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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27문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문: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답: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그가 강생하시되 비천한 지위에 나신 것과, 율법 아래 나신 것과, 금생의 여러 가지 비참함과 하나님의 진노와 십자가의 저주의 죽음을 받으신 것과, 장사 지낸바 되신 것과, 얼마 동안 죽음의 권세 아래 거하신 것을 말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소요리문답 24-26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속자로서 행하시는 세 가지 직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속자로서 선지자와 제사장, 왕의 직분을 행하십니다. 선지자로써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그분의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제사장으로써 주님께서는 자신을 제물로 드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항상 간구하십니다. 또 왕으로써 그리스도는 우리를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시고, 우리를 다스리시고 보호하시며, 우리의 모든 원수를 제압하고 이기신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선지자와 제사장, 왕으로써 세 가지 직분을 행하시는데, 23문에 의하면 이 직분을 낮아지시고 높아지신 두 지위에서 행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27문은 예수님의 낮아지심(비하)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그가 강생하시되 비천한 지위에 나신 것과, 율법 아래 나신 것과, 금생의 여러 가지 비참함과 하나님의 진노와 십자가의 저주의 죽음을 받으신 것과, 장사 지낸바 되신 것과, 얼마 동안 죽음의 권세 아래 거하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단계들을 크게 네 가지, 잉태와 출생, 삶, 죽음, 죽음 이후로 나누어 살펴보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의 낮아지심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1): 성육신, 잉태와 출생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첫 번째 단계는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잉태와 출생은 예수님의 낮아지심이 어떤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생각할 때에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기 전, 영원 전에 가지셨던 영광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배 속에 잉태되셨을 때에 처음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때가 있었지요? 세상에 없던 우리가 어머니의 태에 처음 잉태되었을 때 우리는 존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항상 계셨으며, 특별히 성부 하나님의 품 속에 독생하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셨고, 하나님과 한 본체를 지니시고 그 권능과 영광에 있어 하나님과 동등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선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 불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낮아지심 가운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은 어마어마한 낮아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낮아짐에 대해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빌 2:6-8a)

이처럼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피조물이 되신 것, 더 나아가 범죄하고 타락한 아담의 후손으로 연약한 사람으로 세상에 나신 것은 엄청난 낮아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되신 예수님은 처음 세상에 오셨을 때 어떤 모습으로 오셨을까요? 당시의 왕족들과 같이 으리으리한 왕궁에서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세상에 나셨을까요? 아니면 저와 여러분과 같이 아늑하고 깨끗한 병원에서 태어나셨을까요? 그렇지 않았어요. 예수님은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셨어요. 병원이나 호텔 같은 숙소에서 나신 것이 아니라 짐승들이 머무는 마구간에서 나셔서 아기 침대가 아니라 강보에 싸여서 말구유에 누이셨어요. 누가복음 2장 7절은 예수님의 탄생의 순간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이처럼 예수님의 낮아지시되 비천한 지위에 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2): 율법 아래 나심과 여러 비참을 경험하심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두 번째 단계는 이 세상에서의 삶과 관계된 것입니다. 소요리문답은 예수님의 낮아지심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율법 아래 나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법을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아담 이래로 모든 사람은 이 법을 …하고 율법이 요구하는 순종의 멍에를 팽개쳐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셨고, 스스로 이 율법 아래로 들어오셨습니다. 율법을 만드신 분께서 율법 아래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일평생 율법의 모든 요구를 다 지키는 삶을 사셨어요. 율법을 따라 난 지 팔일 만에 고통스러운 할례를 받으셨어요. 또 저와 여러분과는 달리 이 땅에서 예수님의 부모 역할을 한 요셉과 마리아에게 언제나 순종하며 공경하는 삶을 사셨어요.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함이 마땅한데도 그렇게 하지 못하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어요.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율법이 범죄한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든 형벌을 다 받으셨어요. 예수님께서 율법을 만드신 분이심에도 스스로 율법 아래 들어오신 것은 율법을 늘 어기며 살아가는 우리를 대신해 율법에 순종하시고, 우리를 대신해 율법이 요구하는 형벌을 받으시기 위한 것이었어요.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범죄한 우리가 경험해야 할 여러 비참함을 경험하셔야 했어요. 가난과 슬픔, 세상의 조롱과 멸시, 마귀의 유혹, 타락한 인간이 경험해야 할 여러 연약함들을 다 겪으셨어요. 사실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세상에는 이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래로 죄와 함께 모든 죄인이 경험하게 된 비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만 담당하신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우리가 경험해야 할 모든 비참도 경험하신 거예요. 예수님은 가난하셨어요. 예수님께서 가난하셨던 것을 잘 보여주는 구절이 있어요.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누군가가 다가와 ‘예수님 어디를 가시든지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서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눅 9:58) 예수님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면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가난까지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또 예수님은 많은 슬픔을 경험하시고 또 사람들의 냉대와 멸시를 받으셨어요.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그는 멸시를 당하고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슬픔을 많이 맛보고 병고를 아는 사람이다. 마치 사람들이 외면하는 자같이 그가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였다. 참으로 그는 우리의 병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으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고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다.”(사 53:3-4, 바른성경) 이뿐 아니라 예수님은 늘 마귀의 유혹을 받으셨으며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려고 하는 마귀와의 보이지 않는 싸움을 싸우셔야 했어요. 또 피곤함과 배고픔과 목마름을 겪으셔야 했어요. 우리 구주이신 예수님은 이렇게 낮아지셨어요.


그리스도의 낮아지심(3): 하나님의 진노와 십자가의 저주의 죽음을 받으심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세 번째는 예수님의 죽으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담당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하고 반역한 우리가 받아 마땅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예수님께로 향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진노의 화살이 예수님께 쏟아졌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영혼은 매우 극심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잡히시던 날 밤, 하나님의 가장 큰 진노와 저주가 쏟아지던 십자가의 죽음을 눈 앞에 두셨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그날 예수님은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땀을 피같이 흘리시며 기도하셨고, 아버지 하나님께 부르짖으셨습니다.

지난 성경학교 기간에 영국의 여러 순교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았지요? 메리 여왕 때에 순교한 목회자들, 니콜라스 리들리와 토마스 크랜머 같은 분들은 죽음 앞에서 참으로 용감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순교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앞둔 예수님은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하시는 걸까요?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죄를 담당하신 죽음이었고, 우리에게 쏟아져야 할 하나님의 두려운 진노와 저주를 모두 담당하셔야 했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죽음은 우리의 죄 값을 치르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아 죽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의 죽음을 죽으셨고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두려운 진노와 저주를 받으셨음을 알았기 때문에, 순교자들은 예수님을 의지하며 평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달랐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죽음은 다른 죽음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으셨고, 등과 허리의 살점이 채찍에 뜯겨 나가셨습니다. 또 군병들이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때려 가시가 예수님의 머리 속을 파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주먹질을 하고 뺨을 치며 침을 뱉고 조롱하였습니다. 또 밤새 계속된 심문과 폭력으로 지쳐 더 이상 혼자서 지고 갈 수 없어 넘어지실 때까지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게 하였습니다. 골고다에서 거대한 대못들이 예수님의 손발을 뚫고 십자가에 박혔고, 박힌 채로 십자가가 수직으로 들려올려졌을 때 예수님의 뼈는 어그러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고통은 얼마나 극심한 것이었을까요? 십자가 형이 가장 무서운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죽어가는 형벌이기 때문입니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계셔야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구속자이신 주님의 낮아지심의 세 번째 단계입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4): 장사 지낸바 되시고 얼마 동안 죽음의 권세 아래 거하심

이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시신은 장사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동안 죽음의 권세 아래 거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죽고 장사되고 죽음의 권세 아래 계셨다는 것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에 속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무덤에 묻히신 것은 이해할 수 없고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셨으며, 3일 동안 사망의 권세 아래에 계셨다는 것이고, 예수님의 죽음과 죽음의 권세 아래 계심은 범죄한 저와 여러분의 죽음을 죽으시고 사망의 권세 아래 매여 있어야 했던 우리를 위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만물 위에 높이 계신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셔서 세상의 모든 비참을 겪으시고 십자가에 죽임 당하신 것도 무한히 낮아지신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얼마 동안 죽음의 권세 아래 거하신 것은 더욱 낮아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지실 수 있는 데까지 자원하여 낮아지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한 없이 낮아지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심은 자발적인 낮아지심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누군가의 강요로 억지로, 마지 못해 낮아지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저항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죽음에 이를 때까지 참고 인내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성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 곧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심을 통해 구속하신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구원을 보는 것, 그것이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우리를 죄와 죄로 인한 비참과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의 죽음과 지옥 형벌에서 건져 하나님께로 이끄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주님 자신을 찬송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을 가장 원하셨고, 그것을 위해 예수님은 기꺼이 죽기까지 낮아지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위대한 사랑을 가장 분명하게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낮아지시면 낮아질수록 거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오늘 우리에게 이런 예수님의 사랑에 우리도 사랑으로 응답할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하늘의 영광을 내려놓으시고 사람이 되셔서 금생의 모든 비참과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의 죽음을 죽으시고 죽음의 권세 아래 계셨던 예수님을 사랑합시다.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밝히 나타났으니, 죄인을 향해 ‘오라’하시는 예수님께 나아가 우리 죄를 회개하고 우리 자신을 주님께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낮아지심을 통해 얻으신 모든 풍성한 구원의 복들을 값 없이 받아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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