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 바라봐야 할 것
민수기 20장은 모세의 불순종과 미리암과 아론의 죽음을 통해 이스라엘의 광야 실패기를 요약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분위기는 어둡고 우울합니다. 소망은 보이지 않고 절망적입니다. 모두가 불순종하과 실패해도 모세만큼은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모세마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눈으로 보며 의지할 수 있고,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사라진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은 언젠가 다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모세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도 실패하고 죽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실패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민수기 21장의 교훈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길에서 가나안 족속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싸웠고,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 승리로 인해 그곳 이름을 ‘호르마’라 불렀습니다. 호르마, 기억나시나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 명의 정탐꾼들의 말을 듣고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불평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악평하는 1세대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광야로 돌아가게 하셨지요.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가나안 땅으로 가겠다고 나섰다가 크게 패배하여 도망한 곳이 바로 호르마였습니다. 가장 크게 실패하고 무너진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승리와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실패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면 승리합니다. 이것이 호르마의 교훈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가 고민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후에도 또다시 같은 죄를 짓고 반복해서 실패하는 것 말이지요. 에돔 땅을 돌아가는 백성들은 길 때문에 마음이 상해버립니다. 이 지긋지긋한 광야 길을 또 걸어야 한다니, 마음이 상할만 합니다. 문제는 마음이 상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입술에서 나온 원망의 말입니다. 지금의 상황과 환경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모세 때문에 우리가 죽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만나를 ‘하찮은 음식’이라고 불평하며 먹기 싫다고 합니다. 마땅히 감사해야 할 하나님의 구원과 공급하심을 악하고 하찮은 것이라며 악평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일상을 지겹게 여기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매일 공급해주시는 것들을 하찮고 시시하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뭔가 힘든 일이 생기고, 부족한 것이 생기면 그 모든 불만을 하나님을 향해 터뜨리지는 않습니까?
어린 시절의 부끄러운 모습이 떠오르는데요. 어머니가 정성껏 차려주신 밥상에 앉아서, “또 이 반찬이야? 맨날 이것만 먹어?”라는 식으로 말하곤 했던 것 같습니다. 맨날 같은 반찬만 차려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까탈스럽고 불평 많은 저를 생각하셔서 제가 좋아하는 반찬을, 또 건강을 생각해서 먹어야 하는 반찬 등을 골고루 해주셨지요.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고 익숙해지니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은 생각하지 못하고 그렇게 불평하였던 것입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찬 410장)라는 찬송가 가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을 지배할 때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쓸데 없는 자인지, 그런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생각하며 찬송하게 됩니다. 그러나 광야와 같은 현실이 우리의 삶을 지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하찮고 쓸데 없는 것으로 취급하며 불평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를 악평하며 원망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대응은 불뱀을 보내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없는 불뱀을 만들어 보내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광야에는 본래 불뱀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뱀에 물려 죽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쓸데없다고 여기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 하나를 거두셨고, 그 하나가 얼마나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제야 백성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모세에게 중보를 요청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왜 고통 가운데서만 죄를 깨닫고 은혜를 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회개하며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해결책은 놋으로 뱀의 형상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매달아, 그것을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불뱀을 없애주시거나, 해독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저 놋뱀을 바라보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고통의 원인이 불뱀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진짜 문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바라보는 것을 그 해결책으로 주신 것이지요. 믿음이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말하지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해주신 것처럼 장대에 높이 매달린 놋뱀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하여 죽어야 할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는 죽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놋뱀을 바라볼 때 살았던 것처럼 말이지요.
오늘 불뱀과 놋뱀 이야기는 우리가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갈 때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지만, 선하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무엇보다 우리를 구원하셔서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10-20절은 호르산에서 모압 골짜기까지의 여정을 요약해서 설명하고, 21-35절은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 싸워 승리한 이야기입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건을 기억하며 찬송하곤 하였는데요(시 135, 136편).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입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기업을 얻게 되는 첫 번째 전쟁이기 때문입니다(민 32:33 참고). 흥미로운 것은 순탄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면 가지 않았을 지역인데, 돌고 돌다 보니 가게 되었다는 것이고, 전쟁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먼저 공격하여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결국 그 땅을 이스라엘이 기업으로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의 눈에는 불평의 이유로만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기업을 주시기 위한 방편이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크신 분입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까지 보시고 우리보다 앞서 가시며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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