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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영과 진리로 참된 예배를 할 수 있어요


본    문 요한복음 4장 7~26절
읽을말씀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그분께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요한복음 4장 24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의 수가 동네로 향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사마리아” 지역이 자주 등장하는데, 1세기 당시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아주 부정하게 여기던 땅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인 역시 유대인들에게는 부정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분에 이 세상에 오신 목적(요 3:16)을 따라, 그 길을 가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수가의 한 우물곁에서 한 여인을 기다리셨습니다. 이 여인은 아무도 없는 시간에 물을 길러야 할 정도로 사마리아 안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여인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영적 갈증에 목말라 했습니다. 여인은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셨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구원)이었습니다(10절).

[참된 예배]

그러나 여자는 여전히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어둠을 비추셨습니다. 예수께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 하셨을 때, 비로소 여인은 예수님이 영적인 것을 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아직까지도 예수님을 “선지자”와 같은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제 여인의 질문은 “예배”로 향합니다. 여인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는 것이 옳은지를 물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 가장 논쟁이 된 주제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참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오는데, 지금이 그때이다”(23절). 지금까지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들이 예배하는 “것”만을 알았지만, 이제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아버지”께 예배할 것입니다.

특별히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진리의 영이신 성령으로) 이루어질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이 몸이 아닌 영적인 존재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은 세상의 존재와는 다르게 구별된 존재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나 형상의 모습으로 예배할 수 없습니다.

참된 예배는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이 보내시는 “성령으로”,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향합니다. 여기서 영과 진리는 모두 “성령”을 가리키는바, 곧 참된 예배는 “성령에 의해서”, “성령을 따라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교회는 “영과 진리로” 하는 예배가 나타나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곳, “성령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 바로 그곳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성령을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바로 그다”(26절). 그제서야 여인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육신의 목마름보다 영적인 목마름이 더 긴급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자기 동네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 사람 “와서 보라.”고 전했습니다. (이러한 여인의 모습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와 전혀 다른 반응입니다.) 사람들은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로 믿게 되었습니다.

[생각하기]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 지역과 사마리아인은 부정한 존재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그들은 결코 구원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따라, 모든 경계를 뛰어넘어 참된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이런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조건과 상황에 따라 좌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구분도 없고, 많이 배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구분도 없습니다. 빈부나 귀천의 구분도 없습니다. 복음은 모든 조건과 상황을 무너뜨립니다. 실상 우리는 모두 사마리아인과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복음으로써, 우리와 하나님을 가로막았던 모든 죄를 허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의 빚진 자로서, 우리는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긍휼을 베풀며 사랑을 나누어야 함이 마땅합니다.

또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셨습니다. 그것은 생수, 곧 “성령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었습니다(10절).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절). 이 물은 절대로 목마르지 않는, 곧 목마름을 “영원히 충족”하는 물입니다. 그런데 이 물은 세상의 부요함(사람, 재물, 즐거움 등)으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이 물은 오직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생수를 맛본 자, 곧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변화됩니다. 우리가 새롭게 변화될 때, 가장 먼저 우리는 “참된 예배”로 향하게 됩니다. 참된 예배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따르는” 예배입니다. 참된 예배는 “진리의 영되신 성령을 따라”, “예수님을 붙잡고”,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령으로 새롭게 된 사람만이, 영이신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참된 예배는 단지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오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예배는 삶의 시작입니다. 성령을 따라 예배하는 사람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따를 뿐만 아니라, 진리이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합당하게” 살아갑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 말씀하는 바와 같이,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우리의 모든 일상을 진리이신 말씀을 따라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을 따르는 참된 예배입니다.

이러한 참된 예배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바라는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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