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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겨울수련회] 삼손의 출생에 담긴 이야기

삼손의 출생에 담긴 이야기, 사사기 13:1-5


* 이번 겨울수련회에서는 사사기 13-16장을 함께 읽으며 '삼손'에 관하여 생각해 보려 합니다. 그 전에 간략히 배경적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삼손의 시대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의 과업은 각 지파에게 분배된 기업을 정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 내는 일을 멈추고, 그들과 함께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끝까지 싸워 정복하지 않고 남겨둔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 ‘옆구리의 가시’가 되고, ‘올무’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우상을 섬기고 범죄하였던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의 친구가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노예가 되어 압제와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사’(지도자, 재판관)를 보내주십니다. 사사는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이방 나라를 물리치고, 사사의 통치 아래 이스라엘은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사사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은 다시 우상을 섬기며 악한 죄를 짓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이방 나라에 압제를 당하고,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다시 사사를 보내주셔서 구원하시고, 평화가 찾아옵니다. 이것이 사사기에 나타나는 기본적인 패턴입니다. 하지만 이 패턴이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습니다. 패턴이 반복되면서 이스라엘의 타락은 더욱 심해지고, 지도자인 사사들도 많은 문제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삼손’은 사사기의 마지막 사사로서, 이스라엘이 가장 타락하였을 때, 블레셋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였습니다.


삼손이 태어날 무렵,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블레셋의 지배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전과 달리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삼손 이야기에는 이스라엘의 회개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비참과 고통이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의 압제를 당연시하며 블레셋의 지배와 문화에 동화되어 갔습니다. 그들은 평화를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드온의 시대까지는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통해 대적들을 물리쳐 주셨을 뿐만 아니라, 사사들의 통치 아래 평화를 주셨습니다(삿 3:11,30; 5:31; 8:28). 하지만 기드온 이후에는 사사들이 대적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지만, 이스라엘이 평화를 누렸다는 내용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평화를 모르고, 블레셋의 지배 아래 겪는 비참과 고통을 당연시하며, 그들과 같은 신을 섬기고 그들과 같이 죄악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어떤 사사 시대보다 영적으로 더 칠흑같이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찾지도 구하지도 않았지만, 그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삼손을 보내십니다.



삼손의 가족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는 소라 땅에 사는 단 지파의 가족이었습니다. 짧은 정보이지만, 삼손의 출생 배경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내용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여호수아는 열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했는데요, 이때 단 지파는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유다 지파와 접해 있던 요단강 남서쪽 지중해에 인접한 지역을 기업으로 받습니다(수 19:40-46). 지중해변의 오래된 항구 중 하나인 욥바를 포함하고 있는 이 지역은 농사를 짓기에 참 좋은 비옥한 평야 지대였습니다. 욥바 항구를 기반으로 해상 무역을 하기도 좋았지요. 당연히 이 좋은 땅을 차지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겠지요. 당시 이 지역은 철기 문명을 가진 해양 민족 블레셋의 지배력 아래 있었습니다. 단 지파는 가장 좋은 땅을 기업으로 받았지만, 동시에 강력한 대적을 물리치고 그 땅을 정복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단 지파는 기업을 정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아모리인들에게 쫓겨 유다 접경 산지 지역에 머물게 됩니다(삿 1:34). 삼손의 가족이 살던 소라와 마하네단이 바로 그 곳이었습니다(삿 13:25).


그런데 단 지파의 기업과 관련하여 사사기는 흥미로운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사사기 18장은 단 지파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포기하고 자기들이 보기에 좋은 땅을 찾으러 북쪽으로 이동한 사건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삿 18:1). 단 지파는 약속의 땅에서 분배받은 기업을 포기하고 새롭게 기업으로 삼을 만한 땅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결국 단 지파는 약속의 땅을 벗어나 이스라엘 북쪽 경계에 위치한 라이스를 점령하고 그곳 사람들을 모두 죽인 후 자신들의 기업으로 삼았습니다(삿 18:27-29).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단 지파가 자신들을 위해 우상을 세우고, 자신들의 제사장으로 삼은 레위인이 바로 모세의 손자이고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으로 밝혀진 것입니다(삿 18:30). 게르솜이 여호수아와 동시대 사람이라고 본다면, 요나단은 사사 시대 초기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 지파는 매우 이른 시기에 하나님의 기업을 버리고 약속의 땅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모리 사람들에게 쫓겨 산지와 골짜기에 살게 된 단 자손은 북쪽으로 이동하지 않고, 기업의 땅에 남아 있었던 소수의 단 지파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수적으로 열세였고, 무기도 변변치 않았기에 아모리 족속에 패해 산지로 쫓겨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포기하지 않고 남아 있었던 단 지파의 가족 중에 삼손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던 것입니다.



나실인 삼손


나실인에 대한 규정은 민수기 6:1-21에 나와있습니다. 나실인이란, 평범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서원한 사람을 말합니다. 서원한 기간 동안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일상적인 삶을 살되, 제사장에 준하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나실인이 지켜야 하는 규칙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포도주와 독주,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머리카락을 잘라서는 안 됩니다. 셋째, 시체를 가까이 하면 안 됩니다. 만약 규칙을 어기기 되면 그는 규정된 정결 예식을 행하고 일곱째 날 머리를 밀고 제사를 드린 후에, 새롭게 나실인으로 서원하고 지켜야 했습니다. 나실인으로 서원한 기간이 끝나면 규정된 희생제물을 드리고, 이때 머리카락을 잘라 제단 불에 태웠습니다. 이렇게 나실인 서원이 다 지켜진 후에는 이전과 동일하게 일상생활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나실인 서원은 자발적으로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은 스스로 서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실인으로 선택하셔서 평생 나실인으로 살도록 부르셨습니다. 심지어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나실인으로 자라나도록 삼손의 어머니도 임신 기간동안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삼손이 생명을 얻는 순간부터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흠 없는 나실인으로 살게 하시려고 철저히 보호하셨습니다. 삼손의 나실인 됨은 삼손의 시작과 끝이고, 삼손 자신이며, 삼손의 ‘정체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가장 어둡고 혼란했던 시대에, 아무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세상의 비참과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도 모른채, 그저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 생각에 옳은대로, 자기의 만족과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구원자를 예비하시고 보내주십니다. 그는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할 것’(삿 13:5)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구원은 다윗에게서 완성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삼손보다 더 위대한 구원자,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를 모든 죄와 비참에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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