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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kjoon

[7]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고치셨어요


본    문 마가복음 2장 1~12절
읽을말씀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도록 하겠다. 예수께서 그 중풍 환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말하니, 일어나서 네 침상을 들고 네 집으로 가라.’ 하셨다(마가복음 2장 10-11절).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은 유대 전역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었고, 예수님은 잠시 다른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예수님은 다시 가버나움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이 집은 베드로와 안드레의 집이었을 것입니다, 참고. 막 1:29).

그러나 예수님이 가버나움 집에 계신다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서 문 앞까지도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때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때문에 도저히 문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이들은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를 달아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중풍병자를 향해, “죄 사함”을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세계관과 관련됩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육체적인 질병은 죄의 결과로 여겨지고는 했습니다(참고. 레 26:14-16, 25절). 또한, 모든 질병이 죄의 결과는 아니지만(참고. 요 9:2-3), 아마도 이 중풍병자의 경우에는 병이 죄와 어떠한 연관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중풍병자에게 있어 죄 사함의 선언은 곧, 병의 원인을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죄 사함을 통하여, 중풍병자의 몸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죄 사함의 선언에 대하여 “신성모독”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죄 사함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죄 사함을 선언함으로, 스스로 “하나님과 같은 신적 권위”를 드러내어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인자에게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위”가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여기서 “인자”라는 호칭이 처음으로 사용되는데, 이는 다니엘 7장 13절에 나오는 “인자 같은 이”에서 기인한 예수님의 자기 호칭이자, 메시아적 호칭입니다: “밤중의 환상 중에 내가 보니, 하늘의 구름을 타고 인자 같은 이가 와서, 옛적부터 계신 분 앞에 인도되었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가 주어지고,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들을 말하는 자들이 그를 경배하니, 그의 권세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권세이며, 그의 왕국은 결코 멸망치 않을 것이다”(단 7:13-14). 여기서 언급되는 인자 같은 이는 “신적인 존재”입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는데, 예수님은 그 권세에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10절).

이러한 선언 후,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걸어가라고 명령하시며 그의 병을 고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죄 사함의 용서와 치유를 통해,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그분의 신적인 권위를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신적) 권위 있는 기적을 본 모든 사람은 다 놀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생각하기]

1) 믿음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일반 가정집 구조는 1층 평지붕 형태로써, 지붕은 대개 작업장이나 취침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따라서 상당히 견고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지붕을 뜯는 네 사람의 행동은 언뜻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이들의 행동에 대하여 “믿음”이라고 밝힙니다. 믿음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지(지붕을 뜯어서라도) 예수님께 나아간 것을 말합니다. (비슷한 경우로, 바디매오와 혈루증 걸린 여인이 있습니다.) 이들의 믿음 가운데는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께 나아간다면,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리라는 확신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 확신은 곧 “행함으로 표현되는 믿음”이었으며, 예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믿음의 증거”였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단지 어떤 것을 알고 확신하는 감정의 상태가 아닙니다. 믿음은 알고 확신하는 바를 “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네 사람이 지붕을 뜯어냈던 것처럼, 바디매오가 소리쳤던 것처럼, 혈루증 걸린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댔던 것처럼, 믿음은 예수님을 확신하는 가운데, 행동합니다.

2) 예수님의 권위

마가복음에서 “권위”라는 단어는 모두 9번 사용되는데, 이 권위는 서기관들과 달랐고(1:22), 더러운 영들까지도 굴복시키며(1:27, 3:15, 6:7), 성전의 주인으로서 성전을 깨끗하게 할(11:28-29, 33절) 권위였습니다. 그리고 본문에 나타난 것처럼, 예수님에게는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었습니다. 즉, 마가복음에서, 예수님 보여 주신 권위는 메시아로서 오신 “신적인 권위”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중풍병자의 병이 치유된 사건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신적 권위”에 초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가장 먼저, “죄 용서”를 선언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죄 사함의 선언에는 무엇보다 하나님으로서 예수님의 신적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셨을 때 그가 걷게 된 것은, 곧 죄 사함의 선언이 이루어졌다는 “표적”이 되었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언하신 이유는, 죄 사함이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죄 사함을 통하여, 장차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죽임을 당할 “고난 받는 메시아”로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중풍병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단지 그의 병이 낫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의 해방이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죄 사함이 필요합니다. 또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그들이 예수님 안에서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의 치유를 위하여 고난 받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의 권세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네 명의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확신하며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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