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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구약 1-3 죄가 세상에 들어왔어요

최종 수정일: 2월 27일

주제: 아담과 하와의 죄가 그들을 하나님으로부터 갈라놓았어요

본문: 창세기 3장 1-24절

     

에덴에서 누리던 행복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만물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존재였어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 형상을 따라 지으셨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다른 피조물들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던 것과는 달리 사람을 지을 때에는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셔서 생명이 있는 존재가 되게 하셨어요. 그리고 지으신 사람 곧 아담을 위해 하나님은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곳에 아담을 두셨어요.

     

하나님이 아담을 위해 마련하신 에덴동산은 어떤 곳일까요? 너무나도 좋은 곳이었어요.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아담을 위해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어요.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도 다른 짐승들과 같이 음식을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였어요. 하나님은 그 사실을 아시고 아담을 위해 동산에는 강이 흐르게 하셨고 또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예비해 두신 거예요. 만약 하나님께서 고대의 난폭한 왕들이나 독재자들과 같이 자신의 부와 권세를 위해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분이셨다면, 하나님은 이렇게 하지 않으셨을 거예요. 그저 사람이 겨우 생존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음식만을 공급하며 쉼도 없이 하루 종일 일만하게 하셨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셨어요. 그래서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마음껏 맛볼 수 있게 하셨어요.

     

또한 하나님은 온 땅을 다스리게 하신 아담이 쉴 수 있도록 하시려고 안식일도 정해주셨어요. 일곱째 날 곧 하나님께서 창조의 일을 마치고 쉬셨던 그 날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후, 아담이 안식일마다 힘든 수고를 그치고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며 복된 안식을 누리게 하셨어요.

     

또 아담에게는 돕는 베필도 주셨어요. 그래서 다른 동물들과는 나눌 수 없는 사랑을 여자와 주고 받으며 또 도움을 주고 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하셨던 거예요.

     

뿐만 아니라 때가 되면 더 복된 상태로 변화될 것이라는 소망도 가지고 있었어요. 물론 에덴 동산에서의 삶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 이상의 안식과 복을 누릴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어요.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에덴 동산 중앙에 있던 생명 나무였어요. 아담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장 복된 상태 곧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 다 알 수는 없었지만 동산을 오갈 때마다 생명나무를 바라보며 그때를 바라보았을 거예요.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는 그 자체가 아담에게는 말로다 설명할 수 없는 기쁨과 위로를 가져다주었을 거예요.

     

     

범죄와 타락

하지만 죄가 세상에 들어왔을 때, 아담은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인간의 죄는 인간이 에덴에서 누리던 모든 행복을 산산조각내고 말았어요. 죄가 어떻게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뱀의 모습을 한 사탄에게로부터 시작했어요. 간교한 뱀은 여자에게 접근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물었어요.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3:1, 새번역) 뱀은 그저 질문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뱀의 질문은 악한 목적을 가진 질문이었어요. 뱀은 이 질문을 통해 하와의 마음 속에 선하신 하나님께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려 했어요.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시는 분이 아니라 마치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시는 분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던 거예요.

     

사탄의 질문에 대해 하와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2-3절) 여자의 대답은 옳은 대답이었나요? 여자는 아담을 통해 하나님의 명령을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을 거예요. 주일마다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듯이 여자는 아담을 통해 선악과와 관련된 하나님의 금령을 들었어요. 그렇다면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나요?

     

아담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은 이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려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2:16)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 즉 먹고 싶은 대로 먹으라고 하셨어요.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 있는 모든 것이 다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여자는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라고 대답했어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임의로”, “먹고 싶은 대로”라는 말이 빠져 있어요.

     

또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어요(2:17). 하지만 여자는 그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고 대답했어요. 하나님은 먹지 말라고 하셨지 만지지도 말라고 하신 적이 없으셨어요.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하셨으나 여자는 “죽을까 하노라”고 대답해요. 하나님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으나 여자는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좋게 될 지도 몰라’라고 대답한 거예요.

     

여자의 답이 틀린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 정도에 있어서 많이 약화되어 있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사탄은 여자의 약점을 파악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말을 했어요.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여자는 사탄의 말로 인해 두 가지 기준을 가지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법은 “반드시 죽는다”고 말하고 있었고 뱀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사탄은 결코 죽지 않을 이유를 설명해요.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3:5)

     

“반드시 죽는다”와 “결코 죽지 않는다”는 두 기준 사이에서 여자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여자는 아담이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남편인 아담에게 알려주어야 했고 아담의 지도를 받아야 했어요. 하지만 여자는 아담의 지도를 받는 대신 사탄의 말이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스스로 판단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동산 중앙으로 갔던 거예요. 결국 여자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나무의 실과를 먹었고 그것을 함께 있던 남편에게도 주니 아담도 그것을 먹고 말았어요.

     

죄의 결과

죄의 결과는 참혹했어요. 죄를 지었을 때, 가장 먼저 그들은 수치심을 느꼈어요. 그래서 무화과 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 몸을 가렸어요. 또한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 금하신 실과를 먹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다는 죄책감이 아담에게 밀려들었어요. 죄를 미워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생각하니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그들을 엄습했어요. 시간이 지나 날이 저물고 바람이 서늘할 때,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어요.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그 소리를 들은 아담과 그의 아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어요. 허겁지겁 달아나느라 무화과 나뭇잎으로 엮은 치마도 잃어버렸을지 몰라요.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또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그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을 거예요. 물론 아담은 하나님이 그들을 찾아내실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이 자신들을 찾아내지 못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어요.

     

아담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왜 먹었느냐고 물으셨어요. 그러자 아담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3:12) 아담은 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대신에 자기 아내에게 책임을 돌렸어요. 사실 아담은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선악과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과 그 의미를 잘 설명해야 했어요. 또 하와가 자신에게 그 열매를 주었을지라도 아담은 얼마든지 그것을 거절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아담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기보다 자기 아내 탓을 했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원망했어요. 아담이 하나님께 자기의 아내를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 보세요.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신 여자” 하와도 마찬가지였어요. 하와도 뱀이 자신을 꾀어 열매를 먹었다고 말했어요. 뱀에게 책임을 돌리고 더 나아가 뱀을 지으신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고 말한 거예요.

     

뿐만 아니라 죄는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도 갈라놓았어요. 아담과 그의 아내가 범죄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꼈어요. 이전에 아담과 하와는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관계였어요. 아담은 하나님께서 여자를 자기 앞에 데리고 오셨을 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하며 사랑을 고백했어요. 그때 아담과 하와는 서로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했어요. 그들은 벌거벗고 있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어요. 하지만 타락한 이후 그들은 서로의 허물을 보았고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래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엮어 자신들의 몸을 가렸어요. 범죄하였을 때 아담과 하와는 완전히 남이나 마찬가지인 존재가 되었어요. 그래서 아담은 범죄의 책임을 자기 아내에게 돌리며 하와를 가리켜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신 여자”라고 불렀던 거예요. 만약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아담은 자기 아내를 지도하지 못한 자신의 죄를 아뢰며 자기 아내를 용서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을 거예요. 하지만 범죄하여 타락한 아담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게 되었어요.


이뿐 아니라 세상에는 고통이 찾아오게 되었어요. 여자에게는 자녀를 잉태하는 고통을 더하겠다고 하셨어요(16절). 또 남자에게도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하셨어요(17절). 하나님은 저주를 받은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므로 땀을 흘리고 수고하는 고통을 통해서만 그 수고의 열매를 얻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아이를 낳는 것 곧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타락하기 이전에 주셨던 복이며 땅에서 나는 열매를 먹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복 가운데 하나였어요. 하나님은 사람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 복들을 거둬가지는 않으셨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큰 고통을 통해 그러한 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마지막으로 죄의 결과로 죽음이 찾아오게 되었어요.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19절)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그 말씀대로 모든 사람이 죽을 것을 선언하신 거예요. 즉 죽음은 우리 인간의 생애에 있어 자연스러운 한 단계가 아니라 죄의 결과로 들어오게 된 형벌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람의 죽음을 볼 때마다 죄를 생각해야 하고 죽음은 죄로 인한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임을 기억해야 해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창세기 3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요. 어디서, 누구에게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아담이나 하와에게서 또는 세상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행동에서 희망을 찾아요. 하나님은 타락한 사람을 죄 가운데 멸망하도록, 죽어가도록 방치해 두셔도 되었을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나요? 아니에요. 범죄한 아담을 찾아오셨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물론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아오셔서 그의 죄를 추궁하시고 벌을 내리셨지만,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을 찾아온 일은 아담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보여주어요.

     

또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히셔서 그들의 수치를 가려주셨어요. 아담과 하와는 범죄한 직후 처음 느껴보는 수치심에 어쩔 줄 몰라하며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 수치를 가리려했으나 그건 형편 없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아담과 하와를 위해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입혀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셨어요. 이 또한 범죄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수치를 가려주리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줘요. 이처럼 타락한 인간을 향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만이 인간의 유일한 희망임을 보여주어요.

     

무엇보다도 가장 기쁜 소식은 창세기 3장15절에 등장해요. 하나님은 뱀 곧 사단과 사람이 원수가 될 것을 약속하셨어요. 여자는 하나님의 말보다 사탄의 말을 듣고 그의 말을 따라 범죄하였죠.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사탄을 선택하고 그의 종이 되기로 한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사탄과 사람 간에 적대감을 심으시고 그 둘이 원수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어요. 무엇보다도 “여자의 후손”이라고 부르신 한 구원자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여자의 후손”이 오셔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마귀의 압제 아래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거라고 약속하셨어요. 이것을 우리는 원복음이라고 말해요.

     

“여자의 후손”은 오셨나요? 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태에서 나셨어요. 그리고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죽음에게 죽음을 내리시고 마귀의 통치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셨어요. 비록 우리는 여전히 아담의 범죄로 타락한 세상을 살아가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아요. 다른 사람과 불화하며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요. 죄책감과 수치심,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가요. 남녀노소가 모두 저마다의 고통을 겪고 있어요. 하지만 희망이 있어요. 그것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악한 길에서 떠나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고 그를 죄인의 대속물로 내어주시는 데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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