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작성자 사진병철 안

구약 1-8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어요

최종 수정일: 4월 2일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1-2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1절)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번제는 양과 같은 짐승을 죽인 후 태워 바치는 제사입니다. 즉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은 이삭을 죽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삭이 누구입니까?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 되었을 때 얻은 귀한 아들입니다. 그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아들입니다. 하나님도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가리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외아들) 이삭을...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아 네 아들 이삭이 너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내가 안다. 그럼에도 그를 내게 바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명령은 도저히 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이 명령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 같은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라에게서 태어난 이삭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이루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씨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와 세상의 구원이라는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사용될 귀한 자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위해 이삭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것을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여기서 이삭이 죽는다면, 아브라함이 믿고 소망했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것입니다.

     

또 이 명령은 하나님의 거룩하시며 선하신 성품에도 걸맞지 않는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자식을 죽여 바치라고 명하시는 그런 신이 아니었습니다. 예로부터 고대 근동지방에서 자기 자식을 재물로 바치는 관습이 있어왔습니다. 몰렉이라는 우상을 섬기던 자들은 자기 아이를 불 사이로 지나가게 하여 몰렉에게 제물로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자들과 같이 자기 아들을 우상의 제물로 바칠 때, 그 일을 매우 가증하게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거룩하고 선하신 성품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항의하고 불순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은 매우 비윤리적인 명령입니다. 아버지에게 자식을 죽여 바치라는 명령은 얼마나 잔인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것이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명령이라는 것을 압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친다면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자기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자기 외아들을 죽인 미친 노인이라는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도 훼방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에 대해 하나님께 항변하거나 불순종할 많은 이유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3-10절)

그렇다면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이 보인 반응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후 아브라함이 어떤 의혹과 번민과 갈등 속에서 그 밤을 보내었을지 다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마음에 일었던 모든 의혹과 번민을 잠재우고 어떤 답을 얻고 잠들었다는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아브라함의 행동이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3절은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아침이 되었을 때,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준비를 시작합니다. 그는 나귀 등에 안장을 얹고 두 종과 아들 이삭에게도 길을 떠날 준비를 시켰습니다. 또 번제에 쓸 장작을 다 쪼개어서 길을 나섰습니다. 아브라함은 꾸물거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의 행동에서 어떤 고뇌나 망설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길을 나선 지 삼일이 되었을 때,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두 종들은 하나님이 명하신 모리아산이 멀리서 보이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아브라함은 두 종들에게 나귀와 함께 그곳에서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5절, 개역개정)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이삭이 자기와 함께 살아서 돌아올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까? 이 이야기의 결말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왜 “우리가 돌아오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에 대해 히브리서 11장 17-1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은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말씀을 하신 밤에 그리고 모리아산으로 길을 나선 이후에도 아브라함의 마음 한편에서 수 많은 고뇌 섞인 질문들이 터져 나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마음의 모든 소리들을 믿음으로 잠재웠습니다. 무슨 믿음입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과 신실하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수 있다는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하나님께서 친히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창 21:12). 사라에게서 난 이삭만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복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위해 그리고 이삭을 통해 약속을 이루시고 온 세상에 복과 구원을 가져다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리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믿음으로 모든 육체의 소리들을 잠재우고 하나님께 복종하였습니다.

     

두 종들에게 그곳에 머물러 있게 한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장작을 이삭에게 지우고 자신은 불과 칼을 챙겨 함께 걸었습니다. 그때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삭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모습을 자주 보고 참여했을 것입니다. 이삭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려면 준비한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흘리고 그것을 장작이 쌓여 있는 제단 위에서 태워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번제를 드리기 위해 모리아산으로 가는 지금 자신들에게는 번제할 어린 양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아브라함에게 질문한 것입니다. 이삭의 질문에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창 22:8)

     

아브라함의 대답은 ‘아들아 나는 모르겠다. 너를 번제로 들리라 하시는구나. 하나님의 명령에 지금 내가 순종은 하고 있지만 나도 이해할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확신하는 것은 전능하시고 신실하시며 자비하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이 일에 대해 어떤 조처를 하실 것이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 지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 산의 한 장소에 이르렀을 때, 아브라함은 거기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제단 위에 장작을 벌려 놓은 다음 이삭을 묶어서 제단 장작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칼을 손에 쥐고 아들을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셨다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내려쳤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의 결과(11-19절)

아브라함이 이삭을 내려치려는 순간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1-12절)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수풀에 뿔리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제물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그 숫양을 잡아다가, 이삭 대신에 그것으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은 그가 참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보시고 그에게 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다시 정리를 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삭을 바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셔서라도 그를 돌려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그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었고, 믿음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시험하시며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때로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가 잘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할 때, 많은 희생과 손해를 불가피해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순종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셔서라도 약속하신 것을 지키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순종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믿을 때 순종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을 때, 우리는 거기서 순종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죽기까지 순종하셨던 예수님을 살리신 것을 믿을 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도 살리시며 약속하신 복을 주실 것을 믿을 수 있고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던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고 순종합시다.

조회수 27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