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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kjoon

[4] 예수님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에요


본    문 요한복음 3장 1~16절
읽을말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분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복음 3장 16절).

예수님 시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이 가진 강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건으로써) 율법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통 바리새인자 산헤드린의 공회원이었던 니고데모 역시 이러한 신념을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에 대한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당시 유대 당국과 같이) 예수님이 보여 주시는 표적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밤”에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에서 “밤”은 부정적으로 표현됩니다. 나아가 밤은 당시 니고데모의 위치를 보여 주기도 합니다. 니고데모는 엘리트에 속한 부유한 귀족으로서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아마 니고데모는 드러내놓고 예수님께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1. “위로부터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새로 나야”(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4절, “사람이 늙어서 어떻게 태어날 수 있습니까? 자기 어머니 뱃속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습니까?”).

2.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예수님은 다시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탄생’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물’은 (성령과 관련되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곧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끗케 되는바, ‘새로운 영적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로서의 인간의 모든 노력, 모든 바리새적 율법 준수를 단번에 끊어버리셨습니다(6절). 거듭남, ‘중생’이란 오직 위로부터 나는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것이며, 성령으로 나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

그러나 니고데모는 여전히 예수님을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교만에 대하여 책망하시면서 그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내려오신 “인자”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할 것이니”(14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여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놋 뱀을 들어 그것을 보는 자마다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그분의 독생자, 곧 인자의 들림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위로부터 임하는 영생은, 오직 예수님의 낮아지심, 특별히 “십자가에 들리심”(죽으심)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생각하기]

아담이 타락한 후, 모든 인간은 뿌리 깊은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러한 죄의 본성에 대하여,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떠한 육신으로도, 영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위로부터” 주시는 생명의 은혜입니다. 거듭남, 곧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은 오직 “위로부터” 옵니다.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이 이루신 모든 유익을 자기 백성에게 나누어주십니다. 바로 그 “하나님을 통하여서만”, 우리는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새 생명으로부터 믿음이 깨어나는 순간, 믿음은 말씀과 연계되고, 이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은 새 생명 안에서 자라게 됩니다(엡 3:16). 그러므로 거듭난 자는 더 이상 죄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 죄성은 남아 있지만, 죄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성령 안에서 죄와 더불어 싸우며 승리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거듭남”의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녀들은 어떠할까요? 우리의 많은 자녀들은 아직 너무 어려서 실상 그들의 믿음과 회심의 행위로 거듭남을 드러낼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언약의 자녀들의 구원에 대하여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하나님께 대하여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의 확신이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듯이, 우리 자녀들의 거듭남 역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창 17:7, 행 2:39, 고전 7:14).

하나님은 공적 설교뿐만 아니라 부모와 교사를 통해 전해지는 말씀과 가르침을 통해서도 믿을 수 있는 힘과 믿음의 능력을 주시며, 믿고자 하는 의지와 믿음 자체도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들이 아직 자신들의 영적 생명을 믿음과 회심의 행위로 드러낼 수 없다 하여 그들의 구원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언약을 너와 네 자녀에게 세워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겠다.”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믿으며, 그 믿음 가운데 더욱 자녀들을 주의 말씀과 훈계로 가르치는 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자녀들을 거듭나게 하시며,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따라 그들의 믿음과 회심, 그리고 성화 가운데 자녀들의 거듭남을 확증하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 모든 가정 가운데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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