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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9월 목회서신


지난 8월 21일, 맹지은 성도님께서 오랜 투병 끝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이나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죽음은 얼마나 강력한 권세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이나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결코 멈추거나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도로서 죽음 앞에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첫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죽음이든 사랑하는 성도의 죽음이든 우리의 죽음만 생각하고 말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죽음만 생각한다면 죽음은 비통한 것이 되고 말 뿐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위한 죽음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으실 이유가 전혀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생명 자체이신 분이고 모든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죽음은 죄인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인데,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죽음을 죽으신 것은 순전히 우리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이나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마주할 때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생각하고 바라봄으로 위로를 얻고 소망을 얻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도의 죽음 앞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을 뿐 아니라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부활을 알고 믿고 확신하게 하시려고 게바에게와 열두 제자에게와 야고보에게와 일시에 오백여 형제에게도 자신을 보이셨고 맨 마지막에는 사도 바울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를 위한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이나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마주할 때에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위로를 얻고 소망을 얻어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우리의 부활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고 하셨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은 차례대로 되는 것인데, 제일 먼저는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어야 했기에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부활하신 것이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강림하실 때에, 온 세상을 심판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충만하게 나타내 보이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들” 곧 그에게 속한 자들이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고전 15:23).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우리가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 부활하게 될 것을 생각하며 위로와 소망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 이것만이 죽음의 슬픔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위로를 가져다줄 수 있고, 사망의 두려움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담대함과 소망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에서 그저 슬퍼하고 낙망하면서 장례를 치를 뿐, 죽음을 통해서 얻어야 하는 중요한 교훈은 하나도 얻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을 허비한 것입니다. 맹지은 성도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서 이 세 가지가 더욱 분명하게 기억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2021년 9월 4일

양의문교회 담임목사 김준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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