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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매일말씀묵상(210824) : 사사기 8장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잊어버리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미디안을 붙이셨습니다. 기드온과 삼백 명은 싸우지 않고 승리하였습니다. 도망가는 미디안 사람을 납달리, 아셀, 므낫세 지파가 좇았습니다.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에도 사자를 보내 요단 강을 건너 도망하려는 미디안 사람들을 막아달라고 합니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미디안을 잘 막았고, 오렙과 스엡이라는 두 지휘관도 사로잡아 처형합니다. 이렇게 전쟁이 잘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이제 기드온이 사는 날 동안 그 땅이 태평하였다는 말이 나오고 이야기는 끝나야 할 것 같은데요. 기드온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본문을 보면 에브라임 지파가 기드온에게 찾아와 따집니다. 왜 처음부터 우리를 부르지 않았냐는 것이지요. 글쎄요, 불렀으면 왔을까요? 에브라임의 태도가 무척 기회주의적으로 보이지만, 기드온은 자세를 낮추어, 우리가 처음부터 미디안과 싸운 일보다, 너희가 그들의 두 지휘관 오렙과 스엡을 잡은 것이 더 큰 일이라고 추켜세우며 누그러뜨립니다. 그리고 기드온과 삼백 명은 계속해서 도망하는 미디안을 쫓습니다. 그들은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잡기 위해 피곤하기까지 추격하는데요. 그 요단 동편 끝에 있는 숙곳과 브누엘을 지나게 됩니다. 그리고 피곤한 군사들에게 식량을 달라고 부탁하지요. 하지만 거절당합니다. 거절의 이유는 아직 세바와 살문나를 확실하게 이긴게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미디안 접경 지대에 살고 있었기에, 혹시 기드온이 패배했을 때 미디안에게 당할 보복을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피곤하기까지 적을 좇는 기드온과 삼백 명에게는 배신처럼 느껴지는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기드온은 이들이 자신을 “희롱했다”(15절)고 표현합니다. 기드온은 분노하여서, 내가 세바와 살문나를 잡아서 다시 돌아올 때 너희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대로 세바와 살문나를 잡은 후에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을 잔인하게 징벌하고 죽입니다. 아무리 잘못했다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라고 세운 사사가 하나님의 백성을 죽인다니,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러한 기드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 5절에 나옵니다. 기드온이 자신과 함께 하는 삼백 명을 “나의 종자”라고 표현합니다. 7장 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너와 함께하는 백성”(개역성경은 ‘너를 좇은 백성’으로 번역)이라고 하셨고, 8장 4절에서 내레이터도 “기드온과 함께한 자”(마찬가지로 ‘그 좇은 자’로 번역)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5절에서 기드온은 “나의 종자”라고 표현하였고, 이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내 발 아래 있는 백성”이란 의미로 누군가의 지배 아래 있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함께 하는 동역자라고 말씀하시는데, 기드온은 내 발 아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집요하게 좇은 이유도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세바와 살문나를 처형할 때 기드온은 그들이 다볼에서 죽인 자들이 자기의 형제임을 밝히면서,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19절)라고 말합니다. 미디안 왕과 패잔병을 이렇게 피곤하기까지 추격한 이유가 형제의 복수였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아니라면 살려두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게 하신 사람들을 종이라 생각하여, 그들을 자신의 사적인 복수에 이용한 것입니다.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을 죽인 이유도 자신을 희롱하며, 나의 군사들에게 식량을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이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처럼, 자신이 왕이 된 것처럼 생각하는게 아닌가 싶은데요.

기드온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22절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찾아와서 말하길,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라고 합니다. 누가 우리를 구원했다고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닌 기드온이 이스라엘을 구원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하지요. 매번 우리가 고난 당할 때마다 하나님을 찾을 필요 없이 당신이 왕이 되고, 당신의 아들과 손자가 이어서 다스려주면 우리는 고통당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이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기드온은 이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했고, 거절하지요. 그리고 다음과 같이 신앙 있는 대답을 합니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23절).


기드온이 변했다고 생각했던 것은 억측이었던 것일까요? 이 대답 이후에 기드온의 행동을 보면 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말로는 내가 아닌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어서 그는 백성들에게 금귀고리를 받아서(약 20kg 정도) 그것을 녹여 금에봇을 만듭니다. 에봇은 대제사장이 입는 옷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기드온은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기 집이 있는 오브라에 두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으면 자기에게 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27절에 백성들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기드온은 말로는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 왕이라고 고백하였지만, 그의 행동은 말과 정반대였습니다. 금에봇은 이스라엘과 기드온에게 올무가 되었습니다. 기드온의 아내가 많았고, 그의 아들이 70명이었다는 점, 그리고 세겜에 있는 첩의 아들의 이름은 아비멜렉, 곧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뜻임을 볼 때, 실제로 기드온은 왕처럼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이 죽자 백성들은 이내 바알을 음란히 섬겼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잊고 기드온과 금에봇을 우상으로 섬기다가, 기드온이 죽자 기드온과 그의 집을 버리고 바알을 섬겼습니다.


기드온 이야기의 결말이 매우 씁쓸합니다. 기드온이 스스로 작고 약하다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큰 용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보리떡 같은 기드온과 삼백 명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누구보다 크고 강한 용사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승리와 성공 뒤에 기드온은 하나님의 구원을 잊고 자신을 높였습니다. 백성들도 하나님의 구원을 잊고 기드온을 높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잊을 때 우리는 사람을 높이고 우상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잊지맙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매순간 기억합시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과 해설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깨닫게 해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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