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역사는 어떻게 찬송이 되는가
사사기 5장은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사사기 4장의 역사를 반영합니다. 이스라엘은 하솔 왕 야빈에 의해 압제를 받았고, 드보라와 바락, 야엘과 같은 사람들의 활약으로 이스라엘은 압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역사입니다. 우리는 악한 사람들 때문에 고통을 받고, 선하고 용감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해방됩니다. 역사란 무대 위에는 오로지 사람 뿐입니다. 하지만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고 지혜로운 뜻과 주권으로 계획하시고, 행하시고, 이루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너무 크고 기이하여 노래가 되고 찬송이 됩니다. 따라서 5장의 노래는 4장의 이야기를 더 풍성하고 깊이 이해하게 도울 뿐만 아니라, 4장의 이야기에 담긴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읽게 합니다. 곧 사람을 높이고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이야기로 읽는 것입니다.
2-11절. 먼저 드보라와 바락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잘 이끌었고, 백성들도 즐거이 헌신하였다고 말하면서,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초대합니다. 지도자들이 훌륭하게 일을 수행하고, 백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는 일은 하나님께 찬송할 만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천지만물이 복종합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대적이 두려워 작은 길로 다니며 마을에는 출입이 그쳤습니다. 그때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선지자인 드보라를 사사로 세우셔서, 마치 어머니가 자녀를 먹이고 돌보듯 하나님의 말씀으로 먹이고 돌보게 하셨습니다. 그때 백성들은 하나님을 잊고 새로운 신을 택하여 좇았고, 하나님께서는 전쟁으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에는 무기도 없었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의로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악한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각계각층 남녀노소 막론하고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찬송합니다.
12-18절. 하나님의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강림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친히 싸우시는 것이 여호와의 전쟁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구경만 하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편에서 싸웠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에브라임, 베냐민, 마길(므낫세), 스블론, 잇사갈, 납달리 지파에서 온 사람들이 이 전쟁에 함께 했습니다. 반면 요단 동편에 있었던 르우벤은 고민에 잠겨 나오지 않았고, 길르앗은 요단 동편에 앉아 있었고, 단은 배 안에 머물렀고, 아셀은 바닷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즉 여호와의 전쟁에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여호와께서 친히 싸우시는 전쟁에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즐거이 헌신하며 하나님의 편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싸우시니 나는 그냥 나의 자리에 가만히 있겠다고 안일하게 안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대로 이루어지니, 확신 가운데 더욱 힘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까? 어차피 하나님의 뜻대로 될텐데 라고 말하면서 안일하게 주저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19-27절. 가나안 왕 야빈과의 전쟁은 가나안 열왕과의 전쟁 중 하나입니다. 여호와의 전쟁은 모든 가나안 족속들을 물리치고, 그 땅의 거짓된 우상들과 악한 문화를 완전히 없애는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열왕은 전쟁에 나왔지만 탈취물을 얻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패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여호와 하나님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단 말입니까?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싸웁니다. 하늘에서 큰 비가 내려 홍수가 일어났고, 홍수는 시스라의 철병거를 무용지물로 만들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이스라엘을 좇던 애굽의 군대를 홍해로 쓸어버리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시스라의 철병거와 군대를 쓸어버리십니다. 아무리 강한 무기와 군대가 있어도 하나님을 당할 수는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이기십니다.
이번에도 두 부류의 사람이 대조됩니다. 먼저 메로스는 저주를 받습니다. 아마도 지명 이름 같은데, 이 본문에서만 등장하는 이름이라 정확한 정보를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스라엘의 가까운 동맹국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메로스는 당연히 여호와를 도울 것이라 기대했지만, 돕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저주를 받습니다. 반면 야엘은 남편 헤벨이 가나안 왕 야빈과 동맹 관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위하여 싸웠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크게 보았고,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야엘은 복을 받습니다.
28-30절.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서 드보라는 시스라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시스라의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녀는 아들의 승리를 확신하면서, 왜 이리 더디올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말하길, 아마도 노략물을 얻기 위해서 늦는 것이겠지 합니다. 병사마다 한 두 처녀를 얻고 시스라는 채색옷을 노략할 것입니다. 시스라의 어머니를 들어 가나안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악함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철병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으로 보이지만 어리석습니다. 눈에 보이는 크기와 강함만 주목할 뿐, 눈에 보이는 세상을 창조하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편 시스라의 어머니의 말에서 그들의 악함이 드러납니다. 이 대화는 여성들의 대화인데, 그 대화의 내용이 참혹합니다. 본문에 ‘한 두 처녀’로 번역된 말은 문자적으로 ‘자궁 하나, 자궁 둘’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성노예라는 의미로, 패배한 나라의 여성은 성적 착취의 대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악한 생각과 문화로 인해 가나안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성을 성적 착취 대상으로 보았던 시스라가 여성에 의해, 여성들이 사용하는 도구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잘 보여줍니다.
31절은 이 노래의 결론입니다. 가나안 열왕, 시스라와 같은 여호와의 대적은 모두 이렇게 망하게 되기를, 반면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길 간구하며 마칩니다. 사사 드보라의 이야기(4-5장)은 우리에게 두 가지 관점을 가지고 살라고 격려합니다. 우리는 역사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신학자의 눈,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단순히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슨 일을 행하고 계신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이 행하신 일들로 인해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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