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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마르부르크 회담(4)

3. 마르부르크 회담(Marburg Colloquy)


마르부르크 회담에서 논의된 주제는 ‘성찬’이었습니다. 10월 2일부터 3일까지 진행된 토론의 내용은 ‘연극’을 통해 살펴보았는데요, 오늘은 이 논쟁에 대한 칼뱅의 평가와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칼뱅의 노력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3.1. 루터의 성찬 이해, “이것은 내 몸이니라”(Hoc est corpus meum, 마 26:26).

루터는 그리스도께서 “이것은 내 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인성)이 실제로 성찬에 임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지 않는 위격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신성이 편재한다면(어느 곳에나 있다면) 그분의 신성 또한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루터의 생각이었습니다. 루터에게 그리스도의 인성은 곧 복음이었습니다. 본래 우리는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심판을 받을 죄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성육신하신 하나님, 곧 그리스도께서 그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육신하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없는, 인성이 없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루터에게는 심판이요 죽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루터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화체설’을 철저히 거부하면서도, 삼위 하나님께서 편재하시는 모든 곳에는 성자 하나님의 인성도 함께 하실 수 있다고 말했고, 그 결과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임재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루터의 열정을 생각하면, 루터의 주장이 어느정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성찬에 그리스도의 몸(인성)이 실재한다는 것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루터는 무리한 시도를 하게 됩니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과 결합될 때 “속성의 교류”(Communicatio idiomatum)가 일어나서 인성이 신성의 덕을 보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인성도 신성과 같이 편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역사 속에서 정통 신학의 입장은 “유한은 무한을 담을 수 없다”(Finitum non capax infiniti)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자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셨을 때에도 성자 하나님의 신성은 예수님의 육체에 갇혀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성을 따라 이 땅에서 주무셨을 때에도, 삼위 하나님의 제2위격이신 성자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세상을 통치하시는 일을 멈추지도 않으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칼뱅은 기독교강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늘을 떠나지 아니하시면서, 동정녀의 태에서 태어나시고, 땅을 거니시며, 십자가에 달리시기를 원하시는 방식으로 하늘에서 내려 오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 분은 계속해서 당신님이 처음부터 그리해 오셨던 것처럼 온 땅을 가득 채우셨던 것이다.” 이렇게 칼빈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의 인성 “밖에서도”(extra) 신성의 작용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루터파 신학자들은 조롱하듯 “Extra Calvinisticum”(칼빈주의들이 말하는 밖에서)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표현은 오히려 개혁파 신학의 입장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표현이 되었습니다.


3.2. 츠빙글리의 성찬 이해, “육은 무익하니라”(Caro non prodest quicquam, 요 6:63).

츠빙글리는 ‘이것은 내 몸이다’라는 주님의 선언을 ‘이것은 내 몸을 의미한다’라고 이해했습니다. 츠빙글리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 6:63)라는 말씀을 근거로, 성찬에 사용된 외적 표지 자체보다 그것이 가리키는 본질이 중요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런 츠빙글리의 주장을 단순한 ‘기념설’이나 ‘상징설’로 오해하는 것은, 외적 표지인 떡과 포도주가 그저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츠빙글리가 말하는 기억은, 떡과 포도주를 통해 과거에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단순히 기억하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이곳으로 끌고 오는 기억입니다.


그래서 최근 츠빙글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츠빙글리는 처음부터 칼뱅과 같은 영적임재설을 주장했다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성찬에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 루터가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인성이 거기에 실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실제로 임재하신다는 것입니다. 츠빙글리가 작성한 취리히의 성찬 예전을 보면 ‘성령을 통하여, 하나의 믿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성찬에 임재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칼뱅으로부터 개혁파 성찬론을 완성하였다는 찬사를 들었던 버미글리(Peter Martyr Vermigli)는 츠빙글리의 성찬론이 결코 재세례파가 주장하는 기념설, 상징설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3.3. 칼뱅의 평가와 노력, <성만찬 소고, 1541>에서 <취리히 합의서, 1549>까지

칼뱅은 “성만찬 소고”(1541)라는 책에서 자신의 성찬에 관한 입장을 밝히며, 마지막에 마르부르크 회담에서 있었던 논쟁에 관하여 언급합니다. 먼저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마귀가 복음의 진전을 방해하기 위해 일으킨 불행한 사건’이라고 말함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하나되지 못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럼에도 칼뱅은 진리를 밝히기 위해 앞장서운 지도자들 사이에 일어난 큰 불일치로 인해 지나치게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기 위해 섭리 가운데 이런 일들을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루터와 츠빙글리의 시대적 한계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학과 실천이 워낙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개혁의 열정은 컸지만, 그에 비해 서로를 이해하려는 진정성과 필요성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마르부르크 회담에서 일치를 위해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존의 견해를 되풀이하면서, 자기의 견해를 변호하고 반대되는 입장을 논박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루터에 관하여 칼뱅은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1) 루터는 먼저 자신이 교황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그런 식의 장소적 임재(화체설)을 주장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츠빙글리와 외콜람파디우스는 루터의 견해가 로마교회의 화체설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이라는 것을 가장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2) 루터는 성찬이 하나님 대신 숭배하는 것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밝혀야 했습니다. 계속해서 “육은 무익하니라”라고 말했던 츠빙글리의 눈에 루터의 주장은 떡과 포도주 자체를 숭배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3) 루터는 조잡한 비유로 오히려 그의 견해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였고, 때로는 상대방을 향한 지나친 공격, 과장된 화법 등으로 가뜩이나 그의 말을 반대하는 자들의 감정을 더 상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츠빙글리에 관하여서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육체적 임재에 관한 교황주의자들의 오류와 그에 따르는 우상숭배적 요소에 대한 비난에 열중한 나머지 선을 세우기 보다 악을 부수는 데 더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리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는 잘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떡과 포도주는 성례의 표지이기 때문에 그것이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고 말하는 것을 지나치게 염려한 나머지, 성례의 표지는 실재와 연합된 의미의 표지라는 것을 충분히 말하지 못했고, 또한 우리는 주님께서 성찬을 통해 그의 몸과 피로(영으로, 실제로 임재하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된 교제를 부정하거나 모호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칼뱅은 크게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먼저 이들에게 감사해야 하고 또 존경을 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루터와 츠빙글리 모두 교회를 사랑하는 열정으로 이 일을 하였고, 주님께서 지금까지 이들을 통해 교회에게 베푸신 은혜와 복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주님께서 다시 연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 그 때까지 형제의 우애 관계를 잘 유지하며 기다리자는 것입니다.


루터파와 개혁파가 성찬에 관하여 대화할 때, 양측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칼뱅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겸손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말씀의 깊고 풍성한 의미를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할 수 있고,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기억하며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말씀의 의미가 너무 분명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말할 때에도 겸손한 마음으로 인내심을 갖고 잘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무엇보다 형제 사랑의 마음을 잊지 않고 대화를 이어가야 합니다.


실제로 칼뱅은 이후 루터가 츠빙글리와 외콜람파디우스를 비판하는 책을 내며 논쟁이 재개되려 할 때, 취리히의 불링거에게 편지를 보내 루터를 향한 분노를 자제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물론 칼뱅이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후로도 칼뱅은 취리히로 대표되는 개혁파 신학자들과 성찬론에 대한 합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합니다. 루터파와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부처가 루터주의자로 오해를 받을 때에도 칼뱅은 편지를 보내 교회의 일치를 향한 부처의 수고와 노력을 언급하며 변호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칼뱅은 불링거와 수많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서로의 견해가 다른 것을 확인하면서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서 일치를 위해 노력하였스빈다. 심지어 병약한 몸을 이끌고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그때에 제네바에서 300Km 정도 떨어져 있는 취리히를 다섯 번이나 방문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인내와 노력의 결과 칼뱅과 불링거는 비록 성찬에 관한 모든 부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549년 5월, 취리히 합의서(Consensus Tigurinus, 1549)를 작성하며 마침내 성찬론의 합의를 이루게 되며, 츠빙글리파와 칼빈파로 나뉘었던 개혁파는 비로소 연합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나 됨을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성찬이 오히려 참된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일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 것은, 우리 자신의 연약과 부족을 항상 기억하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우리에게 주신 진리의 말씀을 믿음으로 굳게 붙잡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전할 때에는 겸손과 인내, 사랑으로 전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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