 가운데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고 이스라엘에 왕이 없던 때, 가나안에는 이스라엘이 미처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민족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2세대: 여호와를 “알지 못해”, 악을 행하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함께했던 세대가 모두 죽고, “다음 세대”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들을 “다른 세대”(10절)라고 표현합니다. 가나안 2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이 하신 일들이 무엇인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우상숭배”였습니다. 당시 가나안인들이 주로 숭배했던 신은 “바알”과 “아스다롯”이었습니다. 바알(뜻: 주인)은 가나안 최고의 신으로서 폭풍과 다산의 신이었고, 그의 아내 아스다롯은 다산의 여신이자, 전쟁의 여신이었습니다.

농경사회였던 가나안인들은 이와 같은 신(우상)을 자신들의 풍요를 위하여 이용하였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바알과 아스다롯의 성적행위가 한 해의 소출과 다산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신을 부추기기 위해, 예배의 한 행위로서 술을 마시고, 매춘행위를 했습니다.

신을 이용하여, 나를 풍요하게 하는 가나안의 종교는 이스라엘에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가나안인들은 오랜 농사생활로 땅의 소출이 많았고, 철기를 사용함으로써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함께” 우상을 섬기기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가나안 곳곳에서 여러 형태로 바알을 신으로 섬겼습니다(“바알들”, 11절).

이스라엘은 자신들도 가나안의 풍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은 풍요가 아니라, “올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게 살지 못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나라를 통해 그들을 심판하셨고, 그때마다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듯했습니다.

가나안 3세대: 여호와를 “알고서도”, “더욱” 악을 행하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18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사사(샤파트, judge)를 보내어 그들을 이방의 압제자들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만을 따라 살았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3세대, 곧 사사가 죽은 후 일어난 세대는, 사사를 통해 여호와의 큰일을 보고서도, 그들의 조상보다 “더욱 타락”했습니다.

이처럼 사사시대 전반에 걸쳐, ① 이스라엘의 범죄 → ② 여호와의 진노와 심판 → ③ 이스라엘의 부르짖음 → ④ 사사를 통한 구원 → ⑤ 이스라엘의 (재)범죄의 패턴이 반복됩니다. 나아가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고서도 이전보다도 더 악해지는 이스라엘의 완악함은 스스로를 더욱 돌이킬 수 없는 “영적 하강”으로 몰아가게 됩니다.

이와 같은 사사기의 역사는 우리를 강력하게 교훈합니다. 그중 기억해야 할 중요한 한 가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다음 세대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사실입니다. 가나안 2세대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을지 모르나, 그들은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나아가 가나안 3세대는 그 하나님을 “알고서도” 이전보다 더욱 타락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가르칠 때, 무엇보다 그들의 “실제 삶”에서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많은 “은혜의 방편들”을 주셨습니다. 이 방편들을 사용하는 것은 감나무에 달린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식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지를 사용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가능하게 하십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 말씀을 읽고, 암송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밥 먹는 기도만이 아니라, 일어날 때, 잠잘 때, 가정예배할 때, 말씀을 읽을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훈련”입니다. 훈련을 통해,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하는 것이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부모로서, 우리는 말씀을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 것,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 주일을 안식하는 것, 이웃의 것을 탐내지 않고 자족하는 것,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가장 먼저 우리의 모든 가정이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일상을 말씀으로 담금질하며 살아내는 가운데, 자기 백성에게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 자신과 언약의 자녀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쁨 가운데 날마다 성장하는 모든 가정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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