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9) 화평하게 하는 사람
마태복음 5:9
사람들은 평화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미움과 갈등, 폭력과 전쟁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전쟁과 테러에 관한 뉴스가 끊이지 않습니다. 정치적 입장이 달라 다투고, 지역, 성별, 연령, 소득 수준에 따른 갈등도 점차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종교가 이런 불화의 원인이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역사를 보면 매우 참혹한 전쟁들은 종교 전쟁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지요. 특별히 기독교가 많은 비판을 받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기독교에서는 오직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성경만이 절대 진리라고 말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갈등을 일으킨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도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눅 12:51)라고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정말 불화의 원인은 종교에 있을까요? 실제로 종교가 많은 불화와 분쟁의 원인이 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모든 불화와 분쟁의 원인이 항상 종교였던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종교를 철저히 부정하는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불화와 분쟁의 원인이 종교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이 종교와 이념과 같은 확고한 신념을 가질 때, 반대되는 신념에 대한 적대감과 적의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강력한 신념 체계의 특징은 내가 어떤 것을 알고 있거나 성취하였기 때문에, 그 반대의 신념을 가진 사람은 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의 옳음,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적으로 규정합니다. 불행하게도 이런 모습은 그리스도인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선민사상과 비슷한 것인데요. 나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의롭다고 생각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을 정죄합니다. 그들보다 내가 낫다고 우월감을 갖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기의 자격과 조건을 더 우선적인 신념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이라 말하지만 이들의 실제 종교는 자기의 조건과 자격인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복음은 이런 신념 체계들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먼저 복음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로 인해, 우리의 행위, 자격, 조건과 무관하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사랑받게 되었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따라서 정말로 복음을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믿음이 없다고, 의롭지 않다고 하여 정죄하거나 비난하지 않습니다. 우월감을 갖지도 않지요. 내가 이루고 성취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복음만이 세상을 화평케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절대 진리를 주장하지만 다른 신념을 갖고 있거나 심지어 복음을 대적하는 사람조차도 적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가르쳐주는 하나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로 행할 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의 복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화평케 하는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은 정말 하나님의 자녀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것처럼, 곧 예수님께서 우리를 화평케 하셨던 것처럼 세상 속에서 화평케 하는 일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혹 사람들이 이것을 알아보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될 때, 우리는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맞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됨을 더욱 확신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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