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신자가 죽을 때 그리스도에게서 받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답: 신자는 죽을 때, 그의 영혼은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즉시 영광에 들어가고, 그의 몸은 여전히 그리스도께 연합된 채로 부활할 때까지 무덤에서 쉬게 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32-36문에서 살펴본 것은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금생에서 얻는 유익”에 대한 것이었어요. 하나님께서 복음의 설교를 통해 우리 마음에 일으키신 믿음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될 때, 성령님을 통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복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선은 가장 큰 복 세 가지가 있습니다. 칭의, 양자됨, 성화입니다. 그리고 이것들과 함께 따라오거나 여기서 나오는 혜택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함과 양심의 평안과 성령 안에서 얻는 기쁨과 은혜의 증진과 끝까지 견디는 것이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 이 모든 혜택들을 충분히 누리며 살아왔나요?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우리는 이러한 혜택들을 풍성히 누리는 데에 실패합니다. 이 혜택들을 누리는 데에 실패하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실패하였을 때에 우리는 다시 칭의와 양자됨, 성화의 복을 생각하는 데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자녀 삼으시며 거룩하게 하신 이 은혜가 얼마나 큰 지를 묵상하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복을 주시려고 사람이 되시고, 완전한 순종의 삶을 사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만을 의지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러한 모든 유익과 혜택들을 더 풍성히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36문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은 예수님과 연합된 우리가 금생에서 얻는 유익에 대한 것이었어요. 오늘은 37문을 통해 예수님과 연합된 우리가 “죽을 때 그리스도에게서 받는 유익”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7문을 함께 읽어봅시다. “문: 신자가 죽을 때 그리스도에게서 받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답: 신자는 죽을 때, 그의 영혼은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즉시 영광에 들어가고, 그의 몸은 여전히 그리스도께 연합된 채로 부활할 때까지 무덤에서 쉬게 됩니다.”
신자가 죽을 때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된 우리도 예외는 없습니다. 예수님과의 연합에 대한 부분을 잘 이해한 친구라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될 거예요. 무슨 질문일까요? ‘분명 예수님께서 우리의 죽음을 대신 죽으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우리는 또 다시 죽어야 하는 것이지요?’하는 질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삶과 죽음, 부활과 승천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된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써 이루신 모든 유익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죽음은 범죄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죽음이었어요. “죄의 삯은 사망이라”하신 말씀대로 죄를 지은 저와 여러분이 죽어야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어요. 그리고 이로써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도 끝났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다시 죽는다면 우리는 심판을 다시 한 번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대신 죽으셨는데, 우리가 또 다시 죽음으로써 우리 죗값을 치러야 한다면 우리는 사실 용서 받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또는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던 것일까요?
우리가 먼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을 받으셨을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도 끝났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대신하여 그리스도를 처벌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또 다시 처벌하지 않으십니다. 이미 정죄받고 형벌 받은 죄인을 또 다시 처벌하는 것은 불의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불의를 행치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들의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는데 우리도 왜 여전히 죽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우리의 죽음은 자기 죗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며, 단지 죄짓는 것을 그치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43문) 맞습니다. 우리의 죽음은 더 이상 죗값을 치르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의 의미가 변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죄 용서를 받지 못한 사람의 죽음은 자신의 죗값을 치르는 거예요. 따라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을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들의 죽음은 그들의 죄에 대한 형벌일 뿐만 아니라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는 시작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그분 안에 있는 우리의 죽음은 복됩니다.
신자의 영혼이 받는 유익
소요리문답 37문은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의 죽음이 어떻게 복된지를 몸과 영혼, 두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신자가 이 땅에서 우리의 심장이 멎고 마지막 숨을 내쉰 후, 그 영혼은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즉시 영광에 들어갑니다. 그 영혼은 모든 죄에서 온전히 해방되고, 더 이상 거룩해질 수 없을 만큼 완전히 거룩하게 됩니다. 우리 영혼이 들어가게 될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상태로 변화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완전히 거룩하게 된 천국에 있는 성도들의 영혼을 가리켜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이라고 부릅니다(히 12:23). 이처럼 우리의 영혼이 완전히 거룩하게 된다는 사살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요? 죽음 이후 우리 영혼의 상태는 범죄하고 타락한 이 땅에서의 상태나, 타락하기 전 에덴에서의 아담의 상태와도 비교할 수 없는 복락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범죄하기 전 에덴에서의 아담은 무죄한 상태였습니다. 참된 지식과 거룩함과 의로움을 갖추었고 그의 삶은 늘 선으로 기울어졌습니다. 하지만 첫 사람은 범죄와 타락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통해 거룩하게 된 우리의 영혼은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죄로부터, 또 범죄의 가능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같이 완전히 거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완전히 거룩하게 된 신자의 영혼은 즉시 영광에 들어갑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영혼이 몸으로부터 분리되는 바로 그 순간, 거룩하게 된 우리 영혼은 즉시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한 쪽 편 십자가에 달려 있던 강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강도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께 자기 자신을 맡기며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간구했을 때,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강도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었을 때, 그 영혼이 즉시 주님의 영혼과 함께 낙원에 있었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면서 “(내게는)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죽게 된다면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빌 1:21,23). 이처럼 우리의 영혼은 죽음과 함께 온전히 거룩하게 되어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집,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는 곳이며(고후 5:1), 하나님의 영광으로 밝게 빛나 해와 달과 별들이 필요 없는 하나님과 어린 양이신 주님의 성전입니다(계 21:22-23).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의 죽음이 복된 것은 죽음을 통해 우리 영혼이 이와 같은 영광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몸이 받는 유익
그렇다면 영혼이 떠나 무덤에 있게 된 신자의 몸은 어떤 유익을 얻게 되는 것일까요? 신자의 몸은 “여전히 그리스도께 연합된 채로 부활할 때까지 무덤에서 쉬게 됩니다.” 죽어서 장사된 몸은 무덤 속에서 썩어가다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신자의 몸은 죽어서도 여전히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비록 죽음이 영혼과 몸을 갈라놓았지만, 그리스도와 갈라놓기까지 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연합된 신자의 몸은 부활의 날, 곧 주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그 날에 모두 무덤에서 일어날 것입니다(부활에 관해서는 38문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죽은 성도를 가리켜 “주 안에서 죽는 자들”(계 14:13),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살전 4:14)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도 죽은 나사로를 가리켜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1:11).
그러므로 죽음은 그 자체로 슬퍼 보이지만,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부활의 날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서의 수고를 그치고 안식으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기쁘고 행복한 삶이기도 하지만, 많은 슬픔과 고통을 피할 수 없는 고단한 삶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남아 있는 죄와 세상의 미혹과 위협, 마귀의 시험, 죄로 인해 겪게 되는 여러 비참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죽음은 우리를 이 모든 수고와 고통으로부터 쉼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의 영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죽은 몸도 여전히 예수님 안에 있으면서, 장차 도래할 주님의 재림의 날에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화되어 영혼과 결합하고 영원한 영광 가운데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의 죽은 몸은 무덤에서 편안히 쉬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된 죽음이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기에, 우리는 죽음을 바라보면서도 사도 바울과 같이 이렇게 기뻐하며 소리칩니다.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의 죽음은 어떠할까요? 겉으로 보기에 신자와 불신자의 죽음은 별반 다른 것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성도의 영혼은 죽음과 함께 그 즉시 온전히 거룩하게 되어 영광에 들어가게 되고, 그 몸은 모든 수고를 그리고 부활의 날을 바라보며 안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 믿기를 거절하고 순종치 않은 모든 사람들은 죽음으로써 자기 죗값을 치르게 됩니다. 그들의 죽음은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는 관문이 됩니다. 그들의 몸은 심판의 날과 지옥을 위해 무덤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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